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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에너지 격변 감당할 준비 돼 있나?"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8ㆍ끝> 급박한 세계, 느긋한 한국

2006년 하반기부터 국제 유가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언론들이 또 호들갑이다. 지난 2002년부터 이어져 온 고유가 시대가 끝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두바이유 기준으로 유가는 2006년 8월 8일 사상 최고치 배럴당 72.16달러를 기록한 뒤 현재까지 30%나 급락했다. 17일에는 49.07달러로 떨어져 50달러 선도 무너졌다. 다시 저유가 시대인가?

이런 언론의 호들갑에도 저유가 시대가 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번에 유가가 급락한 데에는 예년에 비해 춥지 않은 미국 북동부의 날씨가 한몫 했다. 현재 미국 북동부의 난방유 소비는 예년의 30~40%를 밑도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 북동부는 세계 석유 소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남은 두 달간의 겨울 날씨에 따라 석유 소비가 급등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급락하는 유가를 그대로 방치할 리도 없다. OPEC은 2006년 11월부터 하루 12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했으나 실제 감산 규모는 3분의 2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유가가 50달러 안팎에서 고착될 경우 OPEC은 추가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지난 2006년 말 OPEC은 오는 2월부터 50만 배럴을 추가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국제 석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투기 자금의 유입 가능성도 크다. 수급 상황에 비해 낙폭이 큰 지금이야말로 투기 자금이 석유를 매수하기에 적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유가는 바닥에 근접했으며, 장기적으로는 50~60달러 선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유가가 오르기 전인 2002년, 유가는 20~30달러 수준이었다.

나는 일본, 기는 한국

불과 5년 전의 유가도 기억하지 못하는 언론의 저유가 시대 타령은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근시안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한국과 여건이 비슷한 일본과 크게 대조된다. 일본 정부가 2006년 5월 발표한 '신국가 에너지 전략'을 같은 해 11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2030 에너지 비전'과 비교해보자.

일본 정부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에너지 효율을 2030년까지 30% 추가 개선하기로 했다. 특히 일본은 산업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 가전 등의 에너지 효율을 대폭 향상시키기로 했다. 일본은 더 나아가 이런 에너지 효율을 중국을 비롯한 에너지 효율 개선이 절실한 국가로 수출하는 것까지 계획 중이다.

한국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허점투성이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만든 티가 곳곳에 보인다. 2030년까지 정부의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을 9%로 올린다는 목표는 단적인 예다. 이미 정부는 2011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을 5%로 올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근 20년 동안 고작 4% 올리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석유의 양을 2030년까지 0.2t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도 했다(2005년 : 0.358t). 그러나 정부는 이미 2011년까지 0.294t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 공언해 왔다. 또 2005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0.201t 수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 석유 시대의 유산 대기오염. 독일 하노버 도심에서 대기오염을 나타내는 전광판. ⓒ프레시안

'에너지 절약' 문제에 주목하라


한국의 안이한 대응과 달리 이미 세계는 고유가 시대를 본격적인 에너지 위기 국면을 경고하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다. 2006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석유 중독'을 경고한 것이나, 국제에너지기구(IEA), 미국 에너지국(DOE)이 공식적으로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그 단적인 예다("부시는 왜 '석유중독'을 경고했을까?").

특히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변화도 엿보인다. '에너지 효율 제고'를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중심에 내세운 일본의 경우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듯이, '에너지 절약'이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간 '에너지 공급'만을 강조해 온 미국의 변화는 더욱 의미심장하다(20년 만에 부활한 목소리 "아끼고 또 아껴라").

이렇게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에너지 절약을 에너지 정책의 중심에 놓게 된 데에는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 감축이 '발 등의 불'이 된 탓이 크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 정식으로 발효되면서 당장 2012년까지 1990년과 비교했을 때 온실가스를 평균 5.2% 감축해야 하는 이들로서는 에너지 효율 제고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다.

