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어떤 입장을 밝히고 나서려고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폭넓게 탄압이 가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탄압이 반드시 좌파에 집중되거나 우파에 집중되고 있지는 않다. 정부가 대응조치를 취하느냐 여부를 가르는 관건은 국가에서 수용할 수 있는 틀 밖으로 얼마나 멀리 나갔느냐에 있다.
심지어는 개혁정책을 지지하고 농민들을 독립적인 '시민'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토지의 사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한 이주노동자 조직가도 '인권' 신장을 위한 회의를 베이징에서 열려고 했다는 이유로 감금당했다. 조직화된 방식으로 일당지배를 종식시키려는 그 어떤 공개적인 시도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것이며, 공적인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지배를 훼손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모두 그 구체적인 정치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곧바로 문제가 된다.
'중국 노동자들의 웹사이트와 토론 목록'
이런 억압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급속히 확대되는 노동계급의 투쟁에 보다 조직화된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에 당국에는 특별한 위협으로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당국이 취한 상징적인 조치는 '중국 노동자들의 웹사이트와 토론 목록'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폐쇄시킨 것이었다. 유사한 다른 토론모임들과 달리 이 웹사이트는 "오늘날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자신들의 투쟁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된 중국 최초의 웹사이트"였다.
이 사이트에서는 노동자계급에 속하는 지식인을 포함한 모든 지식인들이 "노동자와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 노동자들과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이런 연결은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각별한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웹사이트의 베이징 지역 편집진의 일원이었던 사람이 설명했듯이 "정부는 지금 사회주의를 실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이 마오주의 시대의 공산당과 지금의 당을 달리 본다"고 말했다.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공개적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웹사이트는 자본주의가 제공하지 못하는 종류의 민주주의를 노동자가 갖도록 해주는 것이니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실현하기를 원할 만한 것"이었다고 위 사람은 말했다. 그러나 당국은 노동계급에 속하는 회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액의 등록비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 웹사이트를 폐쇄했다.
노동자와 농민들 및 넓은 범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신중산계급 안에도 경제체제와 정치체제가 보다 투명해져야 하며, 각자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더 많이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폭넓게 존재한다. 미국식의 '선거제 민주주의'는 중국에서 아직 폭넓은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민주적 권리에 관한 이야기 자체는 그야말로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야당의 존재가 실현돼야 할 주된 과제다. 지금 많은 노동자들이 "일당 체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당 안에서도 공개적인 토론의 공간을 더 넓히는 방안을 찾기 위한 논의가 일어나고 있고, 새로 생겨나는 '시민사회'의 비정부기구들이 여성인권과 환경을 비롯한 광범위한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서가 폭넓게 퍼져 있으며, 정부도 단순히 억압하는 것만으로는 이에 대처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변화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통해 이런 도전에 대응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정부가 취하고 있는 공식적인 개혁정책은 겉으로는 민주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계급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향진정부('향진'은 중국의 말단 지방행정 단위-옮긴이) 구성에 선거제가 도입됐지만, 그것은 대체로 위에서 당이 지명한 사람을 승인해주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많은 영역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주화의 영역에서도 사회주의 시기의 기억들, 특히 문화혁명 시기에 노동자와 농민들이 공장과 농장의 운영에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대학과 지방정부의 운영에도 참여했던 경험의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하나의 비교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기준은 그러한 정치적 권리들이 모두 박탈된 지금의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실행해 온 민주화 개혁조치들은 마오의 혁명을 뒤집어 놓았고, 노동자들의 삶도 뒤집어 놓았다. 그런 개혁조치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한 형태다."
따라서 중국에서 수용될 수 있는 정치적 개혁의 방법은 노동자와 농민에 의한 통제라는 좌파의 개념을 현재 전 세계에 걸쳐 진보적 의제의 하나로 떠오른 참여적 민주주의에 결합시키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의 탐구는 이미 시작됐다. 2004년에 좌파 혁명원로들이 후진타오 국가주석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로 제기한 요구 중 하나는 권력의 남용을 제어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밑으로부터의 대중투쟁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민주적 체제의 한 부분으로서 노동계급에게 당과 국가의 기능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통일된 운동을 구축해 그러한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오늘날 세계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존재한다. 과거의 유산에도 불구하고 나이든 노동자와 농민들은 이른 시일 안에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의 새로운 단계에 이르지 못할 경우 혁명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것이고, 젊은 세대는 부자가 되고 소비문화에 편입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근본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될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농촌정책 변경과 그 의미
그러나 중국인들은 '전에 가보았고 해보았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때로는 전망이 요원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급행노선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남아 있고,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다시 한번 중국이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가까운 미래에 중국에서 일어날 변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다수의 가능한 시나리오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국 계급구조의 복잡성과 양극화가 중국 사회를 서로 모순된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끌어당기고 있어, 폭넓은 범위에 걸쳐 다양한 결과가 가능한 게 지금 중국의 상황이다.
