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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전용화된 전자정부'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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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S 전용화된 전자정부'의 위험성

[기고] 전산산업 기반을 허물려는가

컴퓨터 운영체제(OS)나 브라우저에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시각장애자가 인터넷 사용에서 겪는 불편을 최대한 줄이는 일도 소중하다. 모바일 콘텐츠와 인터넷 콘텐츠가 연계되도록 하는 문제도 모바일 산업의 장래가 걸린 문제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웹페이지 표준화에 직결되어 있다. 불행히도 우리 현 상황은 이 모두가 F학점 수준이다.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는 소수"라는 정통부의 궤변

기술인력이 아무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은들, 그들의 노력만으로 사태가 반전되기는 어렵다. 시장의 논리, 경쟁의 논리가 웹페이지 제작 업계에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웹페이지를 주문하는 고객이 국제표준 준수를 요구하지 않는데, 어느 제작사가 이를 준수하려고 노력과 비용을 추가로 들이겠는가? 그런다고 누가 돈을 더 주는가, 알아주기나 하는가?

정책의 전환과 제도적 교정이 필요하다. 시장이 자율적 교정기능을 상실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결정권자의 자발적 각성과 교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벌써 3년 전에 한국과학기술인 연합은 웹페이지의 국제표준화를 촉구하는 공식논평/성명("표준화를 거부하는 전자정부는 누구의 것인가?")을 발표한 바 있다. 전산산업에서 통용되는 시간 개념으로는 이미 30년이 지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 주장은 잘못된 정책의 결과를 가지고 잘못된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MS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한국에서 유난히 높아진 이유는 MS가 한국 고객에게 특별히 잘 해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인터넷 정책이 MS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예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과연 어디에 또 있을까? 공인인증서를 사용 못하는 순간 이용자는 인터넷 상에서 '신원불상자', 정체불명의 위험인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정책 하에서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가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필자가 알기로는, 전 세계에서 MS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한국만큼 높은 곳은 없다.

운영체제(클라이언트 PC용)별 세계시장 점유율은 다음과 같다.
▲ 출처: MS에 대한 유럽연합(EU) 공정경쟁 당국의 결정문, *출하량 백분율 기준

그러나 한국 내 시장점유율은 다음과 같다.
▲ 출처: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주)한국IDC 자료(2004. 9.), MS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 *출하량 기준

정부는 독점의 폐해를 규제하고,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가 많지 않으니 그들에게 공인인증 서비스와 전자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차단함으로써 그 수를 더욱 줄이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도저히 입에 담아서는 아니 될 말이다.

MS 제품으로만 이용할 수 있는 공공기관 웹페이지들

지난 5월 8일,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필자와 같은 약 500여 명의 '불가촉 천민'들이 정보통신부 장관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출한 바 있다.

"공공기관이 웹페이지를 MS 전용화하고, MS 윈도와 IE(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공인인증서가 발급되도록 해두는 것은 첫째, 전자서명법과 정보화촉진 기본법,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에 위반되고 헌법상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한다. 둘째, 공정거래법에 따라 정부가 부담하는 독점규제와 경쟁촉진 의무에 위반된다. 셋째, 정부의 조치는 노르웨이 제품인 오페라(Opera) 웹브라우저에 대한 부당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하므로 우리 정부가 GATT(관세무역일반협정)/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부담하는 조약상 의무에 위반되어 국제분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이 민원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민원접수 여부라도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조차 응답하길 거부하고 있다. 한편 이 민원을 인터넷에 소개한 웹사이트는 현재 접속횟수가 1만 회를 넘어섰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구경거리가 생긴 셈인가?

민원인들의 요구는 법리적으로는 새로울 것이 없는 '평등권' 주장을 그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매우 독특하고 근본적인 쟁점이 있다.

MS는 컴퓨터와 인터넷은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수단이며 이 수단이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그 기술을 개발·개선하는 단계에서 여러 주체가 돈과 노력을 투입하였으므로 종래의 법과 상식으로 보면 그들의 노력은 정당한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류문화 그 자체를 담아내는 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또 다른 입장이 존재하게 됐다. 정보의 소통이 어떤 특정 업체가 개발한 기법(proprietary solution)에 종속되어서는 안 되며, 인류문화의 발전은 제약 없는 정보소통에 달려 있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공개소스에 기반한 해법(open source solution)이 그것이고, 리눅스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우리 정부는 '인터넷의 중요성이 끊임없이 증대할 것'이라는 올바른 전제에 입각하여 '전자정부' 사업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정보와 공역무(public service)가 제공되는 기술적, 매체적 기반이 종래에는 지필묵, 전화, 팩스, 직접대면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그 모든 것(100%는 아니지만)이 앞으로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전환을 실행함에 있어서, 우리 정부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철학적, 법제적 기초에 관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모른 채 일을 추진해 온 듯하다. 컴퓨터와 윈도가 같은 줄 알고, 인터넷은 '컴퓨터'로 보는 것인 줄만 알아 자기 컴퓨터에 무슨 웹브라우저가 깔려 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전자정부' 사업을 밀어붙인 것 같다.

