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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은 없다"

[전태일통신 32] 서해5도와 한강 하구에서

***바다는 사막이다**

바다는 사막이다. 그 막막함으로 보자면 오아시스도 없는 철저한 사막이다. 아무 것도 의지할 데 없는 바다 위에서 뱃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수많은 별들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자연의 결을 찾아내는 것이다. 뱃사람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구조를 응시한다. 지배할 수도, 대화할 수도 없는 바다에서 뱃사람에겐 어떤 도식이나 이론도 무용하며 목숨을 건 실천만이 앎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장사꾼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로 유혹하고 설득한다. 장사꾼에게는 손님의 합의 없이는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사기조차도 합의를 요한다. 장사꾼은 낯선 상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밖에는 그를 구속할 수 없는 장소에 서 있다. 장사꾼에겐 참된 가치나 공동체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것 따위는 가능하지 않다. 그는 언제나 공동체의 외부를 향해서만 존재하며 낯선 세계의 언어로 대화하는 법을 찾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농사꾼은 선원이나 상인에 비하면 개조할 수 있는 자연을 상대하는 사람이다. 그의 관심은 낯선 외부보다는 공동체의 내부를 향해 있다. 샤머니즘은 개인을 공동체에 일치시키는 기술이다. 지배할 수도, 대화할 수도 없는 상대를 알기 위해 목숨을 건 비약을 준비하기보다, 신비적인 주술과 마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자연을 해석한다. 마술은 대화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래 실재를 알고 있는데 오히려 언어 때문에 거기서 멀어졌다'고 말한다. 타인을 강제하는 권력으로 바뀌지 않는 신비주의란 없다. 왜냐하면 신비주의는 대화할 필요도 없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만인은 그것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마술이나 주술은 공동체 내에서만 통용된다. 마술과 주술의 힘은 사람을 구속하고 있는 공동 환상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마술과 주술의 힘은 공동체의 구속력일 뿐이다. 근대국가의 마술인 보편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제도와 공권력의 틀 속에서 만이다.

***북의 선박을 막는 '용치'는 되레 우리 마음을 막아버렸다**

연평, 백령, 소청, 대청의 해안에는 아직도 '용치'라 불리는 쇠말뚝이 해안방어물로 건재해 여전히 박혀 있다. 바다에 안전한 울타리 따위가 없음을 잘 아는 뱃사람에게 울타리는 오히려 장애물이다. 전쟁이 지나고서도 서해안의 모든 조기잡이 배가 몰려들어 최대의 파시가 열리던, 뱃사람이 장사꾼이 되고 장사꾼이 뱃사람이 되던 서해 물류망의 정점, 서해 5도엔 북방한계선이란 주술이 섬 주위를 망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정전협상의 기본인 군사분계선이 한강 하구와 바다에 대해 합의되지 않은 것은 유엔군사령부의 압도적인 해군력 때문이었다. 분계선을 합의하는 것이 오히려 해양통제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우호적 상대도 아닌 적대적 쌍방 간에 합의의 언어 대신 압묵적 동의만이 강요될 수 있다고 판단한 유일한 근거는 미군의 군사력이었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는 육지에서만 합의되었다. 한강 하구와 서해에는 어떤 군사적 개념의 '선'도 '지대'도 합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동서 바다에서는 수많은 분쟁과 위기가 지나갔고 1977년 8월 1일 북은 인민군 최고사령부 이름으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한다고 선언했다. 정전협상을 통해 합의된 것만이 법적으로 유효한 상태에서 북의 일방적인 선언은 푸에블로호 사건 등을 거치며 생긴 북의 자신감의 반영이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앞으로 해상분계선을 합의해 간다'는 조항에 이르러서야 남과 북은 내부를 향한 주술에서 외부를 향한 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지리 모형에만 존재하는 서해5도 북방한계선…허상의 바다, 허상의 선**

그러나 1999년 6월 15일 연평 앞바다에서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만들고 북과 전혀 합의된 적 없는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고, 서로에게 향하던 모든 가능성은 사라진 듯 암담해졌다. 북방한계선이란 주술이 등장한 것은 이때다. 1996년 백령도에서 비슷한 충돌이 있을 때도 이양호 국방장관은 북방한계선과 정전협정은 무관한 것이라고 확인할 만큼 이성적이었다. 그러나 1999년 북측 군인이 사살된 교전에 대해 남측 해군은 '연평대첩'이라 칭할 만큼 애국주의에 경도됐고, 단 한 번도 유엔사와 인민군 사이에 합의된 바 없는 '북방한계선'이 오랜 시간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정착됐다는 이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승리라는 절정의 순간에 발생한 2차 서해교전에선 거꾸로 남측 군인이 사망함으로써, 남북은 서로 피를 보게 되었고, 피를 보며 쓰러져 간 전우 앞에서 이성과 대화가 들어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청와대 안보팀의 주류 인사들은 예외없이 과거 학계와 단체에서 북방한계선의 허구를 주장하던 분들이지만 이들에 의해서 다시 북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으로 선언될 수밖에 없는 무거운 기류가 사회 전체를 덮게 되었다.

***서해 상의 군함**

1, 2차 서해교전의 남측 작전명령은 '북방한계선 사수'였다. 이에 북은 1999년 다시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선포로 응수했다. 2차 서해교전까지 이같은 현실은 변치 않았다. 더 이상의 충돌은 남북이 쌓아 온 신뢰를 일거에 날려버릴 것임을 서로 잘 알기에 올 3월 남북장성급 회담의 제1주제는 서해 문제였다. 남측은 교전수칙을 적용하기 전에 위기를 해소할 실무적인 방법을 제안했고, 북은 1977년과 1999년 일방적으로 선포했던 서해 군사분계선을 일단 접을 테니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분계선을 논의하자는 본질의 주제를 제안했다.

