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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평택을 위해 촛불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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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평택을 위해 촛불을 들자"

[기고] '꼬붕' 노릇하는 盧정부 그냥 두고볼 것인가

간발의 차이였다. 내가 만약 5월 5일 저녁 7시30분경 정리 집회가 한창이던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승용차를 얻어 타지 못하고 걸어서 도두리로 향했다면, 만약 그 차 안에 갓난쟁이 아기 두 명이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두어 차례의 검문 중에 한 번이라도 걸렸더라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대추리를 출발하여 내가 속한 경남 지역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도두리로 겨우 이동했고, 거기서부터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넓은 팽성읍 들판과 크고 작은 마을 골목길들을 경찰과 숨바꼭질 하면서 몇 시간이나 도망 다녀야 했고, 밤 11시가 돼서야 겨우 전세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짊어진 가방 안에는 목장갑과 마스크와 모자가 있었다. 나는 그날 경찰과 군인들을 향해 그 어떤 위력도 행사하지 않았지만, 만약 내가 연행됐다면 그 소지품들만 갖고서도 복잡한 사진 채증과 폭력 혐의를 덧씌우기 위한 집요한 추궁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치장에서 며칠을 보냈을 것이고, 군사보호구역을 무단 침입한 죄, 공무집행을 방해한 죄만으로도 기백만 원의 벌금을 얻어맞았을지도 모른다.

연행자 중에 나 같은 교사가 몇 명이라도 되었다면 '반미 폭력 교사' 어쩌고 하면서 극우 언론들은 퇴출을 공론화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성가신 것들을 비껴가게 한, 그래서 지금 우리 집 서재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해준 이 '간발의 행운'에 나는 감사해야 하나?

나는 그 '행운'에 맞닥뜨리지 못하고 사지가 비틀린 채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지금도 내 뇌리에는 대추분교의 폐허가 떠나지 않는다. 대추리에서 만났던 선하고 어진 눈매를 가진, 그러나 하나같이 늙고 힘없어 뵈는 어르신들의 영상도 떠나지 않는다. 슬프고, 분하고, 억울하다. 나는 연행되지 않았지만, 연행되었더라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폐허의 대추분교에 펄럭이는 두 글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밤 11시 뉴스를 보았다. 국무회의를 하는 장면이었다. 한명숙 총리가 예의 그 화사한 얼굴로 뭔가를 읽고 있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늦출 수 없고, 강력하게 대응하고, 다친 분들의 쾌유를 빌고 어쩌고…." 듣기에도 짜증스런 소리들을 해 대고 있다. 그는 지금 평생의 이력에서 가장 거대한 실패를 저지르고 있다.

총리 옆으로 국무위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비춰진다. 법무장관 천정배의 얼굴이 지나간다. 저 명석하고 귀티 나게 잘생긴 사람도 지금만큼은 꼭 내 여섯 살배기 아들이 사 모으는 500원짜리 '개구리 중사 케로로' 캐릭터 인형만 같다. 이런 자리에서, 저 따위 말이나 연극 대본처럼 읽어대기 위해 수십 년간 그 고생을 하며 살아 온 것인가, 가련한 일이었다.

다시, 대추분교의 폐허를 떠올려본다. 5월 5일, 두어 시간을 걸어 대추리로 들어갔을 때 (경찰은 들어가는 길에서는 이상스레 별 저항 없이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 마을에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 전날 처참한 싸움의 흔적은 마을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추분교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전율했다. 그때 우리들의 눈에 비친 대추분교의 모습이란, 마치 술을 억병으로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장정 열댓 명이 각기 포클레인 한 대씩을 붙잡아 타고 몇 시간 동안 포클레인 삽날을 휘두르며 육박전을 벌인 것 같은 형국이었다.

대추분교 건물이 아예 박살이 나 버린 건 말할 것도 없고, 운동장과 그 주변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꼴로 짓이겨져 있었다. 운동장 주변을 에워싼 그 많은 거목들은 난폭하게 분질러져 있었고, 뿌리가 뽑혀 비틀려 있었다. 시멘트 사자상은 동강난 채 빠개져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이 올라타고 뛰놀았을 그네들도, 철봉도, 시소도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구부러지고, 시멘트 주춧돌 밑동까지 뽑혀 나뒹굴었다.

