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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정부가 앗아간 '태양 도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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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정부가 앗아간 '태양 도시'의 꿈"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7> 정부의 역할

네덜란드는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나라다. 인구는 약 1600만 명인 반면 자전거는 약 1800만 대다.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도 27%로 세계 최고다. 수도 암스테르담은 33%나 된다. 이런 사정 탓에 아침, 저녁마다 붉은색 전용 도로를 따라 자전거 수십 대가 줄지어 거리를 종횡으로 질주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네덜란드가 '자전거의 나라'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얘기 하나. 2004년 네덜란드에서 이슬람에 비판적인 한 영화감독이 독일계 모로코 인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영화감독은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그를 암살하려던 이 역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권총을 쏘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 이유를 특유의 평탄한 지형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 파동을 호되게 겪은 뒤부터다. 도심 교통난 해결에 골몰하던 네덜란드 정부가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자전거 중심의 교통 정책이었던 것이다.
▲인구 수보다 자전거 수가 많다는 네덜란드에서는 출퇴근 시간이면 붉은색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자전거 수십 대가 연이어 거리를 종횡으로 질주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프레시안

히어휴호바르트의 어긋난 꿈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정책이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성공했다면 에너지 정책은 뒷걸음질 치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치즈로 유명한 알크마르에서 5㎞ 떨어진 히어휴호바르트(Heerhugowaard)는 네덜란드 에너지 정책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여 년에 걸친 주민의 바람이 정부의 방치로 흐지부지될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히어휴호바르트 생태 마을이 계획된 것은 1980년. 쾌적한 주거 지역을 원했던 알크마르 시민은 히어휴호바르트에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생태 마을이 조성될 것을 간절히 소망했다. 결국 지방정부, 중앙정부는 20여 년 만인 2002년부터 약 1만 명이 거주할 생태 마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계획대로라면 히어휴호바르트에 지어질 거의 모든 주택의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기(총발전용량 3.5㎿)가 설치될 예정이었다. 알크마르에 계획된 1.5㎿급 태양광 발전기까지 포함하면 이 지역은 세계적인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2년 공사를 시작한 뒤 4년이 지난 지금, 히어휴호바르트의 모습은 이런 계획과는 달랐다.

얼른 보기에도 태양광 발전기는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히어휴호바르트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피아 포흘 노르란더 씨는 "2002년 개발을 시작할 때 정부가 약속했던 재정 지원이 축소되면서 태양광 발전기를 지붕에 부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유럽에서 손꼽히는 태양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우파 정부의 역습
▲ 네덜란드 정가에 우파 바람을 일으켰던 핌 포르타운. 그의 암살로 집권을 한 우파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재생 에너지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최현주

히어휴호바르트의 태양광 발전기 건설이 축소된 데는 2002년 네덜란드 정치의 '대격변'이 한몫 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반 외국인 정서를 부채질하며 등장한 우파 정치인 핌 포르타운이 총선 9일 전 암살 당한 여파로 우파 정당들이 약진하면서 급격히 우파 정부가 대두하는 일이 발생했다.

집권한 우파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조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재정 지출을 급격히 축소하는 것이었다. 2003년 우파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170억 유로(약 25조 원)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 큰 충격을 줬다. 바로 이 때 태양광, 풍력 에너지를 지원하는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책도 철퇴를 맞은 것이다.

당시 우파 정부는 네덜란드 경제가 침체에 빠진 중요한 원인을 높은 임금, 복지·환경 분야의 '퍼주기'식 재정 지출로 시장의 활력이 떨어진 데에서 찾았다. 우파 정부는 이런 원인 분석에 따라 사회보장, 의료보험, 환경 분야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런 조치는 특히 에너지·환경 분야에서는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할 때 주는 보조금을 폐지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노르란더 씨는 "히어휴호바르트 시, 알크마르 시에서 중앙정부를 설득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았다"며 "2003년 재정 지출이 삭감되자마자 중앙정부의 지원이 끊겼고, 2004년부터는 시의 지원도 축소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태양광 발전기를 달면 집값이 비싸져 분양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노르란더 씨는 "이렇게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유럽연합(EU)에 지원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히어휴호바르트의 생태 마을은 태양광 발전기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계획을 제출해 EU로부터도 개발에 필요한 투자를 유치했다.

태양 마을 뉴란트의 성공

히어휴호바르트의 안타까운 모습은 아머스포르트의 생태 마을 뉴란트(Nieuwland)와 크게 대조된다. 아머스포르트는 우파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 뉴란트를 조성했다(1.3㎿급). 이곳은 풍력 발전에 치중하던 네덜란드 정부의 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뉴란트는 계획 단계부터 태양광 발전기가 다양한 생태 건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고려돼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탄생했다. 특히 태양광 지붕을 단 주택 한 채를 반으로 나눠 두 가구가 거주하는 '제로 에너지 하우스'는 연간 1만5000㎾h의 전기를 생산해 사실상 연간 추가 에너지 수요가 '0'에 가깝다.

지붕 없이 분양된 열아홉 채의 단독 주택도 뉴란트에서 시도된 다양한 실험 중 하나다. 이 주택은 지붕이 있어야 할 자리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렸다. 이 태양광 발전기는 전력회사(REMU)의 소유다. 이 주택은 태양 전지판을 공장에서 생산해 현장에서 직접 조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란트의 주택에서 또 눈여겨봐야 할 것은 태양광 발전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부착해 건축 형태의 다양성을 꾀한 점이다. 태양 전지판을 차양 장치로 활용하거나 주택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부착한 것이다. 이 중에는 90°로 태양 전지판을 부착해 효율이 2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한 경우도 있다.
▲ 계획 단계부터 태양광 발전기가 생태 건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고려된 뉴란트의 태양광 발전 주택들.ⓒ프레시안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히어휴호바르트와 뉴란트의 다른 모습은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노르란더 씨는 "히어휴호바르트도 정부 지원만 계속되었다"면 "뉴란드와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태양광 발전 주거단지로 만들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노르란더 씨는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과 같은 에너지·환경 정책은 좌우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일인데 2003년 재정 지출이 축소되면서 제일 먼저 삭감된 분야가 바로 에너지·환경 분야"라며 "히어휴호바르트는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 확대에 정부 정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히어휴호바르트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태양광 발전기를 주택에 부착하려는 계획이 대폭 축소됐다. ⓒ프레시안

우파 정부, 그 때 그 때 달라요!

좌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모두 네덜란드처럼 에너지 정책이 요동치지는 않는다. 2020년까지 석유의 난방 연료 사용을 '0'으로 만드는 내용은 담은 '2020 석유 제로선언'을 한 스웨덴이 대표적인 예다. 스웨덴은 지난 9월 총선에서 보수당, 자유당 등의 우파가 약진해 사회민주당을 꺾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당 당원으로서 기존 사민당 정부의 '2020 석유 제로선언'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ASPO(The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Peak Oil) 쉘 알레크렛 의장은 "좌우가 바뀌더라도 스웨덴의 에너지 정책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며 에너지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알레크렛 의장은 "우파 정부 역시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의 도래, 지구 온난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과 같은 문제의 시급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석유 의존을 줄이려는 좌파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며 "더구나 수십 년간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추진해 온 에너지 정책을 단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웨덴 역시 우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자력 에너지 정책 등에 있어서는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웨덴은 지난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2010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전부 폐쇄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우파 정부는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를 개·보수해 사용 연한을 늘리는 방침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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