이런 점은 노동계급의 여건과 새로운 도전과제들에 대한 당과 국가의 대응에서 최근 보이는 변화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농촌에서 더 이상의 소요를 막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 중국의 두 최고 지도자는 농촌정책에 일련의 변경을 가했고, 이런 정책변경은 대단히 극적인 효과를 낳았다. 새로 도입된 농촌정책 중에는 그동안 농민들로 하여금 항의에 나서게 한 주된 원인이었고 대부분 불법적인 것이었던 지역적 공과금의 대부분과 농업세의 폐지도 들어 있다. 또한 정부는 소규모 도시와 농촌마을에 있는 공장들에 대한 투자를 포함해 농촌지역에 대한 투자, 특히 농촌지역의 교육, 보건, 환경을 위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런 조정정책들은 농산품에 보다 유리한 가격을 설정한 조치와 더불어 많은 농민 가정들에 가해지던 경제적 압박을 상당히 경감시키고 있다. '사회주의 신농촌'이라는 말도, 비록 그 의미가 아직은 분명하지 않으며 이미 도입된 농촌정책에 보다 좌파적으로 들리는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혁정책의 틀 안에서의 개혁조치로서 그동안 발표된 것들이 과연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것인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지배구조에 내재된 특징이기도 하지만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에서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던 과거의 경험, 그리고 종종 부패한 관리들이 농촌지역의 땅을 개발업자에게 팔아치우는 행위가 여러 지역에서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농촌정책 변경이 가져온 충격효과 한 가지는 이미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불과 3~4년 전의 상황과 분명히 달라진 것은 해안지역의 수출단지들이 노동력 부족을 점점 더 많이 겪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고향 농촌마을로, 아니면 고향과 가까운 내륙도시로 돌아가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새로운 움직임은 부분적으로는 고향 농촌마을이나 고향 인근 도시의 나아진 여건을 이용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해안지역의 공장에서 당해 온 가혹한 착취를 거부하는 태도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역이주(逆移住)는 이주노동자들의 고조된 의식, 저항, 조직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다수는 이제 단련된 경력노동자이며, 보다 어렸을 때 자신들을 유혹했던 해안지역 도시의 여건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공장에서 선호되지만 가장 심한 착취적 여건 속에서 일하게 되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농가의 젊은 여성들이 해안지역 공장지대로 이주하던 흐름도 역시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수출산업으로 하여금 충분한 규모의 노동력을 계속 유인하기 위해 임금과 기타 부가지급의 인상에 나서도록 강요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수출산업이 베트남, 인도, 방글라데시와 같이 노동비용이 더 저렴한 나라들로 공장을 이전하는 '바닥으로의 경쟁'을 시작하는 조짐도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과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는 가운데 그 세계 자본주의 시장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고려하면, 중국 안에서 시도되는 모든 조치는 추가적인 모순을 불러일으키게 돼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의 현 체제를 교정해줄 단순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국내시장이 커지고 있다 하더라도 국제경쟁력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그 결과로 경제성장 속도가 떨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이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사회적 평등"을 새로이 강조하면서 시도하고 있는 정책수정을 계속 밀고나갈 여력이 빠르게 잠식될 뿐 아니라 대규모 혼란이 초래될 위험도 있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이런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좌파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힘을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좌파의 영향력이 점점 더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눈에 띄는 사례가 2006년 3월에 발생했다. 아마도 10년 만에 처음인 듯한데, 공산당이 운영하는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중국의 지속적인 고속 경제성장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에 매장됐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이념논쟁에 휘말렸다. 이 논쟁으로 인해 중국 정부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던 재산권 보호 법안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고, 규모는 작지만 목소리가 큰 사회주의 성향의 학자나 정책자문자 집단의 영향력이 다시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예전의 좌파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 지식인은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사회불안이 고조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국가가 사적인 부의 축적과 시장 주도의 경제개발을 무분별하게 추구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공격을 과거 시대로의 후퇴라고 일축한 사람들은 현저한 빈부격차, 만연한 부패, 노동자 인권 침해, 토지 수용 등으로 인해 중국의 현실이 그 공식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매우 멀어졌음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재확인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지속적으로 발휘하는 호소력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뉴욕타임스> 2006년 3월 12일). 재산권 보호 법안은 장기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만,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 시장의 역할 확대를 허용"하자는 제안이나 보다 급진적으로 토지의 사유화를 요구하는 주장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최고위 지도층도 적어도 겉으로 만이라도 사회주의 쪽으로 다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정부와 당이 자본주의적 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사회주의는 여전히 중국 정부와 당의 이론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후 주석은 2002년에 권좌에 오른 이래 마르크스주의를 칭송하고 마오를 찬양하는가 하면 중국의 공식 이데올로기인데도 종종 무시돼 온 사회주의 이념을 지금의 시대현실에 대해 보다 적합성이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에 재정지원을 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좌파로서의 자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뉴욕타임스> 2006년 3월 12일).
