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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퇴직자도 관리하고 예우해야 합니다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35〉 퇴직 프로그램

K 사장님!

오늘은 경영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퇴직 임직원에 대한 예우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연하게도 이 글을 구상하고 있는 동안에 현대자동차 사태가 불거졌고 이 사태의 발단이 퇴직한 임원의 제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벌기업들의 퇴직임원 관리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언론은 연일 각 그룹의 퇴직임원 관리 프로그램을 비교해 보도하고 있고, 그 내용을 보면 현대차의 퇴직 임원 대우가 타사에 비해 야박하고 퇴사한 '금고지기'에 대한 관리가 부족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시각도 상당수 있더군요.

저는 이런 현상 자체가 우리 사회나 기업이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후진성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부정행위를 투명경영이나 정도경영으로 근절하지 않고 퇴사한 임원에 대한 관리 문제로 돌리는 것은 잘못된 관행입니다. 퇴직한 임원을 그런 불미스러운 일과 짝지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지요.

퇴직 임직원은 기업의 오늘을 가능하게 만든 공헌자이며 소중한 인적자산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예우의 대상이지 어떤 경우에도 단속의 의미를 내포하는 관리의 대상은 결코 아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퇴직이라는 하나의 사안을 바라보는 기업주와 퇴사자 간의 커다란 인식차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기업은 사람'이라고 하고 많은 기업가들이 '인재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우수인재 확보에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경영여건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 자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현실이지요.

인력을 정리할 때가 되면 비용절감 차원에서 장기근속자가 제일 먼저 그 물망에 오르게 됩니다. 그럴 경우 해고되는 당사자는 회사의 성장과정에 기여했는데 이제 와서 토사구팽 당한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을 느끼는 반면, 기업주는 오랫동안 먹여 살리고 출세시켜줬는데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히 벌어집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에서 인원감축은 경쟁력 제고와 거의 동의어 수준으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최근의 기업 관련 통계를 보면 퇴직 및 해고된 인력의 숫자가 신규채용된 인원을 상회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삼팔선(38세 퇴직)이니, 사오정(45세 정년)이니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니 하는 자조적인 조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지요.

물론 기업이 생존을 위해 인원을 감축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추진방법 상의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인적 구조조정은 기업 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비용을 절감하게 하며, 나아가 생산성을 제고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종업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며 퇴직비용의 부담 증가와 우수인재 유출 등의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직은 인재의 확보나 육성에 못지않게 중요한 인적자산관리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원의 감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경영자는 기업과 퇴사자 개인이 함께 성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퇴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기업의 퇴직 프로그램 실태는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내실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퇴직자에 대한 예우를 하고 있다는 기업들도 그 혜택이 임원급 이상에만 돌아가고 있어 일반 퇴직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실정입니다. 임원에 이르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대책이 더욱 막막한데도 말입니다.

일부 기업에서 전직지원(outplacement)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은 퇴직자 선정이나 해고통보 방식, 퇴직과정 관리 및 사후관리 등에서 최소한의 예우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왕에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회사로부터 떠나게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지요.

퇴직 프로그램의 요체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업에서 해고는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즘 고초를 겪고 있는 현대차에서는 오전까지 멀쩡하게 임원회의를 주재하던 사장이 오후에 퇴직당하는 식의 '깜짝 인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과거에 정부의 고위직을 지낸 지인 한 분이 자신의 해임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하고 뉴스를 통해 알았을 때 임명권자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며,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더라고 고백하는 것을 사석에서 들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경영자는 평소에도 종업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예사로 쓰고 해고를 할 때도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괜한 원수를 만들곤 하더니 결국 끊임없는 투서와 진정에 계속 시달리는 모습을 목격한 일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데서 비롯되는 일이지요. 퇴직자 선정도 오너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통보방식조차 예의를 갖추지 않는 기업에 애정과 충성심을 가질 종업원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퇴직자들이 최소한 심정적으로라도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퇴직자 선정 방식과 예측가능한 상시 퇴직관리 제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퇴직의 기준과 그 비율을 매년 초 미리 발표해서 실시하고 퇴직대상자에 대한 조기경보제, 직급정년제 등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지요. GE의 경우 상시적인 퇴직관리 시스템을 통해 매년 성과가 부진한 하위 10%의 인력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퇴직을 결정하기 전에 기업은 근무시간의 단축이나 신규채용의 축소 등 고용유지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단계적으로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감원이 불가피할 때는 당사자에게 부득이한 회사형편으로 인해 퇴직조치를 하게 되었음을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통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퇴직을 통보하고 나면 그때부터 전직준비를 위한 프로그램을 발동시켜 퇴직자가 새로운 직장을 모색하거나 창업을 하는 과정에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직지원 서비스는 퇴직자가 받을 심리적 충격을 줄여줄 뿐 아니라 남은 종업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에 고위 임원으로 재직하다 어느날 갑자기 퇴직당한 어떤 분은 자신이 받은 충격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수십 년 동안 타고 다니던 전철 노선에서 난데없이 전혀 모르는 역에 강제하차 당한 기분입니다. 무얼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전직지원 서비스는 한줄기 빛이 되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길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러한 서비스는 선진기업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기업들도 하루 바삐 도입해야 할 제도입니다.

퇴직 임직원에 대한 관심은 그들이 성공적으로 떠나간 후에도 계속돼야 합니다. 그들이 과거의 동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협력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께서는 퇴직 임직원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지요? 그동안 소원하게 지낸 옛 동료가 있다면 오늘은 연락을 취해 안부라도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무척 반가워하고 고마워할 겁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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