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보고서 검증? 좋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한덕수, 4월 11일)
"바빠서 못 하겠다. (…) 한미 FTA로 GDP 7.75% 증가, 어떻게 계산했는지도 공개할 수 없다."(KIEP, 4월 18일)
정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1주일 만에 말을 180도 바꿨다. KIEP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수치를 조작하고 은폐했다는 의혹이 사실이기 때문인가?
20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참모들과 KIEP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KIEP는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KIEP의 추정치를 함께 다시 검증해보자는 권 의원의 요청에 대해 '좋다'고 했다가 18일 돌연 "못 하겠다"고 자빠졌다는 것이다.
권영길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에게 KIEP의 데이터 조작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한덕수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정하며 'KIEP의 추정치에 대해 얼마든지 재검증해보라'고 큰소리쳤다.
이에 따라 권영길 의원은 KIEP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와 이를 수정보완해 3월에 발표한 '생산성 증대 효과를 고려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작성할 때 사용한 분석모형과 데이터에 대한 재검증을 같이 하자고 KIEP에 비공식으로 요청했다.
KIEP는 이같은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민노당의 정책연구위원이 19일께 직접 KIEP를 방문해 1시간 동안 분석모형과 관련 자료들에 대한 실사와 재검증을 KIEP 연구원들과 같이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KIEP는 바로 그 전날인 18일 돌연 민노당 측에 전화를 걸어 "바빠서 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황당해진 권 의원 측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단독으로 KIEP가 사용했던 분석모형과 데이터를 검증해볼 테니 KIEP가 사용했던 분석모형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KIEP는 이 부탁도 들어주기를 거부했다.
그동안 KIEP는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데 사용했던 분석모형은 '국제무역 분석 프로젝트(GTAP)'의 방정식 체계를 이용한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모형"이라고만 밝혔을 뿐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어떤 방정식 체계를 가진 모형인지, 모형을 어떤 방식으로 돌려 결과를 얻은 것인지 등 보고서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권영길 의원 측은 "공개검증을 받으려면 어떤 모델을 사용했는지를 우선 공개해야 한다"며 "KIEP가 끝까지 공개를 거부할 경우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밝혀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권 의원은 20일 약 400만 원을 들여 GTAP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권 의원은 KIEP의 모형이 입수되는 대로 평소 친분이 있는 경제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KIEP 보고서를 검증해볼 계획이다.
권 의원 측에 따르면, KIEP는 권 의원 측에 "현재로서는 무역수지 관련 데이터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은 GTAP밖에 없다"며 "그러나 이 GTAP 프로그램의 신뢰도는 50~60%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외교통상부도 KIEP 보고서의 신빙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이 증폭되자 "KIEP 보고서는 신뢰도가 높지 않으며, 단지 참고할 만한 수준일 뿐"이라는 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그렇지만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여전히 KIEP 보고서의 결론 부분만 떼어내어 한미 FTA 홍보에 활용하고 있고, 재정경제부도 한미 FTA의 국내 경제적 효과를 설명할 때 KIEP 보고서의 결론 외에는 다른 자료를 인용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번에 KIEP 안에서 권 의원 측의 재검증 요청에 관한 업무를 담당해 온 이창수 KIEP 세계무역기구(WTO)팀 팀장은 〈프레시안〉에서 확인차 전화를 걸자 수화기를 집어들긴 했지만 곧바로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른 데 알아보라"면서 더 이상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심한 질책을 들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