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작정한 듯 참여연대를 때리고 나섰다. 8년간 세 들어 살던 안국동 사무실에서 내쫓길 처지에 놓인 참여연대가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에 거액의 후원금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오는 6일 굴지의 국내 기업에 대한 편법 증여 및 상속과 관련한 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것도 이런 구설수의 한 원인이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발표 때문에라도 참여연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기업 당 5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상한을 둔 것이나 발표를 바로 앞두고 후원금을 걷기로 한 데 대해서는 참여연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던 일부 인사들마저도 "참여연대가 경솔했다"고 쓴 소리를 하고 있으니 기자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경제지가 앞장서고 대다수 보수언론이 따라간 이 '참여연대 때리기'를 보는 심정이 그리 편치는 않다. 그 언론들의 '참여연대 때리기'에는 '참여연대 죽어라', '시민단체 죽어라', 하는 증오의 칼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중 '최고 권력', "다리 뻗을 공간도 없다"**
'도덕성'이 생명인 시민단체이다 보니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도,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안정적인 공간 확보가 어려움은 물론이고, 활동가들 역시 상상할 수 없는 박봉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다. 이런 사정은 수년 전부터 '권력'이라고 불려 온,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실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창립한 지 10년이 넘도록 제 발 뻗을 장소도 구하지 못 해 전세살이를 해 온 것이나, 채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활동가에게 지급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여연대가 이 지경이니 참여연대보다 사정이 못한 전국의 시민단체들의 속사정은 더 말해 뭣 하랴. 이 때문에 시민단체 안에서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정부와 기업 돈을 받는 데 대해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 형태로 또는 후원금의 형태로 정부와 기업 돈을 받아 온 시민단체도 있다. 사실 시민단체에 재정과 관련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굴레로도 작용한다. 국내 언론들이 신주단지처럼 인용하는 세계적인 NGO들도 때에 따라서는 투명성이 전제된 상태에서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물론 이 돈은 그 NGO의 활발한 활동을 뒷받침하는 유용한 자원이 된다.
대개는 토건자본들 배를 불리는 데로 새나가는 수백 억, 수천 억 원의 혈세나 소비자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텔레비전, 신문 광고를 위해 집행되는 기업들의 막대한 홍보비를 염두에 두면 연간 수억 원이라도 시민단체의 활동에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시민들의 삶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단체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자칫 활동의 중립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흠집 낼 궁리를 하며 감시하는 세력이 한두 군데가 아닌 상황에서 자칫 안 받느니 못 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 사회에서 모든 활동이 가장 투명하게 공개돼 감시를 받는 세력이 바로 시민단체 아닌가?
참여연대가 좋은 예다. 회원들의 회비와 개인의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 참여연대의 전체 살림살이에서 기업의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12%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부로부터는 한 푼도 안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공공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은 논외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는 창립한 지 12년 동안 돈과 관련해서는 큰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었다.
***기업 권력 견제할 마지막 '보루', 시민들이 지켜야 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번에 언론이 쏟아낸 '참여연대 때리기' 기사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단적으로 매해 창간일마다 기업들을 돌면서 수천만 원짜리 광고를 따가는 게 누군가? '○○일보의 창간 ○주년을 축하한다'는 광고를 집행할 수밖에 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삥 뜯긴' 기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광고비에 업계 표준은 있을지언정 참여연대처럼 기백만 원의 '상한선'을 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이 시점에 기업의 등에 업은 경제지가 앞장 서서 사실상 '참여연대 죽이기'에 나선 배경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삼성으로 대표되는 기업 권력은 정부, 노동조합 등 차근차근 자신의 견제 세력을 포섭, 제거하는 등 무력화시켜 왔다. 안타깝게도 그나마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며 견제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던 게 참여연대로 대표되는 일군의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마저 기업 앞에 무력화되면 우리는 더 행복할까?
이참에 '시민 없는 시민단체'를 입에 되뇌는 시민들도 잠시 성찰이 필요할 듯하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민단체의 한계처럼 지적된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한국의 시민사회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시민단체가 좋은 일 할 때는 박수를 치면서도 선뜻 참여하기는 꺼리는 게 현실이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는 바로 우리 스스로를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참여를 마다할 시민단체는 없다. 이렇게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면 시민단체 입장에서도 기업들에게 내키지 않는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시민단체는 여전히 시민들의 참여에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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