미국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없다. 평화체제의 구축과 새로운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그것은 대북 압박정책을 고리로 한 대중국 포위 전략의 강화뿐이다. 이는 새로운 냉전구도의 확대재생산과 함께 군사적 충돌이 언제든 가능한 잠재적 대결상태의 적극적 복원이다. 이러한 정책은 당장에 한반도의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고 동북아 질서의 전쟁체제 강화를 가져오는 위험한 선택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자신에 대한 명백한 자기 부정이다.
부시 집권 시기에 진행되었던 미국의 대 중동 전략은 기본적으로 원유 장악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럽과 중국에 대한 통제력 강화에 있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점차 취약해져가는 미국의 패권을 군사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위력을 다시 다지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한 반면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군사적 교착상태에 빠짐으로써 이 정책을 주도해오던 네오콘 세력이 곤경에 처하게 했다.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다.
이후 이루어진 오바마의 대 이슬람권 화해선언은 중동정책의 평화적 이행을 내다보게 하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의 전격적 변화를 예상해도 괜찮은 상황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부시 당시 미국은 "2개의 전선전략"을 추진하다가 중동전선이 잘 뚫리지 않자 이를 접는다. 2개의 전선전략은 지구상 어디든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전략을 수행한다는 것인데, 이라크 하나만으로도 벅찬 지경에 2개의 전쟁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써 부시 후반기에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정세가 다소 완화되어가는 기미를 보게 된다.
2개의 전선전략 포기 이후 동북아 군사화
그러나 오바마의 집권 이후 정작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동북아시아 패권체제의 군사화다. "2개의 전선전략"의 포기를 전제로 한 중동전선 집중이 부시의 중후반기의 정책상 특징이라고 한다면, 오바마는 중동전선에서 동북아로 그 군사적 비중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2개 전선전략 포기 이후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나 이라크는 일단 점령했으니 중동에 쏟아 부었던 힘을 동북아시아로 옮겨 지구적 패권구도에서 중국의 힘을 견제, 내지 퇴각시키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부시 1기 집권에서 주목되었던 정책적 입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9.11 이후 이러한 대중국 포위 전략은 일단 부차화 되고 중동전선이 전면에 부각되었던 것이다. 이러했던 정세가 오바마의 집권으로 지구적 차원의 평화체제 건설이라는 방향으로 그 정책의 본질적 목표가 변화할 줄 알았으나 미국의 군사주의 체제의 요구와 구조적 관성,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해결책이 서로 결합하면서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패권체제 강화라는 방식의 결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미국의 군사적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가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떠오르면서 이루어졌었다. 이라크 전선의 교착과 미군의 희생 증가, 금융위기에 따른 공황상태의 미국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의 개혁과 대외정책의 노선 수정을 요구했고 미국은 "대화를 통한 세계적 파트너십 추진과 서민 위주의 자본주의 개혁"을 내건 오바마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는 국내적으로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루즈벨트 이후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내야 하는 오바마 뉴딜정책을 예상하게 했고,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대결주의의 청산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내다보게 했다.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출구전략 희생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군사경제 체제의 구조적 요구와 금융자본의 패권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였다. 이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면 확인된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자본과 노동의 타협적이고 유연한 동거를 목표로 공황을 극복하려 했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앞에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거대한 이윤창출구조를 획득함으로써 공황의 출구전략을 완성했던 것이다.
즉, 군사적 긴장 또는 전쟁을 시장으로 삼는 군사경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가 오바마에게 있어서 자신의 평화정책과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동시적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자본주의 위기 극복의 한계돌파를 군사체제 작동을 통해 기획함으로써 결국 평화정책은 거둬들여야 하고 군사체제와 결합한 금융자본의 지휘를 다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는 것은 오바마 출범의 역사적, 구조적 의의를 상실하게 하는 것이자 "전쟁을 벌이면서 미소를 머금은 부시"와 다를 바 없는 오바마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 희생자는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은가?
천안함 사건은 이런 오바마의 미국에게 중요한 구조적 계기로 작용했다. 여전히 그 진상 규명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의 군사적 효용도를 검토한 끝에 결국 동북아시아 대결구도 확정과 강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 사건의 의미를 부각시킨 미국은 북한 해체와 대중국 포위 전략이라는 큰 틀을 적극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애초에 서해에서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라는 공격전략 훈련을 하려다가 중국의 반발로 동해로 옮긴 것도 사실상 천안함 사건을 대북 적대-압박 정책을 고리하면서 보다 중요한 목표로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2+2라는 국무(외교)+국방장관의 회담이라는 것도 한미 군사합동 훈련을 중심으로 펼쳐짐으로써, 외교정책이 축이 되고 군사정책이 보조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정책이 주가 되고 외교는 그것을 위한 보조 내지 포장이 되었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정책이 담고 있는 목표와 방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미 군사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분명히 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나 태도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태라 하겠다. 이와 같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마치 19세기 미국의 제국주의 초기 단계의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를 재현하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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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비극 재연?
