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1조 원이 넘는 증여상속세를 모두 내고 경영권 승계 작업을 '떳떳하게' 매듭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증여상속세 1조 원'은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도 엄두를 내지 못한 재계 사상 최대 규모다. 역대 최고기록이라는, 지난 2004년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 유족들이 낸 상속세 1355억 원의 7배가 넘는다.
신세계 "올 가을에라도 세금 낼 수 있다"
구학서 신세계 사장은 12일 중국 상하이 이마트 '산린점' 개점행사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재벌가의) 편법상속으로 인한 2, 3세 경영인들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불식시키자는 것이 신세계 대주주들의 생각"이라며 "모범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대주주들이 지분증여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구 사장은 이어 "(이명희 회장과 남편인 정재은 명예회장 주식 지분을) 아들인 정용진 부사장에게 적극적으로 (사전)증여하고 이후 상속하는 과정에서 '깜짝 놀랄만한 세금'을 납부하는 등 떳떳하게 할 것"이라며 "올 가을에라도 세금(증여세)을 낼 수 있고 납부는 주식 등 현물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구 사장은 "투명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회장 부부의 지분 가운데 3분의 2는 사전 증여해 정당하게 증여세를 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사후 상속해 경영권을 넘겨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구 사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벌그룹의 후계자 승계 문제의 본질은 전적으로 증여상속세 회피에 있다"면서 "현대나 삼성과 달리 신세계는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으며,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모범적으로 납세할 것"이라고 강조해, 다른 재벌기업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주식으로 납세하면 오너 일가 지분 28%대에서 16~17%로 감소
현재 신세계의 대주주 지분 현황은 이명희 회장 15.33%, 정재은 명예회장 7.82%, 정용진 부사장 4.86% 등이다. 신세계의 지난 12일 종가기준 시가총액은 8조6193억 원으로, 주식으로 납세할 경우 정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오너 일가 지분이 현재의 28%대에서 16∼17%대로 내려갈 수도 있다.
현금으로 환산한 세금 규모에 대해 구 사장은 "이 회장 부부의 지분 가치는 대략 2조 원으로 이에 따른 증여상속세 등 세금은 약 1조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의 이번 방침을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비상장 주식을 이용하거나 회사 일감 몰아주기로 '증여상속세 회피'를 시도하다가 사법처리돼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이 결국 총수 일가의 사재를 털어 1조 원에 가까운 사회환원 계획을 발표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참여연대가 정용진 부사장이 신세계 그룹과 별도법인으로 분리된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이 편법증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이 이 사건을 특수수사본부 소속인 금융조사부에 배당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에 나설 의지를 보이자 기업 이미지 제고와 우호적인 여론 조성 등을 위해 고심 끝에 내놓은 대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1조 원에 달하는 증여상속세 납부가 실제로 이행돼 신세계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정상적으로 이뤄진다면, 그 자체로 재벌그룹의 투명, 윤리 경영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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