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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라크'가 되어 가는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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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라크'가 되어 가는 나이지리아

[먼슬리리뷰: 아프리카의 석유(5,끝)] 미 석유안보정책의 모순

아프리카 석유안보의 현실과 전후 미국 석유정책의 무참한 실패를 감안해볼 때 최근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사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석유가 생산되는 니제르삼각주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 대부분은 신문 1면 머리기사가 되기에 충분하고 석유시장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나이지리아 석유경제의 취약성은 석유세입 분배 문제를 논의하는 전국회의에 참석한 석유생산 지역의 정치적 대표들이 항의퇴장하는 사태를 통해 부각되었다. 이밖에 2005년 후반에 니제르삼각주 지역의 군사지도자와 반란지도자들이 반역 혐의로 체포된 사건, 2005년 12월에서 2006년 1~2월 사이에 석유시설에 대한 무장공격이 급격히 증가한 사실, 특히 니제르삼각주해방운동(MEND, 2006년 6월 7일 한국인 근로자 납치 사건을 일으킨 조직-옮긴이)이라는 대체로 알려지지 않았던 무장단체가 인질극을 벌이는 등 이조(Ijaw, 니제르삼각주 지역의 원주민-옮긴이) 부족 민병대의 석유시설 공격이 증가한 점 등은 나이지리아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6년 초까지도 정치적 불안과 무장공격으로 인해 훼손된 석유는 하루 평균 63만 배럴에 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요는 더 폭넓은 역사적 지평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 최근 니제르삼각주의 유전지역 전역에서 석유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수반한 폭력사태가 증가했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현상은 1990년대 이래 계속돼 온 것이다. 지금도 석유생산 지역들 사이에, 그리고 석유생산 지역들과 국가안보 세력 사이에 무력충돌이 계속되고 있으며, 석유와 관련된 폭력사태로 연간 1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니제르삼각주는 지난 10여 년 간 폭동에 시달려 왔다.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회사를 위해 작성되어 2003년에 발간된 <낭떠러지로부터의 귀환(Back from the Brink)>이라는 보고서는 거대 석유기업들에 대한 위험평가 결과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에 유출된 셸의 내부 보고서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셸의 사업권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런 분석들은 타당한 것이다.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회사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발생한 회사시설물 파괴 행위가 매년 400건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2004년을 예로 들면 1월에서 9월 사이에만 581건의 시설물 파괴 행위가 발생했다. 이런 시설물 파괴로 인한 석유 손실은 연간 1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석유회사를 공격하는 전술도 다양하다. 시위, 석유시설 봉쇄, 저유소 점거, 송유관 파괴, 무단 급유나 절도(저유소에서 원유를 대량으로 탈취하기 위해 석유관 중간에 다른 관을 꽂아 석유를 빼돌리는 행위), 석유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 제기, 인질 납치, 파업 등의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규모가 큰 이조 부족 여성단체는 2002년 와리 지역 인근에 위치한 셰브론의 정제공장을 점거하고 이 석유회사에 대해 투자를 확대할 것과 지역 주민들을 고용할 것을 요구했다(<뉴욕타임스> 2002년 8월 13일치). 이 사건은 물론 거대한 정치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듬해인 2003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수많은 사망자를 낳으면서 지역사회를 파괴하고 혼란을 야기했다. 결국 2003년 3월에 석유회사 직원 7명이 살해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거대 석유기업들이 직원을 철수시키고 작업장을 폐쇄함으로써 전국 생산량의 40%에 해당하는 하루 평균 75만 배럴 이상의 석유 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급히 대규모 군대를 석유생산 지역에 주둔시켰다. 불법적 석유거래(혁신적인 방식의 절도행위로 사라지는 석유가 전국 생산량의 15%라는 추정치도 제시된 바 있다)에 끼어들기 위해 투쟁하는 이조 부족의 무장단체는 자신들의 수중에 있는 11개 소의 석유시설을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2004년 4월에 석유시설들 주위에서 또다시 폭력의 물결이 터져 나와 4월 말에 셸이 입은 석유손실이 하루 평균 37만 배럴에 달했고, 그 중 대부분의 손실은 니제르삼각주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는 아테케톰(니제르삼각주 자경단)과 알하지아사리(니제르삼각주 자원단)이라는 두 개의 민족민병대 조직을 중심으로 한 무장봉기였다. 고도로 조직화된 석유절도를 통해 조성된 자금이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켄 사로 위와(오고니 지역의 인권운동가로 1995년에 처형됐다-옮긴이)가 교수형을 당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오고니의 유전지역 일대에 배치된 군사력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각 유전지역의 여건은 예전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악화되었다. 정부의 보안군은 어떤 활동을 해도 처벌받지 않으며, 이를 통해 정부는 석유산업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었지만 석유생산 지역 주위의 지역사회들에 대해서는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석유회사들은 그들대로 진절머리 나는 참상과 각 지역의 정치적 불안을 감내했다는 점에서는 책임의 일부를 나눠 진 셈이다.
▲ 1995년 처형된 나이지리아의 인권운동가 켄 사로 위와.ⓒhttp://www.kensarowiwa.com/

그러나 새로운 폭력과 불안정은 하나의 중대한 분수령이 됐다. 니제르삼각주해방운동은 명망 있는 두 명의 이조 부족 무장단체 지도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조 부족 무장단체는 니제르삼각주 지역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조직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무장이 잘 된 집단이다. 2006년 1월 29일에 이 단체는 인질들을 아무런 상해도 입지 않은 상태로 석방했지만, 이 단체가 석방을 요구한 이조 부족 지도자들은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의 감옥에 수감된 채 석방되지 않았다.