함포외교는 군사력의 위력적 과시를 통해 제국주의 체제의 강화를 노리는 것으로서,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언제 어디서라도 작동시킬 수 있는 나라라는 점과 그런 전략의 추진에 최대의 희생자는 우리라는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한반도에 주둔한 미국의 군사력이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군사력의 유연전략"이 한미동맹의 범위를 벗어나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군사정책은 우리의 처지를 언제든 전쟁상태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쟁 정책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 대결주의와 결합해서 상승효과를 낳고 있다. 평화체제의 구축보다는 전쟁장치의 강화와 가동이 주가 되는 한미동맹체제는 이로써 우리의 평화에 가장 위험한 근본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기존에도 그러하지만, 반전의 계기와 기미가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제국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진보적 사회학자 칼 보그스(Carl Boggs)는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우리는 오바마의 미국이 또다시 우리의 저항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에 대한 반발이나 저항운동은 상당한 정도로 수그러들었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보다 분명해져가고 있는 것은 오바마 정부 역시 제국 아메리카의 패권체제 강화에 정치적 명운을 걸 수밖에 없고,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은 미국의 군사자본의 시장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세력이라는 현실이다. 그에 더하여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성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장기적 목표가 있다고 해도 군사적 우위를 선점하면서 압박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길 테니, 이런 와중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은 점점 더 지연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평화체제도 복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이 땅의 진보세력에게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의 등장이라고 받아들여졌다. 북도 그러한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딴판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는 일본 자위대 장교도 참관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에 반기를 들 자위대의 합동군사 훈련 참관은 동북아시아 정세에 우리의 주도권이나 우리의 행동반경에 중대한 압박과 장애다. 과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양상을 돌아봐도 한(조선)반도는 국제적 패권구도의 경쟁체제에 휘말려 들어가는 순간, 비극을 겪었다.
당시에는 청조가 쇠락하고 일본이 일어서는 형국이었고, 지금은 중국이 일어서고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이에 맞서는 팽팽한 구도 속에서 한반도가 분열된 상태에서 또다시 주도권을 상실한 처지라는 점에서 본질상 다르지 않다. 전시작전권 환수까지 연기해가면서 미국의 제국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주권헌납을 해버린 나라에서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언론은 북을 공격 목표로 삼는 전쟁연습이 분명한 것임에도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일 첨단 무기의 소개 홍보로 일관하면서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일체 침묵하고 있어 그 위험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평화체제 붕괴에 맞서
한편으로는 한-미 FTA 재가동을 통해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수입과 자동차 시장에 대한 압박이 거세어질 전망이다. 결국,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오바마의 미국과 우리의 국가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싸워야 하는 상황이 전개될 판이다. 미국에 대한 저항과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근본적으로 쪼들리고 위험해지는 상황이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했던 우리가 순진했던 것인지, 아니면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평화정책이요, 금융자본 개혁이요 하고 소리 냈던 오바마가 순진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엄연한 사실은 그가 이끄는 미국 정부가 우리의 안전과 이해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진보정당과 시민운동, 지식인을 포함한 진보진영은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발언과 목청을 돋우어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의 정책이 아무런 저항과 비판 없이 그대로 관철될 수 있다는 오해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하고 구조적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미국에 대해 보다 신랄하게 치열한 비판과 저항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 결과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 문제 앞에서는 작아지는 민주당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국가와 민족적 이해의 관점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평화체제 자체가 붕괴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대로 침묵하고 있을 셈인가?
우리는 지금 똑똑하고 능력 있는 오바마가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오바마 앞에 있다. 이명박 정권과 손을 잡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붕괴시키고 있는 미국 정부의 위협 앞에 있다. 오바마, 그가 방향선회를 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이들 모두가 그를 적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상에 장기적으로 손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미국의 위상 확보는 전쟁체제 강화를 포기하고 평화체제 구축에 진력을 다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오바마, 그대가 말했던 "존경받는 미국"은 지금과 갈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부디 낡고 시대착오적인 군사동맹의 가동을 포기하고, 평화체제에 기여하는 지도자로 남기를. 오바마에 대한 기대를 더는 접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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