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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넣기'로 부활하려는 '한미투자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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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넣기'로 부활하려는 '한미투자협정'

[한미FTA 뜯어보기 10] 경제주권 훼손 불보듯

한국과 미국 양국 정부가 5월로 예정된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 개시를 앞두고 활발한 교섭을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 일각에서는 '한미 FTA 체결로 투기성 미국 자본의 유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한미 FTA 반대 및 투기자본 규제를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사무금융연맹, 투기자본감시센터, 대안연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영화인대책위 등에서 총 3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결의대회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관한 검찰수사와 국정조사', '외국 투기자본의 유입을 부를 한미 FTA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 결의대회에 참가한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당선자는 "서울증권은 소로스에, 극동건설과 외환은행은 론스타 펀드에 팔아넘기고, 김대중 정부도 수없이 팔아넘기더니 노무현 정부는 국제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모든 업종을 다 팔아넘기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 FTA를 한미 양국 간 관세를 철폐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미 FTA 체결과 외국 투기자본의 유입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지난 8년 간 추진했으나 국민들의 반발로 결국 좌초됐던 한미 양자투자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의 협상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미 BIT는 한미 FTA의 일부로 편입**

2004년 정부는 IMF 금융위기 이래 8년 간에 걸쳐 추진했던 한미 BIT가 영화계 등의 반발에 부닥치자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 선결조건인 한미 BIT를 꼭 체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체결한 FTA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대부분의 BIT 조항들이 FTA 안에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BIT가 FTA의 한 부분으로 편입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한미 BIT는 자동적으로 체결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2004년 10월 당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로버트 졸릭 현 국무부 부장관도 미국 워싱턴에서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한미 BIT가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요즘 세계 각국들은 BIT를 체결하지 않고 바로 FTA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애초에 한미 BIT가 좌초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미국이 협상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에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도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요구했다.

1997년 말 이래 대대적으로 개방된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너무 취약해졌다는 시민사회의 우려도 한미 BIT가 지연되는 데 한몫 했다. 한미 BIT가 체결되면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우리 자본시장의 개방수위가 더 높아져 미국의 투기자본들이 더 많이 유입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한미 FTA 체결되면 한미간 투자 불균형이 심화될 것**

IMF 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 말 10.3%에 불과했던 외국인의 국내 주식 보유비율(시가총액 기준)은 2004년 현재 40.10%까지 높아졌다. 국제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이는 세계 8위 수준이다.

이 중 장기적인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1%에 불과하고 단기적인 수익을 거두는 데 관심이 더 많은 포트폴리오 간접투자는 51%에 이른다. 직접투자 중에서도 기업 인수합병(M&A) 형식의 투자가 50% 이상이고, 보다 건전한 투자로 인식되는 공장설립(그린필드) 형식의 투자 비중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2004년 외국인투자 총유입금액 93억 달러 중 42%에 달하는 39억 달러를 투자한 미국 자본의 투자방식은 대부분 포트폴리오 간접투자였다. 미국인 투자자들은 IMF 금융위기 이후 현재까지 국내 주식시장에서만 1000억 달러가 넘는 평가차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한국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2001년 현재 37억 달러로, 투자액 대부분이 미국 국채 매입 등과 같은 장기적인 직접투자에 쓰였다. 한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적자의 동시 적자인 쌍둥이적자로 악명 높은 미국 경제가 이른바 '달러 재활용(dollar recycling)'을 통해 계속 연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나라들 중 하나다.

이처럼 한미간 투자 불균형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 BIT가 한미 FTA의 체결과 함께 패키지로 처리되면 이런 불균형 상태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투기자본을 보호하는 양자투자협정**

미국은 2004년 양자투자협정(BIT)의 표준안인 '2004년 BIT 모델'을 만들어 BIT는 물론 FTA 체결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표준안은 원칙적으로는 안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조약 원문에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준할 때도 협정서 조항 11에 2004년 BIT 모델과 거의 동일한 조항들을 담았다. 또 최근 요르단 등 중동 국가들과 잇달아 맺은 FTA에도 이 BIT 표준안을 적용했다.