지구 온난화의 부정적 효과가 기상 이변, 자연 재해 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가속화하는 데 한몫 했다. 지난 10월 니콜라스 스턴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기후 변화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하면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세계 GDP의 20%나 되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유럽에서는 바이오디젤유를 휘발유와 함께 판매하는 주유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4개의 주유기 가운데 가장 오른쪽 노란색 표지를 단 것이 바이오디젤유 주유기다.ⓒ프레시안

'오래된 자원'의 부활


이미 1990년대부터 탈(脫)석유 시대에 대비하는 준비를 해 왔던 EU가 최근 들어 바이오디젤, 메탄(CH₄)가스와 같은 바이오가스 등 '바이오매스(biomass)'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바이오매스가 부상한 데에는 풍력, 태양 에너지 등으로 대표되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 생각만큼 힘이 붙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100년 만에 부활한 식물연료, "에너지 위기, 똥 귀한 줄 알아야 극복한다").

유럽재생가능에너지협회(EREC)의 통계를 보면, EU는 전체 에너지 발전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5.1%(2000년 기준)다. 이 중에서 풍력(5.7%), 태양광(0.03%)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재생가능 에너지 비중이 20%로 증가하는 2010년에도 풍력(25%), 태양광(0.5%)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위기, 온실가스 감축 등을 바로 해결해야 할 EU로서는 당장 이용 가능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 주목받은 '오래된' 자원이 바로 바이오매스다. 수송연료로 식물성 기름(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을 활용하거나, 난방연료로 나무나 가축의 똥오줌에 건초를 섞어 썩힐 때 나오는 메탄가스를 때는 방식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EU의 재생가능 에너지 중에서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000년), 21%(2010년), 24%(2020년)로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EREC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40년까지 50% 수준으로 확대한다면 그 중 바이오매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79%(2001년), 75%(2010년), 66%(2020년), 58%(2030년), 52%(2040년)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를 그리는 생태 마을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 또 다른 주목할 만한 흐름은 정부, 민간 차원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는 생태마을 조성 움직임이다. 이런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신도시를 개발할 때, 재생가능 에너지 이용과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독일의 하노버 크론스베르크, 네카스울름, 네덜란드의 아머스포르트 뉴란트 등은 이렇게 신도시를 개발할 때부터 생태마을로 조성한 대표적인 예다. 이들 마을은 공통적으로 태양열,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난방, 생태주택, 태양광 발전기를 부착한 주택 등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난방이 필요 없는 집? 꿈이 아닙니다").

크로스베르크의 홍보를 담당하는 카린 엥앨케 박사는 "기존 도시의 주거 단지를 생태마을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크론스베르크처럼 계획 단계부터 생태마을을 지향해 개발하면 기존 도시를 전환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에너지 절약형 주거 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흐름은 기존의 도시의 주거 단지를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 윤데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이들은 주민이 주도해 기존의 주택을 개·보수하고, 교통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존의 난방 시스템을 태양열, 바이오매스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에너지 전환에 성공했다("'윤데의 기적', 그 비밀이 궁금하세요?").

보봉의 에너지 전환을 주도한 '보봉 포럼'에서 활동했던 안드레아스 델레스케 씨는 "새로 개발되는 마을은 전체 주거 공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기존의 도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델레스케 씨는 "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그 도시의 특성에 가장 맞는 생태마을을 그리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기존 도시를 생태마을로 전환한 독일의 보봉(왼쪽)과 난방 시스템을 태양열로 전환한 네카스울름(오른쪽).ⓒ프레시안

▲ 난방 시스템을 바이오매스로 전환한 윤데(왼쪽)와 난방없는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준 크론스베르크의 생태 주택(오른쪽).ⓒ프레시안

파티는 끝났다


에너지 문제는 당장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를 비롯한 많은 정부에서 에너지 문제는 당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밀려 미래로 유예되는 경우가 많다("우파 정부가 앗아간 '태양 도시'의 꿈").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점점 더 많은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이 에너지 문제의 급박함에 눈을 뜨고 있다.

미국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에서 활동하는 캘리포니아 뉴컬리지의 리처드 하인버그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국내에도 소개된 <파티는 끝났다>(신현승 옮김, 시공사 펴냄)에서 경고한다. "우리 문명과 생활양식에 갑자기 덮쳐올 엄청난 변화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과연 한국 사회는 그런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프레시안>은 2007년 한국 사회에 에너지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세계가 '석유 제로(0)시대'를 맞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8회에 걸쳐 보여준 데 이어 앞으로는 한국의 준비 상황을 점검해 볼 계획입니다. <프레시안>의 에너지 기획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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