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금융서비스 분야 1차 협상에 돌입한다.
9일 재정경제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금융서비스 분야 협상 개시를 앞두고 8일 오후 한미 FTA의 금융 분야의 협상 초안을 놓고 실무회의를 가졌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한미 FTA 금융서비스 분야 협상의 최대 쟁점은 국경간 거래(해외고객 대상 금융서비스)와 신(新) 금융서비스 시장의 개방, 금융시장 개방의 방식 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마련한 금융서비스 분야 협상 초안에는 '해외고객 대상 금융서비스'의 개방에는 신중하게 대처하고,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온 적이 없는 파생금융상품 등 '신(新) 금융서비스' 시장은 미국과 싱가포르 간 FTA에 준하는 수준에서 개방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같은 초안 내용은 재경부가 지난 2월 16일에 열린 제6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미 FTA 분야별 영향 및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담겨 있는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허영구 '미국은 한국 금융시장에서 이익 빼나가는 게 목적"
미국과의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데 이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과정에서 급격히 확대된 금융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사실상 100% 수준으로 완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한미 FTA가 금융서비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지 개방수위를 한 차원 높이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국과 FTA를 체결해 얻고자 하는 '진짜 이득'은 한국시장에서 금융서비스를 공급해 벌어들일 영업이익이 아니라 연기금, 퇴직연금, 우체국, 농·수·축협 등에 묶여 있는 수천조 원 규모의 금융자산이라는 것이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 겸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8일 전국 증권산업 노동조합이 개최한 "1차 임금단체협약 투쟁교실'의 초청강연에서 "한미 FTA와 관련해서는 여론이 농업과 스크린쿼터 문제에 집중돼 있으나 사실 한미 FTA의 핵심은 200조 원 규모의 연기금을 비롯해 퇴직연금, 농·수·축협, 우체국, 새마을금고, 사채시장 등 총 1000조~2000조 원 규모의 금융 분야"라고 주장했다.
허 부위원장에 따르면 미국은 9000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면서 전처럼 '시뇨리지', 즉 달러 주조차익을 얻기 힘들어졌고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미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달러 재활용'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부채 문제를 해결할 다른 묘수를 찾아나서게 됐고, 그런 묘수들 중 하나가 바로 "한국과 FTA를 체결해 한국시장에서 직접 초과이윤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허 부위원장은 지적했다.
황영기 "농산물은 운반에 시간이 걸리지만 금융은 빛의 속도"
한편 이날 우리은행의 황영기 행장은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전개될 금융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한 준비가 대단히 부족하다"고 말해 주목받았다.
황 행장은 우리은행의 '5월 월례조례'에서 "(한미 FTA의 체결로 금융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은행에서 예금을 빼서 씨티은행 뉴욕 지점에 예치하고, 카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자동차 보험은 AIG, 생명보험은 푸르덴셜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며 한미 FTA의 체결로 우리 금융서비스 시장이 개방됐을 경우의 모습을 묘사했다.
황 행장은 "한미 FTA는 안 하겠다고 도망갈 일이 아니고, 우리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가 살아갈 길을 찾는 활로로 생각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은행권에서 한미 FTA가 체결됐을 때 (외국 금융기관들과) 경쟁해서 이기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황 행장은 "농산물이라면 재배해서 가공해서 운반하는 데 시간이라도 걸리지만 금융은 빛의 속도"라며 "개방이 이뤄졌을 때 괜찮은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고,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도 반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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