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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는 결국 독일이 항상 이기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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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축구는 결국 독일이 항상 이기는 경기"

[프레시안 스포츠] 잉글랜드의 독일 축구 콤플렉스

28일 잉글랜드가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독일에 1-4로 대패했다. 잉글랜드 람파드의 중거리 슛이 오심 탓에 골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독일 축구는 잉글랜드보다 수준이 높았다.

베켄바워 "잉글랜드 뻥축구로 회귀" vs 잉글랜드 "독일이 만든 자블라니 때문에"

독일 축구의 전설 베켄바워는 예선에서 잉글랜드가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한 뒤, 잉글랜드 축구를 맹비난했다. 잉글랜드 축구가 힘에만 의존하는 킥 앤 러시 시대로 돌아갔다는 게 비난의 요지였다.

그는 "외국인 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프리미어리그를 갖고 있는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잉글랜드 선수들은 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다.

잉글랜드는 베켄바워의 비난에 격분했다. 영국 언론은 잉글랜드가 미국과 무승부를 거둔 근본 원인은 독일 스포츠용품사 아디다스가 만든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에 있다고 반격을 개시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자블라니를 시즌 중에 사용했지만 잉글랜드는 그렇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는 아디다스가 아닌 나이키와 계약돼 있던 상태였다. 또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도 엄브로와 계약 중이어서 자블라니를 평가전에서도 사용하지 못했다.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잉글랜드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수였다. 잉글랜드 국민들은 이 실수가 잉글랜드가 자블라니에 익숙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잉글랜드 선수들의 중거리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진 것도 반발력이 큰 '자블라니 효과'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 27일 블룸폰테인 프리 스테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독일과 영국의 16강전에서 잉글랜드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30. 리버풀)가 득점 기회를 놓친 후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AP=뉴시스

"이제 영국이 미국보다 잘 하는 건 오직 영국식 영어"

2차대전 이후 영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는 '쇠퇴'라고 한다. 대영제국 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영국은 미국과 구소련 중심의 새 국제질서에 적응해야 했다. 문제는 그들의 역할이 뭐냐는 것이었다.

영국은 국제사회의 '어니스트 브로커(성실한 중재자)'를 자처하며 자존심을 지키는 방향을 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힘에 적당히 의존하고, 이를 활용하는 실리적인 정책도 수립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영국에서는 미국 콤플렉스가 깊어졌다. 영국이 성실한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영향력이 점점 미미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원조집은 영국인데 정작 재미를 보는 건 항상 미국이라 심리적 박탈감이 더 컸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골프의 원산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펼쳐지는 '더 오픈'을 '브리티시 오픈'이라고 부른다. 미국인들에게 진짜 골프 대회는 역사는 뒤져도 마스터스 대회다. 이처럼 근대 스포츠의 역사는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그 문화가 꽃을 피운 건 미국이었다.

미국 스포츠의 압도적인 상업화와 국제화는 영국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스포츠 상업화에 대한 엄격한 비판문화와 견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스포츠 상업화에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영국은 비판의식이 오히려 약해졌다. 영국에도 미국식 스포츠 상업화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조 예선에서 잉글랜드가 미국과 무승부를 기록하던 날 영국에서는 "이제 우리가 미국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뭔가?"라는 질문이 난무했다. 영국인들은 "축구마저 안 된다면 이제 남은 건 영국식 영어뿐 일 것"이라며 농담을 했다. 미국에 대한 자기비하식 유머코드가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독일 콤플렉스

정치, 외교적으로 미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영국을 지배해 왔다면 독일은 영국에 경제적인 콤플렉스를 안겨줬다. 항상 제일 튼튼하고 기능적인 제품을 생산했던 독일을 보며 영국은 또 다른 박탈감에 시달렸다.

그 중 가장 큰 박탈감은 축구였다. 잉글랜드는 큰 대회만 나가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독일을 질투했다.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에서 서독을 제압한 뒤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너희를 세 번이나 이겼다. 1, 2차 세계대전과 이번 월드컵에서."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1990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잉글랜드는 서독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유럽축구선수권)' 준결승에서도 독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역시 승부차기 패배였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독일에 질 때마다 실수가 없는 독일 선수의 킥을 부러워했다. 독일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나 정밀기계처럼 그들의 승부차기도 오작동이 없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축구화에 대해서도 잉글랜드는 독일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서독이 1954년 월드컵에서 헝가리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하는 원동력은 아디다스가 서독 대표팀에 공급해 준 축구화였다. 스터드(징)를 교체할 수 있는 방식의 이 축구화는 비가 오던 당시 결승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잉글랜드 축구화는 1970년대까지 유럽 대륙의 선수들이 신는 축구화에 비해 상당히 무거웠다. 위협적인 태클로부터 발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강하고 긴 킥에 무거운 축구화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잉글랜드 축구화는 기술적인 패싱 게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1980년대부터 경량화 됐다.

"축구는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경기"

전통적으로 게르만 순혈주의를 강조했던 독일 축구는 2000년대 이후 서서히 이민세대 축구선수들에 의해 변화를 맞이 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독일은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다. 기존의 클로제, 포돌스키 등 폴란드 태생 선수와 함께 브라질 출신 카카우, 아프리카 혈통의 보아텡(가나), 케디라(튀니지)와 터키 이주노동자의 아들인 외질 등이 있어서다.

덕분에 딱딱한 독일 게르만 전차군단의 이미지는 달라졌다. 아직도 남미나 스페인 등에 비해서 선이 굵은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공간 패스가 돋보인다. 왼발을 잘 쓰는 외질은 지금까지 독일 축구에서 자주 볼 수 없던 테크니션. 상대 수비를 마치 브라질 선수처럼 힘 하나 안 들이고 제친다. 자로 잰 듯한 정확한 전진 패스로 상대 밀집 수비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독일에 터키 이민자들은 상당히 많다. 이들은 대부분 독일 주류사회의 주변인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성공기회 중 하나가 축구다. 외질은 그런 점에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향후 독일 축구에서 터키 이민자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달라진 독일에 비해 잉글랜드 축구는 제자리걸음이다. 늘 월드컵을 앞두고 우승의 꿈을 품지만 최종 성적표는 기대 이하다. 그래서 축구 종가의 팬들은 실망과 좌절에 익숙해졌다.

잉글랜드 축구 스타로 현재 <BBC>에서 이번 월드컵 중계를 하고 있는 게리 리네커는 잉글랜드의 독일 축구 콤플렉스를 이렇게 표현했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따라 다니는 축구는 결국엔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경기다."

28일 독일에 패한 잉글랜드의 팬들은 펍(선술집)에서 맥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들이 주문한 술안주는 음식이 아니었다. "축구는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는 자조적인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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