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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정권에 미국은 죽음의 키스"

[해외시각] '새 중동'은 미국 아닌 아랍 급진파가 만들것

이스라엘 군이 레바논 민간인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해 온 '레바논 사태'가 7일로 27일째를 맞았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은 이같은 이스라엘 군의 만행에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행위를 '자위권 행사'라고 비호하면서 뒤로는 무기까지 대주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기만적인 정책'은 미국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네오콘 감시자'로 정평 있는 언론인 짐 로브는 '레바논 사태'를 계기로 '네오콘'이 움직이는 미국에 대해 아랍세계 전체가 등을 돌리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민간 국제통신사 <IPS> 워싱턴 지국장이기도 한 짐 로브에 따르면 레바논 사태로 인해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국민들로부터 더욱 더 고립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은 아랍세계에서 '죽음의 키스'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짐 로브가 쓴 '아랍세계에서 미국은 죽음의 키스(The US is the kiss of death in the Arab world)'라는 글의 전문 번역이다.(
원문보기) <편집자>

'아랍세계에서 미국은 죽음의 키스'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전투가 거의 4주가 돼가면서, 아랍의 중동을 친서방적이며 보다 민주화된 지역으로 바꾸겠다는 미국 행정부의 야심은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고 있다.

중동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해 온 미국은 놀라운 속도로 아랍의 민심을 잃고 있으며, '개혁의 촉매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미국이 기대했던 아랍의 '온건파' 정권들과 '비정부세력'들은 이 지역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친미' 요르단 국왕도 미-이스라엘에 경고

레바논의 일간지 <안-나하르>의 워싱턴 특파원 히샴 멜함은 최근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미국이 지금처럼 아랍권 논객과 정치인들로부터 악마 또는 야수로 묘사될 정도로 격렬하게 비난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랍권) 사람들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에게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미-이스라엘의 패권적 구도에 저항하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세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 아랍 여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블리 텔하미는 이 회의에서 "현재, 미국은 죽음의 키스(같은 존재)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배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개혁에 앞장서고 보다 대표성을 갖도록 하려면, 그에 걸맞는 정책을 써야 한다"면서 "(미국이 사용하는) 레바논 정책은 집권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아니라 (온건파 엘리트와 국민들의) 틈을 벌리는 정책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격파에게 기울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름아닌 압둘라 요르단 국왕이 이같은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레바논 사태 초기만 해도 그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함께 헤즈볼라의 '모험주의'를 비난했다. 무모하게 레바논 국경을 넘어 공격해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아랍에서 미국과 가장 밀접한 동맹'이라는 압둘라 국왕은 지난 3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실이 있다"면서 "그것은 (레바논과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과 점령 행위가 지속되는 한 저항과, 저항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과 파괴의 모습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자제를 위해서는 모종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어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정책은 아랍세계의 극단주의 세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면서 "이번 전쟁은 온건파의 목소리를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분쇄'라는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도-사실은 갈수록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이지만- 포괄적인 평화방안이 도출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헤즈볼라가 요르단, 시리아, 또는 이집트 등지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중동을 변화시키려는 미국의 희망은 급속히 빛이 바래고 있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레바논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시리아 점령군을 쫒아낸 사례를 중동지역에 민주적인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도미도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거듭 거론했지만, 레바논뿐 아니라 미국이 변화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쏟았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이미 처치 곤란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의 '늪'이 된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는 미 국무부가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정한 하마스가 지난 1월 총선에서 승리를 했을 뿐 아니라, 미국 주도의 원조과 하마스 정부에 대한 외교적 고립정책은 하마스의 대중적 인기를 강화시키는 한편, 미 정부가 '중재자'로 선호하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하마스를 공격한 지 6주째가 되고 있지만, 하마스의 대중적 지지가 약화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에서는 미국이 현재 매달 70억 달러 가까이 쏟아붓고 있지만, 미국이 앞장서서 마련해준 일련의 선거는 참혹한 종파적 내전으로 빠져드는 길을 재촉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내전'은 지난 4일 미국의 고위 장성 2명(피터 페이스 합참의장과 존 아비자이드 중부군사령관)이 점점 가능성이 높아진 시나리오라고 시인한 바 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라크 주재 윌리엄 페티 영국대사도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보낸 비밀전문을 통해 "이라크는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성공적이고 실질적인 이행이 이뤄지기보다는 현단계로 볼 때 '저강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시아파의 근거지인 레바논 남부와 남부 베이루트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으나, '온건파'이자 친서방 성향의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가 이끄는 현 레바논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당초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헤즈볼라의 대중적 인기는 올라갔다.

'아랍 급진파'가 득세할 새로운 중동 등장하나

헤즈볼라와 최대 앙숙 관계인 레바논 드루즈파의 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조차 최근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항하는 시아파 무장단체, 즉 헤즈볼라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이는 결국 레바논 중앙정부의 약화와 헤즈볼라의 강화, 나아가 시리아와 이란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모든 중동정책은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의 실패, 그리고 레바논에서의 이번 실패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말한 '새로운 중동'이 아니라, 소위 '아랍 급진파'들이 득세할 새로운 아랍세계가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레바논 사태로 이라크에서 미국의 입지도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이라크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와 이라크 지도부의 많은 사람들이 레바논의 시아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들도 레바논 사태로 인해 미국과의 사이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시아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수십 명의 시민들이 살해된 레바논 카나 마을 사건이 일어나자 "이스라엘이 즉각 공격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시간대의 중동전문가 후안 콜에 따르면 시스타니의 경고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다. 그는 "시스타니는 대대적으로 반미, 반이스라엘 시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라크의 정치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이같은 사태가 전개되면 매우 위험하다"면서 "미국은 수니파 반군도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미국에 대해 1600만 시아파들이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목표는 급속하게 완전히 물건너가게 된다"고 경고했다.

수니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의 가장 충직한 동맹국들도 압둘라 요르단 국왕이 지적했듯, 헤즈볼라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급진파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점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아랍 독재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압력, 더 이상 안 먹혀"

요르단 전략연구센터의 선임연구원 하산 바라리는 "국민들에게 아랍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입장은 없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비쳐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또다시 극단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있으며, 온건세력과 동맹국들의 입지를 뿌리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헤즈볼라는 아랍 지도자들의 허점과 순종성을 노출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아랍 정권들의 이같은 허점은 통치자와 국민들의 간극이 위험한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사실과 결합해 다음과 같은 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부시 행정부가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독재 국가들이 정치적 개혁을 수행하도록 가해 온 압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번역: 이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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