'대한민국 전자정부' 웹사이트(http://www.egov.go.kr)가 이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윈도와 IE 브라우저를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윈도를 안 쓰거나, 윈도를 쓰더라도 IE 브라우저를 안 쓰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두었다. 회원 가입 자체가 안 된다. 대한민국 전자정부가 왜 MS 고객이 아니면 입장부터 거절하는지, 누군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얼핏 보면 민원인들의 주장은 '장애인들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여기저기 휠체어 통로라도 좀 설치해달라'는 요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정통부가 지금까지 보여 온 태도 또한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소수자에 대한 무신경과 냉혹함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이번 민원인들의 요구는 소수자 권익 옹호에 관한 주장과는 매우 다른 측면이 있다. 몇 안 되는 리눅스 이용자나 매킨토시 이용자들도 배려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자정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장애자 비유를 이용하자면, 도시 전체의 설계가 위법하니 바꾸라는 것이다.

컨버전스 시대에 죽음을 강요당하는 국내 전산산업

한줌도 안 되는 '불가촉 천민'들이 이렇게 엄청난 요구를 하는 데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휴대폰, TV, DVD,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 지상파 DMB 수신기, PDA, MP3 플레이어, 게임기 등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는 그동안 리눅스가 주종을 이루어 왔다. 이른바 우리 전자 산업의 메카라는 용산의 기술력도 여기에 있었다. 이 모든 기계들이 앞으로는 대부분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다. 유선전화도 인터넷(VoIP)과, TV도 인터넷(광대역 융합 통신망; BcN)과, 휴대폰도 인터넷과, DMB 수신기도 인터넷과, 할인매장의 계산대도 인터넷과, 게임기도 인터넷과 연결되는 등 그야말로 우리 주변의 모든 기계들이 인터넷과의 융합(convergence)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연계·융합되는 순간, 지금까지 리눅스 기반으로 국내 기술진이 개발하여 이들 기계에 사용해 왔던 프로그램들(embedded solutions) 모두가 MS의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로 바뀌어야 할 형편에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웹페이지들이 'MS 전용화'돼 있어 윈도와 IE 브라우저를 안 쓰면 인터넷을 제대로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인터넷 환경의 'MS 최적화' 비율이 이렇게 까지 높은 곳은 없다. 지금까지는 TV, 전화 등 각종 기계와 인터넷이 따로 떨어져 있었으므로 웹페이지가 모두 'MS 전용화'돼 있어도 다른 곳까지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통신과 방송이 인터넷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자생적 전산, 통신, 모바일 산업은 '죽음의 키스'를 하게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이들 기계에 사용돼 왔던 리눅스 기반의 프로그램(embedded solutions) 산업은 국제표준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MS 전용화'된 우리 인터넷과 접촉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고사(枯死)될 운명에 있다. 리눅스 계열 프로그램들이 인터넷 문서표준(HTML)을 지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인터넷 문서표준을 무시하는 MS전용 국내 웹사이트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시장논리와 각종 정보에 밝다는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4월 지상파 DMB 수신 기능을 가진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Portable Media Player; PMP)에 사용될 운영체제를 리눅스가 아닌 윈도CE로 결정했다. 올해 연말까지 출시될 수십 종의 휴대용 기계에 사용될 소프트웨어도 이제 대부분 윈도로 전환되고 있다. <전자신문>은 5월 24일자 기사("MS가 PMP OS 시장도 장악한다")에서 우리 전산산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웹페이지를 바꾸어 달라는 '몇 안 되는 이용자들'의 끈질긴 요구를 정통부는 그동안 마치 무슨 어린애 투정인 양 가볍게 무시해 왔다. 바로 그 정통부가 지금 모든 통신, 가전 기기의 인터넷 융합(이른바 유비퀴터스 산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전산업계에 죽음의 키스를 강요하면서 'MS 잔치판'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3년 전에 이미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공식적 요구를 가볍게 무시한 정통부가 이번의 민원에 대해서도 계속 묵살하는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1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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