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우리 기업들의 시급한 당면과제인 윤리경영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최근에 불거진 현대자동차 사태와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인해 재계는 물론 일반시민들의 윤리경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윤리경영은 투명경영, 정도경영 등과 약간의 의미차이는 있겠지만 서로 필요충분조건의 관계를 유지하며 거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차 사태 전에도 윤리경영의 필요성은 사회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일부 기업들은 그런 요구에 호응하여 윤리경영에 대한 상당한 관심과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기업들이 윤리경영 선포식 같은 것을 할 때마다 저는 저런 행사는 자신들이 그동안 비윤리 경영을 해 왔다는 사실을 사방에 인정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용기가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우리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 비윤리적인 측면은 필요악처럼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부정행위는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기업 내부의 후미진 곳에 음습하게 자리 잡아 왔습니다. 이른바 '비자금'은 그런 비윤리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지금도 많은 경영자들이 '비자금'을 경영에 필수적인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조성하고 사용하는 데 크게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자금'문제로 영어의 몸이 된 경영자 중에는 '다들 하고 있는 일인데 왜 나만 문제 삼느냐'고 항변하고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걸려들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이런 형편이니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정도경영, 투명경영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취급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정도로 윤리 불감증 증세를 보이게 된 데에는 부도덕한 정치와 기업가들의 공금에 대한 느슨한 의식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우리 기업의 부정행위를 설명하는 데 '정경유착'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고, 권력이 요구하는 '정치자금'을 힘없는 기업이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기업 측의 일반적인 구실입니다. 그런 변명이 상당부분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고, 기업에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일부 기업주들이 개인자금과 회사자금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공금을 별 죄의식 없이 개인용도로 사용해 온 관행도 윤리경영의 정착에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회사 돈을 개인의 이재나 불법상속에 이용하는 것도 그리 드물지 않은 사례이지요.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 기업주들은 앞으로도 계속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이러한 나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악습을 불식하지 않고는 우리 기업의 선진화는 요원한 일이며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선진국들은 기업의 부정행위에 대단히 엄격합니다.
한때 세계 최고의 부호로 지칭되던 쓰쓰미 요시아키 일본 세이부그룹 회장은 지난해에 보유 계열사 주식을 허위신고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회사는 상장폐지라는 중벌에 처해진 바 있습니다. 회계부정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미국 엔론의 케네스 레이 전 회장과 제프리 스킬링 전 CEO는 최근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더 이상 우리 경영자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윤리 수준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정경유착의 악순환 고리도 스스로 앞장서서 끊어야겠지요. 그러나 우리 기업의 윤리경영 실태를 보면 그런 소망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꿈인 것 같습니다.
우리 기업 윤리경영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기업주와 종업원들이 동상이몽을 하고 있고, 양자의 생각에 너무나도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즉 기업주들은 윤리경영을 종업원들의 부정행위 추방 캠페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종업원들은 윤리경영을 기업주의 문제로 생각하여 기업주만 부도덕한 일을 하지 않고 종업원들에게 회사이익을 위한 부정행위를 강요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인데 왜 우리를 들볶느냐고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2001년 윤리헌장과 윤리경영 실천강령을 제정했고, 그에 앞서 1996년에는 일찌감치 임직원 선물관리규정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규정에 의하면 임직원이 업무관련자로부터 시가 3만 원 이상의 선물을 받았을 경우 즉시 선물신고센터에 신고하고 선물을 반납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임직원은 징계위에 회부되고 해당 협력업체와는 거래를 중단하도록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격한 규정을 임직원에게는 적용하면서 기업주들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돈을 불법상속에 사용했다고 하니 종업원들이 그런 윤리경영을 납득하고 수용할 리가 없는 것이겠지요.
윤리경영의 세계적 선두기업인 존슨앤존슨은 1930년대부터 자발적 기업윤리를 강조해 왔으며, 1943년에는 최초의 윤리강령인 '우리의 신조(Our Credo)'를 만들고 전 사원의 '윤리경영 간부화'를 추진했습니다. 1982년에 타이레놀 독극물 투입 사건이 발생하자 존슨앤존슨은 오랜 윤리경영 실천의 역사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언론에 공개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출시된 모든 제품을 수거하고 안전장치를 강화했지요.그 결과 타이레놀의 매출은 사고 전보다 훨씬 많아졌고 회사는 소비자들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토롤라는 뇌물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일찍이 제정하여 시행해 오고 있는데, 오래 전에 한 해외담당 중역이 남미의 어느 정부와 상담을 하던 중 그 나라 고위관리가 부정한 커미션을 요구하자 엄청난 규모의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중단을 결정했고 경영진은 기꺼이 그 결정을 수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월마트는 창업 초기부터 종업원들이 거래업자로부터 커피 한 잔도 대접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런 사실이 발각될 경우에는 즉각 파면조치를 할 정도로 엄격한 윤리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월마트의 창업자인 샘 월튼은 누구보다도 그러한 규정을 잘 지키는 윤리경영의 실천자였지요.
윤리경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최고경영자가 의지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최고경영자가 앞장설 때 기업 내에 윤리경영 시스템의 구축이 용이해지며, 나아가서 윤리경영이 수월하게 기업문화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윤리경영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고통을 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기업이미지 개선과 경영성과 향상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장님께서도 이번주에는 회사의 윤리경영 실태를 점검해 보시고 그것의 성공적인 정착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가장 먼저 체크해보셔야 할 것은 사장님 자신의 도덕성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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