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에 편입돼 있는 사람들 중에는 신자유주의의 적용이 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장기적 국가개발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주류 경제학의 전통의 관점에서 이들이 제기하는 이의의 골자는 아프리카에서는 구조조정과 경제안정화 정책이 제대로 시행된 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이란 아프리카의 지배계급에게 정치적 자살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좌파의 주장과 쌍을 이루는 우파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도 일말의 진실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뭔가에 실패한 뒤에는 충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데서 실패의 이유를 찾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지배와 통치가 지리적으로 고르게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그동안 아프리카에서는 대체로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빈민들이 더욱 빈곤해지면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세계은행의 개혁이 진행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압력이 1990년대 중반부터 작용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개발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무역과 투자에 엄청난 참상이 초래됐다. 아프리카의 국가적 시장관리 당국이나 무역보호가 광범위하게 파괴된 데서도 그러한 참상을 엿볼 수 있다. 그 참상은 진정 파괴적이다.
절대적인 수치만으로 보면 아프리카의 수출은 1963년에서 2000년 사이에 많이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무역 전체의 성장속도와 비교하면 아프리카의 성장속도는 매우 느렸다. 세계 전체의 수출에서 아프리카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2년에 6%였지만 2000년에는 2%로 낮아졌다. 1980년에서 1998년 사이에 식품과 제조업제품 등 비석유 제품의 수출 증가율은 비참한 수준이었다. 소득, 지리적 조건, 사회경제적 여건 등 아프리카의 상황을 감안하면 아프리카가 보여준 실적은 그런대로 무난한 편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반구 시장에서 유리된 채 국제무역의 구성에서 보다 역동적인 발전을 이루는 부분에서 격리되어 고립된" 상태에서 아프리카의 수출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내용의 문제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피터 깁슨, 스테파노 폰테, <무역의 몰락(Trading Down)>(Temple University Press, 2005, 44쪽).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가 26개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출을 분석한 결과, 수출품목은 주로 1차산품에 집중(대략 85% 정도)되어 있고, 이런 현상은 1980년대 이후로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1차산품 수출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상품 수출로 이동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1980년대에 아프리카가 자본주의적 축적 및 전 지구적 자원흐름 회로에서 밀려나 더욱 더 주변화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조차도 당시의 현실을 실제 이상으로 좋게 표현한 것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놀랍게도 제3세계에 투자된 외국인직접투자의 25%가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러나 이 비중이 2000년에는 3.8%에 그쳤고, 지금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프리카로 흘러들어간 외국인직접투자는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연간 17억 달러였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38억 달러로 증가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 전체로 흘러들어간 외국인직접투자 가운데 아프리카로 흘러들어간 비중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같은 기간에 9%에서 5% 미만으로 낮아졌다. 이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로 흘러들어간 외국인직접투자 비중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1995년에서 2001년 사이에 아프리카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는 연간 70억 달러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3분의 2는 앙골라,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개국에 집중됐다. 또 이들 세 나라로 향한 외국인직접투자 가운데 90%는 석유부문으로 들어갔다. 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절반은 이런 외국인투자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외국인직접투자 가운데 3분의 2는 영국, 독일, 미국 등 3개국에서 온 것이고, 이들 세 나라가 1980년대에 아프리카로 들어간 외국인직접투자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세계투자보고서(World Investment Report)>에 따르면 2005년에 아프리카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는 180억 달러에 이르며, 그 중 50%가 4개국에 집중됐고 상위 10개국이 전체 투자액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4개 산유국이 신자유주의적 계획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해외 민간투자의 대부분을 독점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나머지 다른 나라들은 근본적으로 외국인투자 규모가 지극히 미미하다. 2005년은 '아프리카의 해'라는 이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유입된 투자의 규모는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아프리카의 축적위기와 자본 및 무역 흐름은 실제로 보면 복잡하고 불균등하다. 석유부문의 성장, 그리고 드물게만 존재하긴 하나 수출자유지역이나 다름없는 모리셔스와 같은 곳들에서 이루어지는 제조업부문의 성장 외에도 전 지구적 가치사슬이 불균등하게 출현하는 현상도 아프리카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부가가치 농업, 케냐의 화훼산업, 세네갈의 콩산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계약생산 형태는 특히 구매자가 결정권을 행사하는 유통망이 구축되도록 함으로써 소매상에게 막대한 권력이 돌아가게 한다. 이 때문에 이런 산업들은 아프리카 전역에 이미 존재해 온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동시에 아프리카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업가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는, 주위와 격리된 농업자본주의 지역들을 만들어낸다. 매우 높은 출산율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극심한 내전과 주거지 박탈에 의해서도 초래되는 인구압력 속에서 농촌의 상품화가 심화되는 현상은 토지를 둘러싼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아프리카 개발에서 새로이 등장한 생생한 풍경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놓고 보면 개발기관들의 활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 수 있다. 한편에서는 세계은행에서 경제학자로 일한 바 있는 윌리엄 이스털리가 원조(계획)는 철저한 실패이자 무책임한 실패였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가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속기사'들은 신자유주의의 옷을 입은 스탈린주의자들이다. 보노나 토니 블레어 같은 이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딧)의 대부인 모하메드 유누스(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옮긴이) 같은 '탐색가들'들을 많이 찾아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 반대편에는 이른바 '일인산업'으로 불리는 제프리 삭스가 있다. 그는 국제원조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프리카에 매년 300억 달러가 지원되도록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배구조의 실패 외에 빈약한 물리적 지리조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곤한 사람들을 구하는 데 부자들이 일조하도록 하기 위한 전 지구적 협약의 체결을 추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는 군사적 신자유주의라는 황량한 세계만 남아 있다. 이 세계의 한쪽 끝에는 군사력 동원으로 강화된 '축적의 엔클레이브'(석유복합체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와 다큐멘터리 영화 〈다윈의 악몽(Darwin's Nightmare)〉(과학실험을 위해 탄자니아의 빅토리아호에 유입된 외래종 물고기인 나일강 농어가 이 호수의 토종 물고기들을 모조리 잡아먹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주변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지만 외국자본들은 이 나일강 농어를 식용으로 가공해 수출해 돈을 버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옮긴이)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폭력적이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시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반대쪽 끝에는 경제침체, 퇴보, 불균등한 상품화라는 블랙홀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축적의 궤적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은 자원추출의 중심성 강화와 일차산품 생산으로의 복귀다.