2월 첫째 주에 니제르삼각주해방운동은 2월 12일까지 니제르삼각주에 있는 주둔군을 철수시키라고 국제사회에 요구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무장공격을 감행하겠다고 공언한 니제르삼각주해방운동은 2주 후에 실제로 연방해군 군함을 공격했고, 석유 관련 서비스 업체인 윌브로스의 직원 9명을 납치했다. 이 행동은 나이지리아 정부군이 니제르삼각주 지역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임이 분명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석유밀수에 관여한 비자선을 공격했던 것이라며 정부에서 실시한 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니제르삼각주해방운동이 공언한 목표는 나이지리아의 석유 생산량을 30% 감소시키는 것이다. 2006년 1월에서 3월 사이에는 석유세입 손실액이 10억 달러에 달했고, 29명의 나이지리아군 병사들이 폭동의 와중에 살해당했으며, 바이엘사 주에 위치한 석유회사 아깁의 저유소 직원 40명이 사로잡혀 인질이 됐다. 이처럼 나이지리아의 유전지대는 1970년에 내전이 종식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상황이다. 2006년 7월 말에 이르면 나이지리아의 석유생산이 예전보다 하루 평균 70만 배럴 줄어든 상태가 된다.(<폭동의 늪: 나이지리아 삼각주의 불안정(The Swamps of Insurgency: Nigeria's Delta Unrest)>, 아프리카 보고서 115, 국제위기대응단체, 2006을 참고하라).

현재의 위기는 나이지리아의 석유생산 지역이 나이지리아 정치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니제르삼각주 지역의 여러 주들이 자원에 대한 통제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이제 석유와 석유세입에 대한 접근과 통제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둘째, 니제르삼각주 지역 내 소수민족의 자결을 위한 투쟁과 연방정부의 근거를 규정한 헌법의 개정을 위한 전국회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셋째, 젊은이들의 무장운동, 심화되는 불안정, 지역사회 내부와 민족들 사이의 폭력 등으로 인해 다수의 주정부를 비롯한 지방정부들이 무력화됨으로써 이 지역 전체가 통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의 사태가 보여주듯이 이런 통치의 위기는 석유산업의 흐름과 미국이 내세우는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게다가 넷째로 이른바 '남남동맹'이 등장하고 있다. 남남동맹은 소규모이며 정치적으로 주변화된 석유생산 주들(예컨대 아크와이봄 주, 바이엘사 주, 크로스리버 주, 델타 주, 온도 주, 리버스 주) 사이의 강력한 연대를 이끌어냄으로써 2007년에 실시될 선거에서 지배집단인 다수민족(예를 들어 하우사 족, 요루바 족, 이보 족)에 대항하는 도전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토니 블레어의 '자원추출산업 투명성 이니셔티브', 국제통화기금의 '석유진단 프로그램', 소로스 재단의 '정부세입 감시' 같은 것들이 나이지리아의 부패하고 무질서한 석유산업에 책임성이라는 허울이 덧씌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행동은 다른 곳에서 벌어진다.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용병이나 준군사조직의 주둔을 증대시켜 결국은 콜롬비아와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2006년 2월에 나이지리아의 아티쿠 아부바카르 부통령은 미국에 200대의 순찰정 및 군사적 종합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미국이 군사적 원조를 머뭇거리고 있다며 중국에 군사원조를 요청했다. <파이낸셜 타임스>(2006년 3월 1일치)는 워싱턴에 위치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아프리카국장인 스티븐 모리슨의 말을 인용해 나이지리아 정부의 이런 행동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중국은 매우 경쟁력 있는 행동주체이며 미국은 이런 사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진정으로 중요한 곳으로 가고 있다."

정부와 폭동단체들이 모두 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정치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폭력적 수단을 이용할 권한은 '민주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2007년 선거가 다가오면서 석유자금이 1999년이나 2003년에 그랬던 것처럼 모든 종류의 정치적 비행에 자금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모으고 유권자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당이나 지역군벌의 무장에도 그 자금이 사용될 것이다.

미국은 나이지리아 남부지역의 유전을 보호하는 동시에 북부지역에서 '범사헬(사헬[Sahel]은 사하라사막 남쪽의 대평원 지역을 지칭-옮긴이) 테러대응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슬람에 의한 테러를 통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대규모의 정치적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대응처방으로 취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이지리아는 '군사적 신자유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새로이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쟁탈전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나이지리아가 다음번 이라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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