운동장 바닥은 제멋대로 파헤쳐져, 포크레인 삽날이 엉망진창의 가르마를 내 놓았다. 이 폐허 위에 깃발 하나가 펄럭이고 있었다. 기다란 대나무 봉에 지저분한 천 조각을 대충 잘라 매달아 놓은 깃발에는 '평화' 딱 두 글자가 펄럭이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서글프고, 그래서 눈물이 났다.

윤광웅 장관과 극우 언론들의 망발

이런 사안이 있을 때 나는 대략 60~70퍼센트의 한국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극우 신문들을 사 본다. 어제 평택 가는 길에서는 <매일경제신문>을 가판에서 샀고, 오늘은 <조선일보> 인터넷 판을 보았다.

<매일경제신문>의 사설은 스산했다. "반미로 변질된 평택 진압은 당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두들겨 맞더라도 맞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직접 가서 보니 이 지침을 위반한 군인들이 어찌나 많던지―을 두고, "이해집단에 매 맞는 군인과 경찰에게 국가 안보와 치안을 맡기는 국민은 참담한 심정"이라며 괴로워했다. 시위대를 시원하게 패주는 것이 군인 경찰들의 '멋진 모습'이라고 꽉 믿고 있는 <매일경제신문>은 참 변태스럽다. <조선일보>는 대추분교 연행자들을 분석하면서, "평택 투쟁은 새만금, 부안 방폐장 등 전국 각지의 반정부, 반미 집회에 참가해 온 '단골손님'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미'를 외치면서 전국 어디건 달려가는 '데모꾼'들은 시원하게 패줘야 되고, 제발 좀 잡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열망들을 그들은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사람 사는 데를 이토록 쑥대밭으로 유린해도 될 만큼 한미동맹이 그토록 귀한 건지 그 이유를 대라고. 당신네들 말고, 우리 민중들 전체, 그러니까 대추리 주민들, 10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민들, 내가 가르치는 어린 학생들, 이들의 삶과 지금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밸도 쓸개도 없이 다 내주는 이 행태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제발 그 이유를 좀 대라고. 정말, 우리 민중들이 알아서는 안 될 중요하고 비밀스런 정보가 있다면 범대위 문정현 신부님이나 대추리 김지태 이장님께 살짝 좀 알려달라고. 우리는 그분들을 신뢰하고 그분들이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좀 시원하게 말해달라고.

그저께 국방부 홈페이지에 갔다가 윤광웅 장관의 브리핑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만장자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한다"며 장관이 주민들을 비난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장관이 늙고 힘없는 한 줌의 농민들한테 대놓고 하는 말로선 너무 과했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가? 그 말이 사실관계를 얼마나 턱없이 왜곡했는지는 그렇다 치고, 대추리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 '보상금에는 관심 없다, 제발 이 자리에서 농사 짓다가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씀이 정말 보상금 더 타내려는 수작으로밖에 들리지 않는가? 세상에는 당신 같은 부류의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렇게 확신하는가? 하긴, 판교 로또 당첨자가 발표되던 날, '이건희 회장이 어젯밤 꿈에 내 손을 잡아주시더니 오늘 당첨이었다'는 뉴스가 훈훈한 미담으로 번져가는 사회에서 백만장자 어쩌고 하는 소리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번짓수를 잘못 짚었다. 그런 논리는 대추리 어르신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같은 '단골손님'들에게도 커다란 모욕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도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우리는 당신들같은 돈벌레들에게선 정말로 구린 돈냄새를 맡지만, 대추리 어르신들에게서는 일생을 땅에서 살아 온 사람들만이 가진 깊은 평화와 온유를, 고향의 가치를, 흙을 떠나 살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느낀다. 그들의 선한 미소가 안겨주는 슬픔을 견디지 못해서 우리는 이렇게 당신들한테 단골손님 소리 들어가며, 차비 써 가며, 연행돼서 구류 살고, 기백만 원 벌금 맞을 각오하고 전국을 다니며 '데모'를 하는 것이다. 만약 윤광웅 장관, 당신이 수십 년 살던 집이 철거계고장을 받았다 치자. 윤장관 당신은 보상금 더 타내기 위해 610일 동안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나와서 입으로는 "땅과 고향을 지키자"고 외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충분히 '백만장자가 될 자격'이 있다. 당신에게 더 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 미국, 그리고 따라 망할 정권