현재 아프리카는 석유호황 바람이 불고 있는 주요 지역들 중에서도 중심지가 되어 있다. 이는 곧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취급되는 1차산품 부문에서 특히 석유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됐음을 뜻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세계 석유생산의 약 10%를 차지하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석유 매장량의 9.3%가 이곳에 묻혀 있다.
아프리카의 유전지역은 일반적으로 중동의 유전지역보다 좁게 분포돼 있고 석유가 매장돼 있는 위치도 더 깊어서 생산비용이 중동에 비해 3배 내지 4배가량 더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원유는 대체로 유황 함유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서 미국 수입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상업적 석유생산지로서의 아프리카는 탄화수소 시대에 접어든 후에 상당히 늦게 등장했다. 아프리카의 석유생산은 이집트에서 1910년에 처음 시작됐고, 1930년대와 1940년대만 해도 본격적으로 석유생산에 뛰어든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후원을 받은 리비아와 알제리뿐이었다.
현재는 아프리카석유생산국연합(APPA)의 회원국인 12개 주요 산유국들이 아프리카를 장악하고 있다. 생산량 순서로 보면 나이지리아, 알제리, 리비아, 앙골라를 비롯한 이들 12개국이 아프리카 전체 생산량의 85%에 이르는 석유를 생산한다. 아프리카의 주요 산유국들은 하나같이 석유에 대한 국가경제의 의존도가 매우 높다. 상위 6개 산유국들의 경우 원유 판매가 석유 관련 수출에 따른 정부세입의 75~90%, 국내총생산의 30~40%, 전체 정부세입의 50~80%를 차지한다.
1970년대까지는 북아프리카가 아프리카전체의 석유 및 가스 생산을 지배했지만, 그 뒤 30여 년에 걸쳐 아프리카의 석유생산 중심지는 확실하게 기니만으로 옮겨졌다. 기니만은 나이지리아에서 앙골라로 내려가는 해안의 풍부한 석유 매장지를 을 포함하고 있다. 이른바 '서아프리카 만 유역 국가들'로 구성된 기니만 지역은 공급부족과 변동성이 심해지고 있는 세계 석유시장에 아프리카 지역 공급자로서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과 석유산업 로비스트 집단은 기니만의 안전 보장, 미국의 이익, 기니만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가봉과 적도기니공화국은 일인당 석유 부존량이 많은 아프리카 산유국이며, 석유가 풍부하면서도 인구가 적은 쿠웨이트나 카타르와 유사하다. 세계의 상위 15대 산유국에 들어가는 아프리카 국가는 나이지리아뿐이다. 나이지리아, 알제리, 리비아는 각각 세계 석유수출국 순위 8위, 10위, 12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이 세 국가와 가봉은 모두 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이다.
아프리카의 모든 정부가 국영 석유회사를 통해 석유산업 부문을 관리한다. 국영 석유회사들은 주요 다국적 석유회사들과 함께 이런저런 형태의 협력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형태는 주로 석유에 대한 임차권을 부여하거나 공동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은 아프리카의 국영 석유회사들과 생산량 배분비율에 대한 약정을 맺는다. 다만 나이지리아는 석유사업이 대부분 합작투자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각국 정부들은 지리적, 기술적 기준 및 투자와 관련된 기준을 바탕으로 석유기업에 최저이윤을 보장한다. 국영회사는 생산비용을 우선 공제한 후 원유 생산량에 따라 합작사에 채굴보수를 지불한다. 아프리카의 3대 산유국에는 극심한 부패, 권위주의적 통치, 비참한 경제실적이라는 이른바 '자원의 저주'가 씌워진 상태다(이안 개리, 테리 칼, <원유통의 밑바닥>, Catholic Relief Services, 2003).
석유생산을 기업이 맡고 있는 국가와 독재적 정부가 담당하는 국가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석유생산과 관련된 투명성의 문제가 국제적 의제로 부상했다. 토니 블레어의 '자원추출산업 투명성 이니셔티브', 국제통화기금의 '석유진단 프로그램', 소로스 재단의 '정부세입 감시' 같은 것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규제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부패하고 무질서한 석유산업에 책임성이라는 허울을 덧씌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