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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불행한 '노빠들'의 헛된 미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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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불행한 '노빠들'의 헛된 미망뿐"

[화제의 책] 김명인의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

문학평론가 김명인(인하대 교수·국문학)은 지난 6년간 문학보다는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1980년대에 자신의 정치의식을 담는 "가장 유효한 그릇"으로 문학평론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는 더 이상 문학이 "세상을 성찰하고 바꾸는 영혼의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명인은 <황해문화>의 주간을 맡은 후 원고지 10장 내외의 글을 통해 세상과 대결해 왔다. 최근 나온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펴냄)는 이런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의 제목도 지금의 것과 '길 잃은 민주주의, 길 없는 문학'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그는 토로한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의미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은 과연 좋아졌는가"

김명인의 글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배어 있다. 그 절망감은 '배반의 시대'를 지나는 한때 혁명을 꿈꿨던 세대의 회한과 겹친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로 국회로 청맹과니처럼 달려가는 옛 친구들, 옛 좌파들, 옛 혁명가들을 바라보며" 그는 묻는다. "세상은 과연 좋아졌는가."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김명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노동하는 인간이 (…) 자본의 일부로, 비용으로 간주되는 나라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저 '인적 자원'으로 계산되는 나라는, 돈보다 성공보다 경쟁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먼저 가르치지 않는 나라는 결코 '민주국가'가 아니다. 한 사람을 위해 만 사람이 고민하고, 만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헌신하는 사회가 오지 않으면 다시 한번 단언컨대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김명인은 2005년 5월 13일 열렸던 '긴급조치 9호 세대'의 한 모임에 대해서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1977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 '긴급조치 9호 세대'에 속한 게 틀림없으나, 여러 차례의 참여 독촉에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과연 민주화는 제대로 이루어졌는가"를 자문했다.

"군사독재 시절의 억압통치가 사라진 것은 다만 민주화의 시작일 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민주주의의 건설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그리고 그 민주화 역시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 아래서는 새로운 식민지적 종속을 위한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 우리는 지금 또 무슨 착각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하라고 탄핵 철회를 외친 게 아닌데…"

김명인에게 '배반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노무현'과 그 언저리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왕년의 '진보' 인사들이라는 사실은 여러 모로 안타깝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적어도 2003년까지는 대통령 노무현의 수많은 실망스러운 언행에도 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 지킴이'였다. 2004년부터 그 기대는 뿌리째 흔들렸다.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김명인은 몇 가지 역사 속 장면을 떠올렸다. "1979년 12월 12일 밤 가로막힌 한강대교에서의 망연함, 1980년 5월 17일 오후 캠퍼스에서 "계엄군이 온다"는 비명소리의 기억, 며칠 뒤 광주학살 소식을 접하고 전율하던 기억…."

그같은 기억 속에 대통령 탄핵을 '반란'으로 규정하며 "반란은 진압되고 반란자는 응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김명인은 불과 두 달 뒤 정무에 복귀하자마자 파병 약속은 어떻게든 지키겠다고 미국의 대통령과 약속하는 대통령 노무현을 목격했다. "파병 약속 재확인이나 하라고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촛불 들고 탄핵 철회를 외친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는 그렇게 애정을 접었다.

"윤리적 기대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강자의 논리에 밀려 그 윤리를 포기할 때, 그의 정치적 생명은 벌써 반 이상 소멸된 것이다. 그 다음에 남는 것은 윤리적 추진력을 상실한 이율배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정치논리이고 볼썽사나운 권력게임이며 이전투구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력도 부족하고 연줄도 없고 구체적인 인적 토대도 없고 게다가 돈도 없는 대통령에게서 기대할 것은 강한 윤리의식과 비전과 불굴의 의지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강대국 미국의 힘과 회유에 밀려 최초의 윤리의식을 내팽개쳤을 때, 이미 그는 리더십을 지탱할 토대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남은 것은 불행한 '노빠들'의 헛된 미망뿐. 가진 것이라고는 대통령 개인의 생존전략으로 전락한 맹목적 책략과 뚝심뿐. 그 상태에서 지금 그가 진보·수구 양 진영으로부터 맹공을 당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이다."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 싸우자"

김명인은 2005년을 "민주화와 정권교체가 곧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리라는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한 해"로 규정한다. 한 쪽에서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하는 동안 부동산 문제, 농업 문제, 황우석 사태 등 도무지 제대로 돼 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명인은 지금 우리가 이룩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가 "형식적 민주주의이지 결코 민중의 생존권이나 공공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민주화 정권이라는 노무현 정권이 서민들의 생존권적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있는"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더 큰 문제다.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면 "기왕에 이룩해 왔던 정치적·제도적 민주화라든가 과거청산조차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존립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더 이상의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 반면 빈자들은 "밥만 먹여 준다면 그까짓 민주주의 따위는 포기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명인은 말한다. "이 '무늬만 민주정권'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민주화에 대한 환상도 말끔히 버리고 내년부터는 진정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지난 3월 13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그 싸움의 하나가 바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민주정부'가 밥 먹여준다는 '환상'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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