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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은 몰락, 현실주의 외교노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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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은 몰락, 현실주의 외교노선 부활"

게이츠 등용에 대한 <뉴욕타임스> 등 미국언론 평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불신이 중간선거의 표심으로 나타나자,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은 즉각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퇴진시키고 '아버지 부시' 정부시절 중앙정보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를 후임으로 내정했다.

이 발빠른 조치에 대해 이라크 등 미국의 대외정책이 소위 럼즈펠드 등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힘의 외교'에서 급선회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들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게이츠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미 대외정책의 최대 골칫거리인 이라크문제를 게이츠 장관 내정자가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미국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은 게이츠의 등용으로 지금까지 체니 부통령이 주도했던 네오콘식 대외정책이 퇴조하고 '아버지 부시' 시절의 현실주의 외교노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이츠가 이라크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라크조사그룹(ISG)의 일원이라는 점, '아버지 부시' 정부시절 현실주의 노선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밑에서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지냈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특히 사설로 럼즈펠드의 퇴진을 촉구했던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9일 게이츠에 대해 집중조명하는 기사를 싣고, 부시 대통령이 게이츠를 차기 국방장관에 내정한 조치에 대해 '초기 공화당의 외교정책'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평가해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동안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이란, 북한과의 대립을 조성해온 네오콘(신보수주의) 주도의 외교정책에서 '신중함과 실용주의' 색채가 보다 짙은 외교정책으로 선회했다는 의미이다.
▲ 지난 8일 로버트 게이츠 차기 국방장관 지명자의 기자회견을 부시 대통려이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어 <뉴욕타임스>는 게이츠에 대한 각계 각층의 평가와 논란들을 종합해 소개하면서 그를 "어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심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면서 여러모로 럼즈펠드와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함께 2004년까지 일한 고위 국방관료 출신 도브 자크하임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게이츠의 국방장관 내정에 대해 "국가안보 현안에서 대립적 국면을 지양하려는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게이츠를 가리켜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실용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로 묘사했다.

라이스 국무장관과 현실주의적 노선 공유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게이츠는 그동안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에 관한 적절한 정치적,군사적 정책들을 펴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으며, 지난 6개월 동안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과 해밀턴 전 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이라크조사위원회(ISG)' 멤버로 참여해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논의해 왔다.

게이츠는 20년간 CIA에 재직하면서 주로 소련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아버지 부시 시절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국가안보보좌관일 때 차석으로 함께 일했다. 스코크로프트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지금도 강력한 반대자로 알려졌다.

게이츠는 베이커 전 장관과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련 전문가로 활동한 콘돌리자 라이스와도 업무상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 때문에 라이스 국무장관은 럼즈펠드보다는 게이츠와 훨씬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CIA 국장인 마이클 헤이든도 당시 국가안보위원회의 멤버였다는 점에서 게이츠와는 잘 아는 사이다.

그는 아버지 부시 정부 시절 차석 국가안보 보좌관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내면서 정부 내 주요인사로 떠올랐지만, 2000년 대선 때 '부시 팀'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부시 행정부의 대 이란 정책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는 2004년 민간 외교연구단체 '외교협회'(CFR) 보고서에서 "이란과의 대화를 거부한 것은 궁극적으로 패착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정부 요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 13년 간 민간 분야에서 활동했다. 민간기업들에서 주로 일했으며, 텍사스 A&M 대학 총재를 맡기도 했다.

게이츠는 불과 22개월 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초대 국가정보국장으로 와달라고 요청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후 ISG 멤버로서 부시 행정부가 봉착한 핵심 안보정책 문제의 해법을 찾아 고민해 왔으며, 최근 부시 대통령의 목장으로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국방장관직을 제의받고 마침내 이를 받아들였다.

