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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이 필요 없는 집? 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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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이 필요 없는 집? 꿈이 아닙니다"

'석유 제로시대'를 그린다 <5> 생태 건축의 현장

독일 하노버는 '박람회의 도시'다. 매년 3월에 열려 세계 정보통신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세빗(Cebit)'은 유명하다. 2000년에는 새 밀레니엄을 맞아 세계 최대의 박람회 '하노버 엑스포 2000'이 열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간, 자연, 기술'을 주제어로 열린 이 박람회는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선물을 하노버에 안겨주었다. 바로 크론스베르크(Kronsberg) 지역의 변모다.

하노버 남동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크론스베르크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저 독일 중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밀, 사탕수수 밭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독일에서 손꼽히는 생태 마을로 탈바꿈했다. 2000년 박람회의 주제어대로 '인간, 자연, 기술'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1만5000명의 주민이 살도록 설계된 크론스베르크는 그 세 가지 개념을 매개하는 고리로 태양 에너지를 선택했다.

난방이 필요 없는 집, 패시브하우스

생태 마을 크론스베르크의 상징은 바로 다양한 생태 건축이다. 크론스베르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주택은 자연 상태의 태양 에너지 외에는 따로 난방이 필요 없도록 지은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다. 이 패시브하우스는 독일, 스위스 등을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 크론스베르크의 패시브하우스. 패시브하우스는 '단열'이 가능한 3중창을 사용한다. ⓒ프레시안

패시브하우스는 에너지를 아주 적게 사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주택이다. 이 집은 난방을 할 때 쓰이는 에너지가 연간 15㎾h/㎡를 넘지 않게 설계된다. 이 수치는 보통 집에서 쓰이는 난방 에너지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 2000년대 이전 독일에서 지어진 집의 연간 난방 에너지 소비량이 200㎾h 정도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난방을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보다 훨씬 햇볕이 덜 드는 크론스베르크에서 이렇게 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해가 비칠 때 가능한 한 많은 햇볕을 받아들여 집을 데운 후, 그 열을 가능한 한 적게 밖으로 내보내도록 한 것이다. 집으로 들어온 햇볕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에너지 절약 정신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이다.

우선 크론스베르크의 모든 집은 남향으로 짓는다. 햇볕을 집 내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은 기본이다. 문제는 이렇게 받아들인 햇볕으로 확보한 열을 외부로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단열' 기술이 힘을 발휘한다. 바닥, 지붕, 벽, 창틀은 물론 유리까지 단열을 고려한 것이 쓰인다.

단열을 위해 쓰이는 '3중 유리'는 그 한 예다. 유리 사이에는 공기 대신 아르곤(Ar), 크세논(Xe)이 주입된다. 아르곤, 크세논은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낮고 결로 현상도 방지할 수 있다. 크론스베르크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카린 엥앨케 박사는 "3중 유리를 사용할 경우 대기가 영하 10℃일 때 집 안은 영상 17.3℃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냉방도 필요 없어…가격은 10% 비싼 수준

이렇게 열을 가둬두려다 보면 환기는 어떻게 할까? 따로 난방을 하지 않는 패시브하우스이다 보니 추운 겨울에 환기를 위해 창을 잠시만 열어도 집안의 온도는 급격히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겨울철 내내 신선한 공기를 포기하며 살 수도 없는 일이다. 패시브하우스는 별도의 환기 장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 크론스베르크 난방의 50%를 책임지는 태양열 집열판. ⓒ프레시안

패시브하우스의 지붕에는 두 개의 관이 있다. 하나는 바깥으로 실내 공기를 내보내는 관이고, 다른 것은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여오는 관이다. 바깥 공기도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열 교환기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지는 실내 공기로부터 빼앗은 열로 데워진 뒤 실내로 들어온다. 0℃의 실외 공기는 열 교환기를 거치면 18℃가 된다. (20℃의 실내 공기는 밖으로 나갈 때 2℃가 된다.)