이 표준안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투자'를 가장 넓은 의미에서 정의한다는 것이다. '조항 1'은 "투자는 투자자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자산 중 투자의 성격을 지닌 모든 자산에의 투자를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권, 채권뿐 아니라 저작권, 특허권, 식물 다양성에 대한 권리 등을 포함해 모든 유무형의 자산이 투자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협정이 통과되면 투자와 투기의 구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정부는 외국자본이 투자용인지 투기성인지 구별해 국내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 된다. 또 주식시장, 외환시장에서 투기성 거래에 세금부과 등의 제약을 가할 수도 없게 된다.

***외국자본에 환경·노동·사회 보호 의무 요구하면 협정 위반**

한편 '조항 3'와 '조항 4'에 따르면 계약을 체결한 양국은 상대방 국가의 투자자에게 자국 투자자에 대한 대우와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하고(내국민 대우), 또 제3국의 투자자가 자국 영토에 투자할 때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최혜국 대우). 즉 해외투자자들과 국내투자자들, 해외투자자들과 해외투자자들 사이에 어떠한 차별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내국민 및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라 국내외 투자자들이 고용, 사회복지 등에서 차별 없는 의무를 지게 된다면, 이는 한미 양국의 국민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BIT에서 규정하는 차별금지란 각국 정부가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따라 국내 산업에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보호정책들을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정부는 농민들에게 농업보조금이나 대부금을 지원할 수 없고, 미디어 등 특정 분야에서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는 규정도 없애야 한다.

이런 조항들이 '조항 8'과 결합되면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진다. 조항 8은 "각 조약국 정부는 상대국 투자자가 투자사업체를 창설, 취득, 확장, 경영, 관리, 운용할 때 어떤 의무나 약속도 강제로 이행하게 할 수 없다"는 이른바 '의무이행 강제의 금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항이 효력을 발생하면 해당 국가는 기술이전, 현지 생산품 사용의무 등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수단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일종의 '이행의무'에 해당하는 스크린쿼터 제도도 협정위반 사항에 속하게 된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조항의 발효가 우리나라의 노동, 사회복지 분야에 미칠 여파다. 국내기업을 인수한 외국인 투자자는 고용승계 의무, 내국인의 일정비율 고용 의무, 노동기본권의 보장, 환경기준의 준수 의무 등으로부터 사실상 자유롭게 된다. 또 경로우대 제도 등 사회복지 차원에서 국가가 규정한 의무사항들을 지켜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한국의 경제주권이 위협받는다**

한국과 미국의 투자협정이 발효되면 양국 간의 분쟁 해결절차에도 변화가 생긴다. 해외투자 자산 몰수와 보상에 관한 규정을 담은 '조항 6'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양국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해외투자 자산을 몰수하거나 국유화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공공의 목적'을 예외로 하고 있으나 그 내용을 정확히 적시하지 않고 있어, 실제로 해당국 정부가 공익을 위해 외국인 투자 자산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면 투자협정 위반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가령 우리 정부가 환경보호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미국인이 투자한 땅에 그린벨트를 설정하면 이는 얼마든지 협정위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후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노동권을 침해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며 해당 기업에 시정을 요구한 바 있으나, 이 미국 기업은 오히려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가 이런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어 배상을 받아냈다.

이처럼 한미 BIT를 포함한 한미 FTA의 체결은 단지 한미 양국 간의 관세만을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고 국가와 자본과의 관계, 노동과 자본과의 관계, 국내자본과 해외자본과의 관계 등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경제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와 한미 BIT를 동시에 보는 안목 아쉬워**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을 통해 더 많은 해외자본을 유치해 국내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IMF 금융위기 후 자본시장의 개방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자 중 포트폴리오 간접투자가 해외직접투자(FDI)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정부는 미국의 첨단 금융기법 등을 도입해 우리 자본시장이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국내의 경제환경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경제여건에만 맞춘 금융기법 등이 도입될 때 우리 금융시장에 오히려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이대로 BIT를 포함한 한미 FTA를 진행할 경우, 우리 정부가 미국 자본의 노동3권 침해와 환경 파괴도 제어할 수 없게 된다"고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렇게 몇 안 되는 사람들만이 한미 FTA와 패키지로 처리될 한미투자협정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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