내부를 향하던 주술과 자기암시를 멈추고 상대방을 향한 대화의 언어가 복원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화의 상대가 빠져 있었다. 유엔사다.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을 새로이 합의하자는 북의 제안은 합의의 당사자가 남측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전협정 당사자만이 군사분계선을 합의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때문에 유엔사를 끌고 나오라는 주문을 남측에 한 셈이다. 결국 유엔사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긴 셈이다.

남이 제안했던 상호통신 등의 위기해소 방안 역시 유엔사의 교전수칙을 실질적으로 수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행 교전수칙의 주체는 유엔사로, 이는 궁극적으로 유엔사의 위기관리조치 절차의 범주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사 교전수칙이 적용되기 이전 단계에서 남북의 교감으로 교전수칙 적용까지 가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다. 모두 협상장에 나와 있지 않은 유엔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남북이 서로를 향한 대화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요인이 여기에 있다.

남으로서는 '피 흘려' 사수한 북방한계선에 대한 주술을 접는 것이 물론 협상의 전제다. 북으로서도 이미 '피 흘려' 사수한 서해 군사분계선을 실질적 당사자도 아닌 남측과 거래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전제다.

군사분계선에 대한 논의는 군인이 할 수밖에 없고, 유엔사를 피해갈 수 없다. 유엔사는 이런 기회가 자신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군사분계선 협상은 남북이 서로 원치 않는 유엔사에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자신이 지배하지 못하는 자연의 구조를 응시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는 뱃사람과 같이 우리는 남북의 대화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더 큰 구조를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꽃게잡이 배**

결론을 말하면 서해상 군사분계선 문제는 3가지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

첫째, 군사분계선 협상은 영해선 협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영해협상은 남북의 군사당국자 대신 외교당국자가 만나서 하는 것이다. 유엔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정전협정상 서해상에는 군사분계선이 합의된 바 없기 때문에 유엔사는 어떤 관리권이나 관할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군사분계선의 합의는 지금까지 교전수칙만을 가지고 있던 유엔사에 관리권을 쥐어 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통일 이전까지 임시적 성격을 가질 영해선을 확정하고, 공동어로수역을 운영하며, 일정구역을 안보구역으로 설정하여 남북의 군이 관리하면 유엔사가 50년간 행사해 온 주술적 권한은 사라진다.

한편 서해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협상에 가장 큰 짐을 지고 나올 수밖에 없는 군인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 영해협상은 필연적으로 우리 내부의 가장 큰 주술적 언어인 헌법 3조의 영토조항 명문과 충돌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문구는 근대국가 대한민국을 규정하는 최상위의 법적 언어이지만 이는 유엔에서도, 혈맹이라는 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지 못한 울타리 안의 언어다. 북의 헌법 9조에서 북의 정부가 행사하는 주권의 범위는 '북반부'로만 한정되어 있다. 통일로 가는 과도기 상태에서 남측의 영토조항은 현실을 반영하고, 다른 세계와의 합리적 대화를 위하여 한반도 남측지역으로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북을 미수복지구로, 북의 정권을 괴뢰반도 정권으로, 공동체의 주적으로 규정한 상태에서 영토협상인 영해협상이 가능하겠는가? 영해협상은 공동체의 적이었던 상대를 손님으로 맞아들여 대화하는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에게 절대불변의 가치나 공동체 내의 동질성 따위는 자멸의 요인이듯, 우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주술의 언어는 반성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둘째, 단기적으로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합의될 필요가 있다. 일정기간이 걸릴 영해협상 중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대화에 난관을 조성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 경계선의 설정과 유엔사 교전수칙을 실질적으로 대신할 공동의 충돌방지수칙을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정에 서서 여백처럼 비어 있는 한강 하구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강화 시선배가 능청능청 열어갈 통일의 길을 말입니다**

셋째, 한강 하구가 비무장지대도 아니고 군사분계선도 없으며 유엔사의 관리권도 없는 곳임을 확인하는 대중적 캠페인을 통해 한강 하구의 연장인 서해상 역시 군사분계선도 없고, 비무장지대도 아니며, 유엔사의 관리권도 없는 지역임을 국민적으로 인식케 하는 방법이다.

한강 하구는 서해에 비해 통항수칙까지 합의가 되어 있지만 서해와 같이 서로 피를 흘리지 않은 지역이기에 어렵지 않게 평화지대화 할 수 있는 분단의 해방구와도 같은 곳이다. 서해의 섬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정서의 감도가 떨어지는 데 비해 한강 하구는 서울을 비롯 파주, 일산, 김포, 강화, 인천 등 수도권을 망라하는 시민들의 직접 접촉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해를 둘러싼 주술적 언어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킬 대중적 운동은 한강 하구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용산기지에서 이륙한 헬기 안에서 바라보는 백령도 앞바다는 해무까지 겹쳐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헬기의 소음도 그 막막함 속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바다는 여전히 사막이다.

***발전은 사람을 위한 변화이다. 그것은 부정의 긍정으로의 변화이며 시련의 전망으로의 변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스런 발전은 스스로 억압이던 것이 남조차 해방시키는 존재로의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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