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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미국을 미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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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미국을 미워할까?"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32> 반성적 물음 없는 9.11 테러 5년

9.11 사건이 어느덧 5주년이다. 필자가 뉴욕에 머물 때 맞았던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뉴욕 맨해튼을 감싸던 매캐한 냄새, 하늘을 날던 작은 종잇조각들, "왜 테러공격을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멍한 표정들…. 눈을 감으면 그날의 어수선한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기억의 창을 두드린다.

9.11 후폭풍은 국제정치의 지평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 아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북한, 이란, 시리아의 정권교체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그런 서슬에 질린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반미 깃발을 거두고 항복했다. 미국의 패권 범위는 전지구적으로 넓어졌다.

그렇지만 오늘날 '미국의 평화'는 없다. 걸핏하면 테러 비상이 걸리고 미국인들은 테러 노이로제에 걸렸다. 9.11 테러 뒤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우리를 왜 미워하는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논란으로 지구촌이 들끓던 격동의 시대를 산 프랑스 정치학자 레이몽 아론은 "어지러운 시절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테러는 왜 일어나는가, '테러와의 전쟁'은 올바른 전쟁인가, 도대체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 물음들을 꼬리를 문다.

60년을 뛰어넘는 연결고리, 석유

9.11 테러는 '제2의 진주만 공습'이라 일컬어진다. 1941년 12월 8일의 진주만 공습,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60년 차이를 둔 두 사건 사이엔 석유를 향한 탐욕과 갈등이란 공통점이 깔려 있다.

첫째, 일본과 미국 석유. 1940년대 초 일본이 중국 본토를 마구 점령해 들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미국은 필리핀을 비롯한 자국의 동남아시아 이권이 위협당하는 것을 느꼈다. 그 무렵 일본이 가장 많은 석유를 들여오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대일 석유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석유가 모자란다면 산업도 타격을 입지만, 일본 제국주의 대외침략의 선봉장이던 일본 연합함대도 기동력을 잃게 된다. 위기를 느낀 일본군 지도부는 석유가 풍부한 인도네시아(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점령을 목표로 동남아 침공을 서둘렀다. 미 태평양 함대를 침몰시킨 일본의 12.8 진주만 공습은 동남아 침공의 걸림돌을 제거한 전초전이었다.

둘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9.11의 주역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에 대해 "아라비아반도의 신성한 이슬람 영지를 점령해 재물을 약탈하고 통치자를 억누르고 이웃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1998년 발표한 선언문 '유대인과 십자군에 저항하는 세계 이슬람전선의 성전')고 비판했다. 빈 라덴은 △사우디에서 재물(석유자원)을 약탈해 가는 미국 △미국에 석유를 대주고 미군기지를 제공한 사우디의 부패 왕조 △미국의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을 식민통치하고 이슬람 국가들을 위협하는 이스라엘, 이 셋을 중동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폈다.

"왜 우릴 미워하나…" 반성 없어

3천 명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앗아간 9.11 테러 사건의 파장은 컸다. "우리 미국이 뭘 잘못했기에 테러 공격을 받았나. 그들은 왜 우리를 미워하는가"라는 반성적인 물음보다는 응징과 복수를 바라는 목소리가 지난 5년 동안 미국을 지배해 왔다. 미국인들은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미군 통수권자 부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부시의 군대는 '테러와의 전쟁' 깃발을 흔들며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로 진격해 들어갔다.
▲ 미국인 3명 가운데 한 명은 "테러전쟁에서 결국 테러분자들이 승리할 것"이라며 불안해 한다.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서 슬퍼하는 미국인 남녀. ⓒ 김재명

많은 미국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자유의 나라' 미국을 그저 맹목적으로 증오한 나머지 테러 공격해 왔다고 여긴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그런 미국인들의 답답한 세계관 형성 과정에는 상업주의와 애국주의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미국 주류언론의 역할이 크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미국 중심적 세계관은 두 요소의 기묘한 혼합이다. 하나는 '미국은 세계평화를 지키는 자비로운 패권'이라는 정치적 우월주의, 다른 하나는 '미국은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수호자'라는 신자유주의다. 미국적 질서에 도전하는 제3세계의 불순한 움직임은 초전박살내야 한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스>의 국제담당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라크 침공은 (반전평화 운동가들이 늘 지적했듯이) 석유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테러전쟁은 전쟁범죄 면죄부?

9.11이 낳은 새로운 시사용어가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과 '테러와의 전쟁'이다. 미국의 영토와 시민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나 단체를 선제공격해 들어가겠다는 부시 독트린은 지구촌 평화에 위협요소다. 국제법을 무시하고 9.11 테러와는 관련 없는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부시 행정부는 세계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부시는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테러전쟁은 전쟁범죄를 저질러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환상의 마법과 같은 전쟁인가. 미국이 국제법을 무시한 초법적 군사행동에 나서자 다른 나라들도 흉내를 낸다. 러시아는 체첸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우리도 테러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테러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미국이 이길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확신을 하지 못한다. 최근에 AP-입소스가 미국인 1천 명에게 물어보니 3분의 1은 "테러전쟁에서 결국 테러분자들이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60%는 "미국 안에서의 테러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다"고 여긴다.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과는 다른 대답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테러사건들은 9.11 전보다 더욱 늘어났다. 정치학자들은 그 까닭을 "알 카에다가 조직에서 운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알 카에다의 반미 지하드(jihad, 성전) 이념에 공감하는 자생적인 반미조직들이 지난 5년 동안 곳곳에서 생겨났다. 빈 라덴은 9.11 5년을 맞아서도 여전히 '지하드 닷 컴'(jihad.com) 회장이다. 글로벌 반미 지하드의 이념적 중심축으로서의 '알 카에다 주의'는 여전히 큰 힘을 갖는다.

끝없는 전쟁

19세기 초 프러시아의 전쟁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유명한 『전쟁론』에서 전쟁을 가리켜 '다른 (물리적) 수단들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으로 정의 내렸다. 테러도 마찬가지다. 테러라는 폭력적인 현상은 그 행위자들의 열정과 분노라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지구촌을 휩쓰는 테러의 뿌리를 보면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깔려 있다. 테러는 그에 대한 저항운동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석유자원 챙기기,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 더 나아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겠다는 패권전략을 비판하는 물리적 저항이 곧 테러다.

미국이 벌여온 테러전쟁은 '전쟁발발→전투→종전협정→평화'라는 고전적인 등식과는 다르다. 부시 대통령은 "전세계적으로 연결망을 지닌 테러조직을 모두 찾아내 뿌리를 뽑을 때까지 전쟁을 벌이겠다"고 거듭 말해 왔다.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그 전쟁은 '끝없는 전쟁'이다. 미국이 석유자원 확보와 패권 확장을 노린 군사적 일방주의를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이슬람 민중의 삶의 권리도 존중하지 않는 한 반미 테러의 동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의 정치적 동기 헤아려야

미국의 반전평화주의자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추구가 끝 모를 테러전쟁의 시대를 열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테러라는 이름의 정치적 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무엇이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었고, 끝내는 죽음을 마다하는 자살폭탄을 터뜨리게 하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면 테러는 끝이 없다.

미국과 그 동맹국(이스라엘, 영국)의 밀어붙이기식 대외 강공책은 빈 라덴 이념에 머리를 끄덕이는 청년들에게 투쟁명분을 만들어줄 뿐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적인 모순, 테러와의 전쟁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이 글은 <한겨레신문> 9월 8일자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임).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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