그러나 대추리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서 예사롭지 않은 조짐을 느낀다. 그래도 명색이 '참여정부'인데, 그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 요직에 미국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보았던 사람들도 적잖게 포진하고 있는데, 왜 이런 믿기지 않는 폭거가 자행되는 것일까. 그들에게도 다급한 조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 다급함에는 분명 이른바 '메인 스트림'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을 것이고, 그들의 정신적 동지인 미국 지배자들의 공포감이 본능적으로 연동돼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저지르는 일들은 마치 마약 중독자가 한 방의 주사를 더 맞기 위해 미친 듯 헤매는 것처럼 발악적인 데가 있다. 거기에는 욕구를 채우기 전에는 절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를 점점 더 수렁에 빠뜨린다. 지금 미국은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제국이 되어버렸다. 미국은 무역에서만 매년 800조 원의 적자를 본다. 그런데 펜타곤은 공식 예산, 전쟁 비용, 온갖 것을 다 포함해서 매년 2000조 원의 돈을 쓴다고 한다(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이 '약''을 대기 위해 마구 찍어 뿌리는 달러로 인해 미국은 세계 최대의 '위폐 발행국'이 되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굴리는 군사기지는 7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전율스런 일이다. 전 세계에 700군데의 평택 대추리가 있다! 만약 이 기지들에 관한 그들의 계획이 좌절된다면, 그래서 그 기지의 일부라도 용도폐기 되고, 지역 분쟁에 관여할 베이스캠프를 마련하지 못하고, 절정으로 치달은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시장을 잃고 주저앉기 시작한다면, 미국은 망한다. 그리고 미국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된 대한민국 정권도 망하고, 경제도 따라 망한다.

미국은 이토록 아둔한 멸종 직전의 공룡이다. 미국은 제 일신이 감당이 안 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몰라 발버둥치는, 덩치 크고 우악스런 아이큐 80이 안되는 서글픈 건달이다. 그 서슬에 눌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온갖 수발 다 들어주는 바보 같은 정권이 있다. 이대로 가면, 미국도 망하고, 이 정권도 망한다. 가망 없는 노릇이다.

이제 촛불을 들자!

그러므로 나와 같은 '단골 손님'들은 이렇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대추리를 지키자! 어서 빨리 미국으로부터 빠져나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자!

이 세상은 크고 작은 대추리로, 새만금으로, 천성산으로 가득 차 있다. 김선일, 홍덕표, 전용철들의 삶의 궤적은 이제 대추리에서 이어지려 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대추분교의 그 나무들처럼 분질러졌다. 새만금은 끝내 숨통이 끊어졌고, 그 갯벌은 지금 거대한 시궁창이 되어간다. 한 비구니가 몇백 일 동안 밥을 굶으며 제 육신을 몇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갖다 놓으며 호소해도 세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정권은 이제 제 국토를 분탕질하는 것도 모자라서 저 망할 건달의 '약값'까지 대려 한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들여서.

우리가 인간이라면 저 '들의 울음'을 가슴에 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육백일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촛불을 이제 제 삶의 자리에서 이어받자. 이미 서울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내가 사는 땅 밀양에서도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촛불을 들고, 저들이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제발,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보자. 이렇게 가면 우리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으니, "이제 그만 하자"고, 이 정권에게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인간은 못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외치자.

하반신 마비가 풀리지 않아 천성산 안적암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도중인 지율 스님은 '도롱뇽의 친구들'에게 보낸 '초록의 공명' 메일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에 나가 흙묻은 손을 씻지도 못하고
600여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밝혔던 촛불이
이렇게 무력하게 짓밟혀버린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다시는
어둠속에서 빛을 들고 오는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작은 빛들이 절망을 쓸어갈 때까지
저희도 함께 촛불을 들겠습니다

몇 년 사이에 만도 수 없는 일들을 지켜보았지만, 이제는 평택 차례다. 저들은 모든 일정을 예정대로 밀어붙일 것이다. 대추리 주민들은 지금 고립돼 있다. 다음주부터 강제 퇴거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에서처럼 수십 년, 수백 년 걸려 피땀으로 지은 그 집들은 하나 둘씩 허물어질 것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예순, 일흔, 여든을 넘긴 힘없는 어르신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그 순간마저도 팔짱을 끼고 지켜보아야 하나? 그러고도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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