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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16세, 본래 '종교간 대화' 말할 사람 못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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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16세, 본래 '종교간 대화' 말할 사람 못돼"

[분석] "이슬람은 악" 교황 발언, 도대체 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12일 독일 방문길에 이슬람을 '악'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해 이슬람권 전체가 분노에 휩싸여 있다.

<뉴욕타임스>는 15일 모로코의 일간지 사설을 인용, "지난해 유럽에서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한 만평으로 전세계에 소요사태가 빚어졌다가 겨우 잠잠해지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교황이 이슬람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오는 11월 베네딕토 교황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하는 이슬람 국가로 예정된 터키에서는 이미 그의 방문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종교간 화해' 공약 내건 교황이 '도발적 발언'

문제가 된 발언은 교황이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황제 마누알 2세 팔레올로고스의 발언"이라며 독일어로 인용한 대목이다. 옛 로마 황제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무하마드가 가져왔다는 새로운 것을 보라. 칼을 앞세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라는 그의 명령 같은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들만 보게 될 것"이라는 매우 '적대적인 발언'이었다.

특히 교황은 이같은 황제의 발언이 "지하드, 즉 성전(聖戰)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백히 교황은 이슬람이라는 타종교에 대해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도발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이슬람권 최고종교지도자들이 즉각 교황이 직접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터키의 최고종교지도자 알리 바르다코글루는 로마 가톨릭의 십자군이 동방 정교회 신도들과 유대교인, 그리고 무슬림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상기시키며 "교황이 만일 타인에 대한 기독교 세계의 원한과 증오, 적대감을 반영하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분노했다.

특히 터키는 베네딕토 16세와는 악연이 깊다. 그의 고향인 독일에는 현재 약 300만 명의 이슬람 교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약 260만 명이 터키계 주민인데도, 그는 추기경 시절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독일의 무슬림 중앙평의회 아이만 마지에크 의장은 십자군, 스페인의 종교재판소, 바티칸과 나치 독일의 관계 등을 거론하며 "교황이 다른 종교의 극단주의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바티칸은 이슬람권의 반발이 거세자 "교황은 무슬림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면서 "교황의 의도는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대화를 하기 위한 입지를 마련하자는 것임이 분명하며, 여기에는 이슬람도 포함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이같은 성명은 이슬람권의 반발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베네딕토 16세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만 증폭시키고 있다. 그가 나치 소년단원 출신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교황 취임 당시 '종교간의 대화' '타종교와의 화해'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4월 즉위 미사에서 '타종교와의 화해'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교황으로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종파를 초월해) 교회에 화합을 가져오는 일"이라며 "모든 기독교 종파와는 물론, 다른 종교와도 대화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톨릭의 역사상 과오를 인정하며 '종교간 대화'를 추진했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리적, 이념적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종교간 대화'를 강조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특히 지난해 8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독일을 방문한 교황은 이슬람단체 지도자들과 만나 "테러리스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를 해치기 위해 종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무자비한 행동을 벌이고 있다"며 "테러와 같은 광신적 행동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대화는 절대 필요하며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두 종교 사이의 상호존중과 연대,평화의 가치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상대주의가 교회에 미칠 위험성" 경계

"이슬람은 악"이라는 발언은 이같은 앞서의 발언과 크게 모순된다. 하지만 이미 가톨릭 진보 진영에서는 그가 추기경 시절 보여준 '완고한' 보수주의 노선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추기경 시절 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추구한 '종교간 대화'에 대해 가톨릭 교회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한 전력이 있으며, 그가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콘클라베)가 열리기에 앞서 추기경으로서 마지막 미사를 집전하면서 '상대주의가 교회에 미칠 위험성'에 대해 엄하게 경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시 "그 무엇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아와 욕망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상대주의 독재를 향해 우리는 가고 있다"면서 상대주의에 대한 반대를 앞으로 실천해야 할 중요 과제의 하나로 정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이같은 보수주의 입장 때문에 고국인 독일에서조차 그의 교황 취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지난해 4월 초 콘클라베에 앞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29%, 반대 36%로 그의 교황 취임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교황 취임이 결정된 뒤에도 독일 가톨릭의 개혁단체들은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선출은 '재앙'이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등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종교간 대화'를 싫어하는 강경 보수주의자로서의 이미지를 탈색하기 위해 그동안 '꾹 참고' 이슬람과의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세계 곳곳에서 폭력을 일삼는 테러리스트들이 대부분 무슬림인 것을 보고 그들을 상대로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는 상대'라고 결론을 내린 것일까?

이 때문인지 프랑스 무슬림 평의회의 달릴 부바쾨르 의장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인 이슬람주의와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혼동한 것이 아닌지, 교황청은 교황의 발언과 관련해 구체적인 입장을 신속하게 밝히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종교간 대화는 선교 수단"

그러나 일각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이번 발언이 가톨릭에서 말하는 '종교간 대화'의 본질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요한 23세에 의해 1962년 10월 소집돼 65년 12월 폐회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회개와 쇄신'을 기본 정신으로 가톨릭 교회가 개혁과 통합을 추진한 역사적 회의로서 세속 및 시대와 호흡을 같이하려고 노력한 점에서 '현대 교회의 혁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공의회 문헌에 따르면 '종교간 대화'는 일종의 '교화'를 의미한다. 자기 탓이 아닌 이유(지역이나 시대)로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선교 수단이 '대화'라는 것이다.

최근 가톨릭계 통신사인 <제닛>(www.zenit.org)과 인터뷰를 가진 푸파드 추기경(76)의 발언은 '종교간 대화'의 본질적 성격을 엿보게 한다.

그는 1982년부터 24년 동안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으로 활동해 왔는데,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지난 3월부터 '종교간 대화 평의회 의장'까지 겸임하게 된 인물이다.

그가 두 가지 평의회를 모두 이끌게 된 데에는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에 속한 사람들 간의 대화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교황의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푸파드 추기경은 종교간 대화와 문화간 대화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두 가지 영역의 대화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라면서도 "종교간 대화, 즉 교리에 대한 대화, 다시 말해 신, 죄악, 구원 등에 대한 교리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이는 항상 가능한 대화는 아니다"라고 시인했다.

'절대주의'의 본심을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발설한 베네딕토 16세가 앞으로 과연 '종교간 대화'를 어떻게 도모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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