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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 보통 사람처럼 법 지키며 살 순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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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家, 보통 사람처럼 법 지키며 살 순 없겠니?"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11〉'양심수 김성환'의 추억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하는 삼성에 맞서 10년 간 외로이 싸워 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6일 양심수로 선정이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서울 영등포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위원장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3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지 싶다. 을지로 인쇄골목에 이웃한 충무로의 한 출판기획사에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만난 게. 먹구름이 가득 낀 우중충한 날씨에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기획사의 디자이너와 출판할 책자를 어떻게 편집할지를 논의하고 있는데 김성환 위원장이 서류더미를 잔뜩 들고 그곳을 찾아왔다.
  
  이 기획사가 이른바 '운동권' 전문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김 위원장은 여기저기 내밀었다가 거절당했을 게 분명한 자료들을 한데 묶어 책으로 내겠다고 찾아온 참이었다. 김 위원장과는 1990년대 후반부터 얼굴과 이름을 익히고 통성명을 하던 사이라 그날도 반갑게 인사를 나눈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며칠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씻지 못했는지 그의 행색은 초라했고 몸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깊게 파인 볼이 그의 어려운 생활을 짐작케 했다. 그가 가져온 자료뭉치는 초벌 편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책 편집에 어느 정도 이력난 내가 보기엔 산만하고 체계가 없었다. 제대로 된 책이 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게 뻔했다.
  
  그는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라는 제목을 붙일 거라면서 책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김 위원장이 그 기획사에서 자료집을 편집하고 책으로 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여성 디자이너가 처음 만나는 사이였음에도 김 위원장의 남루한 행색과 역한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뇌리에 뚜렷하다.
  
  옹졸한 재벌과 부끄러운 사법부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삼성재발 노동자 탄압 백서>보다는 김성환 위원장의 이야기였다. 민주노총에 사무실을 둔 해고자 단체와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의 지도부를 맡기도 했는데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의 내분이 격화되어 비난받고 헐뜯음 당하는 게 괴롭다고 했다.
  
  울산에 갔는데 자신의 동선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는 곳마다 형사와 삼성 직원이 와 있었고 그 와중에 체포된 사실도 털어 놓았다. 삼성이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 발간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어 책을 내줄 출판사나 기획사를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도 했다. 아마 이 책이 나가면 자신은 감옥에 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시는 '대~한민국' 하고 외치던 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운동단체 내부의 갈등이나 삼성과 경찰이 자신의 동선을 꿰뚫고 있더라는 이야기는 그럴 수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김 위원장의 피해의식이나 강박관념에서 나온 소산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진실을 담았다 하더라도 내용도 산만하고 볼품은 더더욱 없는 책자 하나 만들었다고 무일푼의 중년 사내를 법정으로 끌고 가서 감옥에 처박아 버릴 만큼 삼성이 한가할까 싶었다. 김 위원장이 접촉한 출판사나 기획사가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 맡기를 꺼려 했던 이유는 삼성의 외압보다 내용의 산만함과 조야함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내가 세상을 너무나 몰랐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겨울날 그가 삼성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당해 법정에 끌려갔고 거기서 실형을 선고받아 집행유예로 밀렸던 징역 3년을 포함해 곱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자로 묶여 나온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 백서>를 대강 살펴본 후였기에 그의 감방행이 준 충격은 더 강했다.
  
  무일푼의 중년 사내에게 법정 시비를 붙는 삼성의 옹졸함에 혀를 내둘렀다. 재벌의 잘못을 욕하는 책자 하나 냈다고 '명예훼손'이라는 딱지를 붙여 실형을 선고하는 순간, 이미 삼성에서 고발한 '업무방해'로 징역3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받은 이 사내가 곱에 곱징역을 살아야 함이 분명한데도 5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처신도 분통이 터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법부의 부끄러움 없는, 재벌과의 짝짓기를 목도하면서 지금이 21세기가 맞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감방행은 기업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는 이유로 무일푼의 실업자를 짓밟고 지나가는 거대재벌 삼성의 비열함과, 강자에게 한 없이 관대하고 약자에게 한 없이 엄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후진성을 똑똑히 체험토록 해주었다.
  
  3·1절에는 감옥 안 노동자에게 자유의 공기를
  
  천문학적인 액수를 쏟아 부은 불법적인 부의 세습으로 국민경제의 명예를 나라 안팎에서 훼손한 이건희 부자는 '글로벌 1등 경제'니, '샌드위치 경제'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윤리 나눔 경영' 운운하며 잘 살고 있다. 사실에 바탕을 둔 책 몇 백 권 찍어낸 김성환 씨는 이번 감옥살이에서만 벌써 세 번째 겨울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
  
  이건희 부자에게 묻고 싶다. 1등 안 해도 좋고 윤리적이지 않아도 되고 나누지 않아도 괜찮으니 보통 사람만큼만 법 지키고 세금 내면서 살 수는 없겠는가. 1990년대 후반 노조간부 훈련과정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눈이 크고 음성이 차분한 평범한 이웃이었다. 서울 봉천고개 근처의 교육장에서 경기도에 자리한 이천전기 출신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3·1절에 맞춰 두산그룹의 박용성 씨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회사 돈을 떼먹은 재벌총수를 사면 복권시켜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가진 자들만 사면 복권의 대상이 돼서야 쓰겠는가. 오는 3·1절에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이 자유의 공기를 맘껏 마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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