엥앨케 박사는 "이런 패시브하우스는 여름에도 따로 냉방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의 패시브하우스는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적어지도록 설계했다. 집을 둘러싼 단열재는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는다. 더운 여름에 찬물을 단열재로 감싸두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패시브하우스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엥엘케 박사는 "새로 지어진 같은 평수의 주택보다 10% 정도 비싸다"며 "이 정도라면 난방비로 수년 내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데는 단열재, 환기 장치를 설치하는 데 비용이 더 드는 대신, 난방 장치를 설치하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는 6000가구의 패시브하우스가 있다. 독일에서는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건축회사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엥앨케 박사는 "크론스베르크에 있는 패시브하우스는 32가구이며 앞으로 개발이 진행될수록 더 늘어날 것"이라며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값 싸고 효율이 높은 단열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꼭 필요한 난방은 태양 에너지로

물론 난방이 필요한 집들도 있다. 이렇게 난방이 필요한 집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해 필요한 에너지의 절반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햇빛이 가장 뜨거운 여름에는 난방이 필요 없다. 엥앨케 박사는 "여름에 햇볕을 이용해 데운 물을 단열재로 감싸 추운 겨울까지 저장했다가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 외곽에 위치한 지름 20m, 높이 10m의 언덕이 바로 그 온수를 저장하는 수조다.
▲ 여름에 태양열을 이용해 데워진 물은 이 단열 수조에 겨울까지 저장된다. 크론스베르크는 수조를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로 꾸며 놓았다. ⓒ프레시안

70㎝의 단열재로 감싼 이 수조에는 크론스베르크 106가구에 설치된 태양열 집열판에서 모은 열로 데워진 물 2750㎥가 저장돼 있다. 엥앨케 박사는 "이렇게 저장된 물은 겨울까지 온도가 90℃를 유지되도록 관리된다"며 "가을, 겨울에도 여름보다는 적지만 햇볕이 계속 들기 때문에 온수의 온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물이 겨울에 크론스베르크의 각 집을 이동하면서 난방도 하고 또 물을 데우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에도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 태양열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모자라는 부분(50%)은 바로 이 열병합 발전소에서 얻은 열을 이용한다. 엥앨케 박사는 "열병합 발전소에서도 나무를 때 전기를 얻기 때문에 난방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나무와 같은 '바이오매스(biomass)'를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자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초, 나무를 태울 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이미 성장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그만큼 흡수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이산화탄소의 추가적인 배출이 없다는 것이다. )

엥앨케 박사는 "크론스베르크가 이렇게 생태 마을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노버 시가 일방적으로 계획하지 않고 거주할 주민, 건축가, 환경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4년간에 걸쳐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한 덕이 컸다"며 "크론스베르크는 21세기에 도시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덧붙였다.
빗물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크론스베르크는 가장 최근에 조성된 생태 마을답게 곳곳에서 참신한 시도가 눈에 띈다.

이곳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을을 지나는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언덕이다. 마을과 도로를 분리해 자연스럽게 방음벽 역할을 하는 이 언덕은 원래 있던 게 아니라 크론스베르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흙으로 쌓은 것이다. 크론스베르크의 토양 유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할 때 나온 흙의 88%는 인근 4㎞ 이내에서 다시 사용되었다.
▲ 크론스베르크는 빗물도 모아 연못을 조성한다. 이 연못의 물은 학교, 가정의 허드렛물로 사용된다. ⓒ프레시안

탄성을 자아내는 이런 세심함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론스베르크에 지어진 건물의 상당수는 옥상, 벽면, 테라스에 각종 정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엥앨케 박사는 "가능한 모든 곳에 녹지를 조성하려고 했다"며 "원래 밭이었던 곳을 개발하는 만큼 녹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론스베르크는 물 한 방울 허투루 버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크론스베르크 곳곳에 설치된 도랑은 빗물이 바로 흘러내리지 않고 서서히 밑으로 스며들도록 특별히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밑으로 스며든 빗물은 도랑 밑에 설치된 배수관을 통해 빗물 저장 수조로 이동한다.

이렇게 저장된 빗물은 초등학교 주변에 조성된 연못으로 흘러간다. 엥앨케 박사는 "연못에 별다른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기존 크론스베르크 생태계와 유사하게 조성해 자연스럽게 동식물이 섞이도록 했다"며 "학교에서는 연못 생태계를 학생의 환경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못은 초등학교에 허드렛물을 공급하는 기능도 한다. 엥앨케 박사는 "이렇게 연못을 사용함으로써 이 초등학교는 연간 약 550㎥의 물을 절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빗물을 모아 연못을 조성한 예는 크론스베르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빗물을 이용해 정원에 연못도 조성하고, 그 물도 이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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