당과 정부의 새로운 시도
당의 부패가 깊이 뿌리 내렸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면서 기울어가는 당의 정통성을 복구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마오 시대의 방법들이 부활되기도 했다. 마치 조직 내 혼란과 대중적 이미지의 실추를 걱정하는 거대 기업처럼 중국 공산당은 지금 스스로를 효율적이고 현대적인 기능적 조직체로 탈바꿈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 공산당은 자신의 옛 정치적 수단, 다시 말해 학습모임들을 갖춘 마오주의 식의 이데올로기 캠페인을 선택했다. 최근 14개월 이상 중국 공산당의 7000만 당원들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연설문들은 물론이고 1만7000여 자로 씌어진, 읽어내기 힘든 논문과 같은 당헌을 읽으라는 명령을 받아 그렇게 했다. 아울러 당원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돼 있는 당의 회의는 기간당원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도 비판하는 절차를 두기에 이르렀다(<뉴욕타임스> 2006년 3월 9일).
이런 캠페인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개혁의 노력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나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냉소의 대상이 됐다. 어쨌든 이런 캠페인은 그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당이 원래의 혁명적 목표들로부터는 물론이고 마오가 요구한 "인민에게 봉사"하는 역할로부터도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가를 인정한 결과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후와 원이 사회주의 혁명을 부활시키거나, 당과 국가가 지난 30여 년 동안 몰입해 왔고 이제는 각종 경제적 흐름들과 긴밀하게 얽히게 된 자본주의의 길로부터 당과 국가를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혹시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회주의의 개념들을 확산시키는 홍보가 공식적으로 펼쳐지고 마오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확산되는 것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좌파가 더욱 분명히 부활할 수 있도록 보다 넓은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중국의 좌파가 전 세계 좌파 세력의 투쟁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런 투쟁들과 보다 더 긴밀한 관계를 가지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되는 논의와 격리되어 고립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중국 좌파의 그간 추세와 다른 것이다. 아울러 외부와의 연결을 제한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급속히 확장되는 통신망과 조직망을 통해 외부와의 연결이 진전되고 있다.
노동계급의 삶의 여건 악화는 노동계급을 보다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방향으로 급속히 몰아가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다수의 지식인들, 보다 넓게는 신중산계급의 일부도 지구적 자본주의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자신들이 마오의 지도 아래 건설했던 혁명적 사회주의가 오늘날 앞으로 나아갈 대안의 길의 윤곽 정도는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점점 더 깊게 이해하고 있다. 중국의 공장과 농장에서 노동자와 농민들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적 착취에 저항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은 '대안의 길'에 대한 기억을 아직 갖고 있다. 그리고 개혁정책 이전의 사회주의 시대에 영위했던 삶의 경험으로부터 그들은 지구적 자본주의의 통제되지 않는 광란에 대응해 실행 가능한 대안의 길이 존재함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유산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어떤 형태로도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동안 워낙 많은 변화가 있었고, 너무 많은 요정들이 갇혀 있던 병에서 빠져나왔기에 그들 모두를 병 속에 다시 집어넣을 수는 없게 됐다. 과거의 실패와 오류는 그 성공이나 승리와 함께 모두 재검토돼야 하고, 세계의 다른 곳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첫 번째 사회주의의 시대가 드러냈던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길이 찾아져야 한다. 이를 위한 투쟁이 앞으로의 시기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노동계급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뒤를 돌아보기도 할 것이며,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수행했던 과거의 투쟁과 지금의 투쟁을 결합시켜 다시 한번 혁명적 변혁을 이루고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끝)
(번역=이주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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