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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광풍에도 굳건한 '공동결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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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광풍에도 굳건한 '공동결정제도'

박명준의 '유럽에서의 사색'〈5 > 獨 공동결정법 서른돌

1976년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의 제정으로 공식화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독일의 산업평화와 경제부흥에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이 제도로 지난 30년 간 독일에서는 2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대기업의 감사위원회에 노동자 대표가 사측 대표와 동수로 참가해 최첨단의 산업민주주의를 구현했다.

어제 8월 30일은 바로 이 제도가 법률로 제정된 지 30년째 되는 날로 독일 노총(DGB)은 이를 크게 자축했다. 특히 당일 축하연이 벌어진 베를린의 노총본부에는 독일의 노·사·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모두 얼굴을 비쳤고, 앙엘라 메르켈 현 독일 총리 역시 자리를 함께 했다.

보수 성향의 여당인 기민당(CDU) 소속의 메르켈 총리는 이날 발언에서 "공동결정제도를 계속해서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기업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는 저간에 논란이 되어 온 이 제도에 대한 강경 우파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신문들도 일제히 "메르켈, 공동결정제도 지지!"의 제목을 달며 이날 총리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폐기·축소와는 거리가 먼 공동결정제도 개혁 움직임
▲ 8월 30일 독일 노총 본부에서 공동결정제도 지지 연설을 하는 메르켈 총리. ⓒcome-on.de

근래에 유럽화와 세계화의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비판론자들은 "독일의 기업들이 공동결정제도로 인해 경쟁에서 불리하다"며 "해외자본이 독일기업에 투자하기를 기피하기 때문에 이 제도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조와 사민당(SPD) 등 좌파들은 "지난 30년 간 독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지금도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공동결정제도를 오히려 세계화의 조류에 맞게끔 더 발전시키고 확대시키면 시켰지 이를 축소, 폐지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맞서 왔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이전 정부는 정권 하반기에 노사정 대표와 중립적인 전문가가 참가하는 '공동결정제도 개혁위원회(Mitbestimmungskommission)'를 설치해 이 제도 개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이 위원회의 활동은 현 정부에 들어서까지 계속되고 있다.

30년 전 당시 공동결정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기민당의 정치가이자 사회과학자인 비덴코프(Biedenkopf) 교수의 이름을 따서 '비덴코프 위원회'라고도 불리는 이 위원회는 올해 11월에 지난 2년여의 활동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의 소식에 의하면 위원들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도에 손질을 가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공동결정제도는 세계화 시대에 맞게 수정되어 갈 것이지만 향후 독일에서 결코 폐기되거나 크게 축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좌·우파 막론하고 애지중지하는 공동결정제도

민주화, 세계화 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제도를 개혁하는 데에서 노동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는 국내 노사관계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국내의 논의는 여전히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안정화와 우리 식의 산업민주주의가 채 정착되기도 전에 세계화의 격랑을 만난 한국은 독일과 달리 '수정할' 공동결정제도가 없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노동운동을 순치하려는 취지를 갖고 독일의 모습을 피상적으로 따르면서 설치한 노사협의회가 명목상 존재하지만, 독일의 경영참가제도에 비하면 사실상 그 기능이 미미하다고 하겠다.

우리의 경우 뒤늦게 일어선 노동조합의 거친 목소리가 20여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재계는 강경하게 '신성한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노조의 주장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만 보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 탈규제 시장화를 본질로 하는 세계화의 물결은 그 동안 한국기업들이 애지중지 발전시켜 온 '일방결정제도'를 유지하는 데 오히려 호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경유착과 노동 배제를 기반으로 지난 40여 년 간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자본주의 모델'을 민주화, 세계화 시대에도 계속 고수하겠다는 그들의 입장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한국의 보수신문들도 대체로 이러한 재계의 입장에 서서 노조의 '음험한 도전'을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매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독일의 정세에 대한 왜곡도 서슴지 않으며 무조건 독일식 공동결정제도를 암울하게만 묘사해 왔다. 그러나 정작 독일의 노조와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 정객들마저 이 제도가 향후 계속해서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야 할 좋은 제도로 간주하는 모습에 대해 우리의 보수신문들과 재계는 어떠한 입장을 낼 것인가?

공동결정제도 전문가이자 필자의 동료인 독일의 정치학자 마틴 회프너 박사는 공·사석에서 늘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논란은 현실과 유리된 그야말로 이데올로기 공세에 불과하다"고 못 박는다.

세계적으로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소문이 난 독일인들이 일각에서 반시장적이고 사회주의적이라고 매도하는 공동결정제도를 좌우를 막론하고 왜 그렇게 애지중지하는지에 대해 먼저 깊이 있는 고찰을 하면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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