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5도를 넘나드는 겨울 새벽, 연길 00시장에서 북한으로부터 넘어와 떠돌던 아이들 4명을 만났었다. 12살 전후인 남자 아이들이었다.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으면서 국밥을 훌훌 먹던 아이들….
00이는 빨리 돈을 모아서 조선으로 돌아가야 아프신 할머니 약을 살 수 있다고 하고, 다른 두 명도 돈을 모으면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 아이만 조선에 가봐야 아무도 없어 안 갈 거라고 했다. 세 아이한테는 알맞게 돈을 줘서 두만강을 넘어갈 수 있는 지역까지 봉고차로 데려다 주고, 고아라서 돌아갈 수 없다는 아이는 별도로 운영하는 쉼터로 연결시켜 보냈다.
중국에는 여러 단체에서 운영하는 쉼터들이 있다. 단체들은 서로 재원도 다르고 북한 이탈자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움직인다. 장단점이 다 있지만 어쨌든 나는 지원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어떤 연유로든 제3국에서 떠도는 우리 겨레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배워야 할 어린이들은 어떻게 하든지 가르쳐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생사기로에 놓여 있는 아이들한테 무슨 공부가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배울 기회가 필요하다. 배움은 곧 그들이 현실을 극복하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다 잘 있습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동생과 나는 00에서 우리를 공부시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알치(앓지) 말고 몸 건강하시고 복 만이(많이) 받으세요.
김0성 올림(11세)
조선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중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00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잘 먹고 잘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새해 복 많이 받우시고(받으시고) 건강하시오.
김0성 올림(9세)
이 두 아이는 내가 중국에 가서 탈북 아이들의 교육실태를 조사할 때 만난 형제다. 그때 한 단체로부터 실태조사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그 단체에서 운영하는 안전가옥에 숨어 살던 형제가 북조선에 남아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쓴 편지다. 그 집에는 아이들만 7명이 숨어 있었는데, 그 집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집이었다. 교사 한 명이 7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여기에 공개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손이 닿는 탈북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 온 아이들을 보면 그런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다. 조금이라도 배울 기회가 있었던 아이들과 전혀 배울 기회를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그 아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가든, 한국으로 오든, 중국에서 계속 떠돌면서 살게 되든-의 미래가 다르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탈북 어린이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되더라도 지금 당장 잡혀갈까 두려워하지 않고, 노예처럼 일하고도 모든 것을 주인한테 맡겨야 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고, 배움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유엔을 통해 난민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 난민 지위를 받으면 최소한 쫓기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는 북조선에서 온 김00라고 합니다. 저희 집은 함경북도 은덕군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저희들은 북조선에 있을 때 식량곤란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학교에 가도 너무 배가 고파서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중국에서도 고통 받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힘써 주세요. (하략)
김향0 드림
당시 15세 된 소녀, 가족과 함께 산속에 숨어 살던 소녀가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쓴 편지다. 사실은 내가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소원을 전해줄 테니 편지를 쓰라고 해서 받아온 것이기는 하지만, 난민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그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현실적 소망이다. 물론 국제관계나 정파 간에 난민 지위 부여에 대한 미묘한 갈등이 있음은 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서 난민 지위를 부여받게 되면 최소한 짐승처럼 쫓기는 일도 없어지고 어린이들이 배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아동의 권리는 1989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세계 어린이운동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추진해서 획득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22조에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구하거나 또는 (중략) 난민으로 취급되는 아동이 (중략) 적절한 보호와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그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 역시 제28조 1-가 항 역시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약에는 우리나라도 가입되어 있고, 중국도 가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곧 난민 아동이건 이주노동자 아동이건 누구나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겨레 어린이들이 다른 나라 땅에서 짐승처럼 쫓기고 숨어서 갇혀 살며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우리 대한민국 이 땅에서는 또 다른 어린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녀들이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를 다녀와서
어제 외국인 노동자를 방문한 다음 마음이 무거웠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기억나고 어려운 그곳 처지를 생각하니 그들이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김해성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우리뿐인가 했는데,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니,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모여 그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독일 목사님의 말씀처럼 세계를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작은 소수라도 변화시킬 수 있으면 기꺼이 도울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들의 처지를 잘 아는 우리로서 안 좋은 생각을 하는 편들도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우리도 그들보다 더한 수모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최00(하나둘 학교 청소년반 13기)
새터민 청소년이 외국인노동자센터 방문을 하고 나서 쓴 글인데, 그 충격으로 되살아난 기억으로 인한 혼란과 마음 속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
2002년 이후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취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이주노동자 자녀들도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초등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고, 이와 같은 아동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탈북 아동들한테도 적용해줄 것을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꿈꾸는 작은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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