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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강국'인가 'MS 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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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인터넷 강국'인가 'MS 천국'인가?

[기고] 한국과 EU의 MS 송사를 보면서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연합(EU) 재판소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유럽연합 집행부 간에 계속돼 온 법률공방의 한 정점을 이루는 구두변론이 4월 24일부터 닷새 동안 진행됐다.
 
  이 송사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 유럽연합은 MS의 피시(PC) 운영체제 제품 '윈도'가 서버 운영체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고발이 접수됨에 따라 조사를 개시했다. 이어 2000년에 유럽연합 집행부는 MS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끼워팔기를 함으로써 음악 및 영상 재생 프로그램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5년 넘게 진행된 조사절차 끝에 2004년 3월 유럽연합 집행부는 MS가 피시 운영체제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남용해 서버 운영체제 시장과 음악, 영상 재생 프로그램 시장의 공정 경쟁을 부당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4억9700만 유로(약 58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MS가 이에 불복함에 따라 사건이 유럽연합 재판소로 넘겨졌고, 그동안 예비절차가 진행된 뒤 이제 구두변론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정위의 제재에 대항해 임전 태세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MS의 메신저 프로그램 끼워팔기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 MS가 거래하는 양태에 대한 조사가 개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뒤 음악과 영상 재생 프로그램 끼워팔기에 대해서까지 직권으로 조사범위를 확대했으며, 2005년 12월 MS의 끼워팔기가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과징금 325억 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MS는 "앞으로 진행될 장기적인 법절차의 시작일 뿐"이라며 결연한 임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나 유럽연합 집행부나 단호한 태도를 취해 왔다. 두 경우 모두 피해신고 당사자들은 조사절차 진행 도중 MS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신고를 취하했거나 열악한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처럼 경쟁자를 매수해버리거나, 경쟁자가 버티지 못하도록 시장환경을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불공정거래의 진면목일 수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 정부는 피해 당사자가 신고를 모두 취하해버린 상황에서도 독점 규제와 공정거래 확보라는 공익을 위해 조사절차를 끝까지 진행하고 제재 결정을 내렸다.
 
  영국의 한 신문은 이를 두고 거인 골리앗(MS)에 홀로 맞서 싸우는 다비드에 비유하기도 했다(<가디언> 2006년 2월 21일자 보도). MS가 동원하는 초대형 로펌의 최정상급 변호사들에 맞서 제한된 법률인력과 예산으로 복잡한 조사절차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송사를 감당해야 하는 한국이나 유럽연합 당국의 분투는 마치 대포와 소총의 대결을 보는 듯하다. 유럽과 한국의 사태 전개가 미국에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MS를 상대로 제기됐던 독점규제 소송이 거액의 돈이 오간 끝에 합의로 결말을 보았다.
 
  문제의 근본 뿌리는 MS의 운영체제 독점
 
  이 송사들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인터넷 열람 프로그램, 음악 및 영상 재생 프로그램, 메신저 프로그램 등에 대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MS의 컴퓨터 운영체제 독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컴퓨터가 이제 인류문화를 담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된 것이 분명하다. 매체의 혁신은 그 안에 담기는 정보의 내용까지 지배하곤 한다. 컴퓨터는 현대 인류문명을 특징짓는 존재다. 그러나 지구상에 보급된 거의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회사가 공급하는 운영체제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오랫동안 인류문화는 지필묵이라는 매체에 의존해 왔었다. 전 인류의 지필묵을 단 하나의 사업자가 독점하여 제작, 공급하고 그 의사에 따라 배급이 결정 또는 거절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컴퓨터 운영체제의 독점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승부가 한국과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인터넷 환경이 안고 있는 독특한 문제점을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웹페이지 제작사들이 만든 웹사이트의 대부분이 MS가 제공하는 인터넷 열람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제대로 처리되도록 돼 있다. 유심히 살펴본 사용자라면 흔히 웹페이지 한 모퉁이에 "이 사이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라는 안내 글귀가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말이 좋아 '최적화'이지, 이것은 곧 MS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에게는 웹사이트 접속이 사실상 금지되거나 심각하게 제약되는 최악의 인터넷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기이한 선언에 다름아니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MS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지는 않더라도 묵묵히 MS의 독점전략에 봉사하는 웹사이트는 더욱 많다. 한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또는 은행 사이트들은 특정한 보안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해야만 접속을 계속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 보안프램그램이 오직 윈도에서만 설치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리눅스 사용자는 물론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도 접속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왜곡된 인터넷 환경은 MS가 컴퓨터 운영체제를 확실히 독점하게 하고, 다른 운영체제가 아예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최적화'된 여건을 제공한다. 윈도를 사용하지 않으면 국내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기막힌 사실을 윈도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99%의 한국인들에게 알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법원, 정보통신부 등 공공기관 웹사이트도 MS 독점 뒷받침
 
  개인이나 사기업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이처럼 MS의 독점체제에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조력하도록 제작돼있는 상황은 당장은 어찌 할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쇼핑몰 회사가 리눅스 사용자에게는 쇼핑은커녕 접속 기회마저 박탈하는 웹페이지를 걸어놓고 장사를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인터넷 뱅킹을 제공하는 은행이 오로지 윈도 사용자만을 고객으로 알아 모시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들 어쩌겠는가? 아마도 경영진은 자기 회사 웹사이트가 리눅스나 매킨토시 사용자의 접속을 막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완벽한 무지로 형성된 경영의 장벽은 기술력으로 간단히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선도해야 할 대학들마저도 MS에 최적화시켜 제작된 웹사이트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홈페이지로 걸어놓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자못 암담하다. 인터넷과 컴퓨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터넷 문서 제작기준은 MS가 고집하는 변칙적인 웹문서 제작수법과는 다르며, MS 기준이 아닌 세계 기준을 준수해 웹페이지를 작성하면 운영체제와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접속해서 문서, 그림, 음악, 동영상 등 그 페이지에 담긴 모든 내용을 다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www.w3c.or.kr 참조).
 
  그러나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웹페이지마저 MS에 최적화돼 있다면, 그것은 무지나 무관심의 소치로만 간주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대법원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국세청, 심지어 우리나라 전산환경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보통신부의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윈도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는 마치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리눅스나 매킨토시 사용자들을 골탕먹임으로써 MS의 운영체제 독점을 도와주는 형국이다. 인터넷으로 등기부 등본 발급신청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윈도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서 발급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이는 민원인이 MS 제품을 사용하는지를 관공서가 일일이 확인하고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민원인에게는 서비스를 거부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일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충성도 이 정도면 좀 지나쳐 보인다.
 
  한국 법원의 MS 사건 판결이 세계적 관심 대상인 이유
 
  유럽과 남미의 일부 국가들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서버는 반드시 소스코드가 공개된 운영체제를 사용하도록 법률로 강제하고 있다. 물론 서버 운영체제와 홈페이지 제작방법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나, 한국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들처럼 MS의 고객에게만 선별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치는 우리의 현행 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MS에 최적화된 웹페이지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것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위법부당한 행정이라고 평가될 수도 있다. 적어도 공공기관의 웹페이지는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보접근과 온라인 민원신청 등을 할 수 있게끔 당장 개편돼야 한다.
 
  유럽연합 재판소에서 진행되는 MS의 불복 절차는 이미 구두변론까지 진행됐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되는 불복절차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다. 그러나 어쩌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먼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그 판결은 유럽연합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큰 구도에서 보면, 그 판결은 인류문명사의 향후 전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강국으로 널리 선전된 한국의 법원이 MS의 독점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더 더욱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과연 한국이 인터넷 강국인지, MS 천국인지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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