게이츠는 지난 8일 국방장관 내정 사실이 발표된 자리에서 "지금 군대에 있는 미국의 많은 아들 딸들이 잘못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임무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주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이란 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게이츠와 함께 작성한 인연이 있는데, 그는 "게이츠의 국방장관 내정이 '미국의 중동정책에 중대한 수정'을 의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CIA 고위직 시절, 정보왜곡 논란 휩싸여

미국 중부 캔자스 주 위치타 출신인 게이츠는 자동차 부품 도매상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이글 스카우트'(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보이스카우트 단원) 출신으로 현재 전미이글스카우트협회 총재이기도 하다.

그는 윌리암 앤드 메어리 대학에서 유럽사를 공부했으며, 인디애나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중 CIA에 채용됐다. 그는 1974년 조지타운 대학에서 '소련이 보는 중국'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게이츠는 닉슨, 포드,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4년부터 79년까지 그는 국가안보위원회 멤버로 일했다. CIA에 복귀한 뒤에는 윌리엄 케이시 당시 국장의 신임을 받아 CIA 차장, 국가정보위원회 의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화려한 경력의 게이츠가 당초 행정부 복귀를 꺼렸다면, 그 이유는 '정치적 십자포화'의 중심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1987년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케이시의 후임으로 CIA 국장에 내정됐을 때, 게이츠는 이란-콘트라 사건에 대해 뭔가 감추고 있다는 상원의원들의 추궁에 결국 사퇴했다.

1991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CIA 국장에 재지명됐을 때, 게이츠는 이란-콘트라 사건 뿐 아니라 레이건 행정부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소련에 대한 정보보고서를 왜곡했다는 동료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련 제국이 팽창하고 있다는 왜곡된 정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츠는 61 대 31로 상원의 인준을 받아 사상 최연소 CIA 국장에 올랐다. 그는 CIA 국장으로 냉전 이후의 안보 문제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1996년 <음지로부터:5명의 대통령과 그들의 냉전 승리에 관한 최고 내부자의 이야기>라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CIA 활동을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공격했던 CIA 동료는 지난 8일 게이츠의 국방장관 지명 소식에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1966~1990년 소련 전문가로 일한 멜빈 굿맨은 "그는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이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굿맨은 게이츠를 가리켜 "그는 상관에서 철저하게 충성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잘 훈련된 사람이기는 하다"면서도 "그는 세밀한 부분을 관리하는 데는 능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민주당 상원정보위원장을 지낸 데이비드 보렌은 게이츠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렸다. 보렌은 "게이츠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거대하고 복잡한 정보당국의 뛰어난 관리자이며, 초당파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CIA 차장과 국가안보국(NSA) 국장을 지낸 보비 인맨도 게이츠에 대해 "남의 말을 경청하면서, 결정을 내릴 때는 단호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인맨은 "게이츠는 자기만큼 신속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기 어려워 하지만, 그렇다고 오만하지는 않다"면서 게이츠의 임명을 존슨 대통령 시절 클라크 클리포드를 국방장관에 지명한 것에 비유했다.

클리포드는 1968년 베트남 전쟁이 정점에 달했을 때 로버트 맥나라마 당시 국방장관과 달리 '신중한 전직 관료'로 정부에 복귀했다.

<뉴욕타임스>는 "게이츠가 어떤 접근법을 보일지는 그가 2004년 CFR 보고서에 쓴 '이란:새로운 접근을 할 때'라는 글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이츠는 이 글에서 "이란에서 비정부기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미국 정부의 제재를 푸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라면서 "이란과 다른 세계와 상호접촉을 더욱 늘림으로써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내부 변화의 토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카터 행정부 시절 이란 전문가로 국가안보위원회에서 게이츠와 함께 일했던 게리 식 콜롬비아대 교수는 "부시 2기의 흐름이 네오콘 이데올로기에서 정치적 현실주의로 은밀하게 180도 선회하는 것이라면, 게이츠의 국방장관 지명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이츠의 지명은 지난 6년간 미국의 정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변화 중 하나"라면서 "게이츠처럼 현실파에 속한 소련 전문가 출신인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외교적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변화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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