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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간다고 교만하면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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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잘 나간다고 교만하면 실패합니다"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38〉 경영자의 태도

K 사장님!
  
  벌써 5월입니다. 낮에는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덥습니다만 아직 아침, 저녁의 일교차가 크므로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너무 원론적이고 무거운 주제라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영자들이 각별히 유념하고 경계해야 할 태도인 '교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영자들을 만나보면 겸손하고 매너가 좋아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만, 예상외로 너무 교만해서 불쾌해질 뿐 아니라 만남 자체가 후회스러운 경우도 상당히 있습니다.
  
  사업가들은 일반적으로 대인관계에 능하고 예의범절에 밝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오히려 세간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분들 중에는 의외로 정반대의 경우도 꽤 많더군요. 사업상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더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경우가 자수성가한 창업 기업가들에게서 비교적 자주 발견되지만, 전문 경영인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특히 오너의 총애를 받아 초고속 승진을 한 분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만한 경영자들은 대체로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주로 하고, 남의 말을 가로막는 행동을 별로 실례라 생각하지 않고 예사로 하며, 회의에서도 남들의 발언에 앞서 자신이 결론을 먼저 내리고, 회사의 직원이나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격모독성 발언을 다반사로 하며, 권위적이고 공사를 잘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세상일을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며, 무례하면서도 자신이 예의 없는 줄 모르고 거들먹거리는 유형의 사람들이죠. 그들은 오늘날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자질과 자신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며, 부(富)와 힘이 만사를 평가하는 잣대이고 종업원들을 자기가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교만에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는 아예 드러내놓고 남을 무시하거나 잘난 척하는 '무식한 교만'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교양으로 포장을 잘 해서 얼핏 보면 겸손한 것 같은 '유식한 교만'입니다. '자신을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교만'이라는 옛말도 있습니다만, 후자의 경우가 사람을 더욱 당혹하게 만들지요.
  
  자신이 교만한지를 모르는 경우는 더욱 딱합니다. 일상적으로 흔히 겪는 일입니다만 남에게 전화를 걸 때 아랫사람이 아닌데도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걸게 하고는 상대를 대기시켜 놓은 뒤 뒤늦게 나타나서 겸양을 떠는 사람들도 많지요. 최근에 저는 비서의 비서가 전화를 걸어와서 대기하게 하더니 상급 비서가 나와서 점잖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신의 상사를 바꿔주는 사례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어떤 저명인사 한 분은 중요한 행사에 연사로 초청받아 놓고는 행사 시작이 임박한 시간에 비서를 시켜 급한 일정이 생겼다며 불참을 통보해 오기도 하더군요. 그러고는 그 이후에도 주최 측에 사과를 했다는 후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교만한 상대 때문에 당혹감을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들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교만한 행동은 본인에 대한 혹평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평판이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옛 성현들도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적으로 교만을 꼽았습니다. 당 태종과 그 신하들의 대화가 기록된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것이며 '성공한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마침내 위기를 맞고 망하는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을 항상 염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학(大學)>에는 '군자는 성실함과 신의로써 큰 도를 얻고 교만과 거만함으로써 그것을 잃는다'는 구절이 있지요. 앞서 간 기업인들도 비슷한 경구를 남겼습니다. 고 이병철 회장은 '교만한 자 치고 망하지 않은 자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말하자면 교만은 '성공의 독'이요 '성공의 복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독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는 '겸손'입니다. 겸손만이 교만의 폐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할 줄 아는 사람이며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몸을 낮추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나 탈무드, 성 아우구스티누스까지도 겸손을 인간의 가장 큰 미덕이며 인류 최고의 가치로 꼽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1980년대에 일본의 <닛케이 비즈니스>는 미쓰비시종합연구소와 함께 일본 기업들의 흥망사를 다룬 보고서에서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이며, 경영자의 자질이 기업의 수명을 결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잘 나가는 기업이 웬만한 일에 넘어질 리 없다'고 믿는 경영자의 교만과 '명문의식'이라는 자만이 결국 기업을 도산시킨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또한 '현실에 안주하려는 정신은 파산의 전조이며 어려웠던 시기를 망각하면 파국이 온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교만한 최고경영자의 1인독주 체제가 그 화근이 된다는 분석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결국 성공의 복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겸손하게 창업 초기의 절박한 심정으로 되돌아가서 새로운 흐름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잊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붓을 들어 실패의 사사(社史)를 저술한 어떤 경영자의 사례를 수록해 놓기까지 했더군요.
  
  교만한 경영자나 기업이 실패한다는 교훈은 우리 기업들도 외환위기의 경험 속에서 이미 터득한 바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GM이나 포드가 몰락하고 있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 우리 경영자들도 겸손의 미덕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겸손만큼 하기 쉬운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더군다나 겸손하면 기업이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데 굳이 그 반대를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요.
  
  오늘은 말씀을 드리다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가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이슈를 주제넘게 말씀드린 것 같아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경영자를 만날 때마다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 왔고, 언젠가는 한 번쯤 말씀드려야겠다고 별러 온 이야기라 속은 후련합니다.
  
  사장님께서도 이번 주에는 평소 하시는 말씀과 행동에 혹시 교만한 구석은 없는지 반추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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