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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지키기 위해, 들을 빼앗길 수 없는 사람들"

[기고] '인간존엄'이 살아 있는 평택 팽성으로 오세요

황새울 들녘에 곧 봄이 넘실댈 겁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 구절이 떠오릅니다. 지금 평택 팽성에는 들을 빼앗겨 봄마저 빼앗기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가득합니다. 나비, 제비처럼 서두르는 국방부와 미군들 때문에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들을 지키려고 봄을 일구고 있는 곳, 평화의 모심기에 해가 뜨고 지는 곳. 제국주의 군대의 군화를 벗길 수 있는 곳. 인간의 존엄이 살아 있는 곳. 팽성 들녘의 봄을 위해 글을 씁니다.

영농발대식을 가진 주민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겨울 한철 투쟁으로만 바빴던 농민들은 오랜만에 본연의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팽성읍 사람들은 불안과 긴장을 숨길 수 없습니다. '다음주, 다다음주면 용역깡패들을 앞세운 행정대집행이 시작된다 카더라' 하는 소문이 둥둥 떠다니기 때문입니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강제토지수용 절차를 모두 마친 황새울 땅은 이미 법적으로 국방부의 것입니다. 그네들이 자기 땅이라고 말뚝이나 울타리를 쳐도, 법원에 가서 입도 벙긋 못할 국방부의 땅 맞습니다. 행여 말뚝 박는 국방부 직원 멱살이라도 잡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서에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것을 주민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미간에 잡힌 주름이 펴질 날이 없습니다. 참새처럼 팔랑팔랑 마을을 뛰어다니던 아이들도 분위기가 심각한 것을 눈치 챘는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500여 일 넘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열리는 촛불집회장에도 이런 염려는 마른 가지에 붙은 불씨처럼 번져 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담뿍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 보는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주민대책위(이하 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은 다른 때보다 우스개 소리를 더 많이 합니다. 그래도 그 덕에 어른들은 한번 씩 더 웃습니다.

4년 동안 싸우면서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았는지, 협의매수 하고 나간 집 사람들은 남은 이들에게 미안해서 고향땅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그걸 보면서 마음이 짠한 사람들은 그래, 우리라도 이 땅을 지키겠다고 오지게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어떤 이웃들은 미군기지확장 찬성 측으로 똘똘 뭉쳐서 마을 동정을 국방부 쪽에 날라다 주기도 하니, 어느 때는 국방부나 미군보다 더 밉기도 합니다. 몇 십 년을 옆 집, 앞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만큼 가깝게 살아 온 이웃들이 찬성 측, 반대 측으로 갈라져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겁니다. 주한미군의 대리인이 된 국방부는 국책사업이란 명분으로 돈 장난질을 쳐서 피보다 진했던 마을 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댐 공사로 고향을 잃은 게 어제 같은데…**

도두2리 새마을 지도자 한승철 씨는 국책사업 때문에 고향이 바뀐 사람입니다. 원래 고향은 아산만 쪽이었는데 충청도 댐 건설공사로 온 가족이 여기 도두리로 집단 이주를 했습니다. 당시는 유신 말기라 정부에다 대고 이렇다 저렇다 불평불만 한마디 못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나가라고 쫒아내니, 쫒겨 날 수밖에 없었답니다. 한승철 씨는 "고향 나온 사람 중 20%만 그냥 쫌 괜찮고 나머지는 고향에서 살 때만 못하다"고 합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보상금이 결코 사람들을 잘 살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겁니다.

한승철 씨는 도두리로 처음 이사 와서 4500평 되는 땅을 일궈서 지금은 3만6000평을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국방부 소유로 돼버려, 법적으로는 맹탕인 땅이지만 말입니다. 가슴 아픈 기억을 들추면, 이주해 와서 농기계가 없어 수작업으로 모 심고 벼 베고 탈곡하면서 옥토를 일구는 동안 네 살짜리 큰 딸을 잃었습니다. 모 심느라 정신없는 통에 아이가 수로에 빠져 죽었던 겁니다. 다른 집들 중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애 아픈 것도 몰라, 시기 놓쳐 생떼 같은 자식 목숨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일군 땅이 남의 땅이라고 하는데, 피눈물 안 나겠습니까.

게다가 지난 23일 국무조정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이라는 데서는 "미군기지편입 평택주민들, 현대서산농장에서 '내땅 8500평씩' 마련했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내용인즉 협의매수에 응한 주민들이 기획단의 알선으로 현지시세의 85% 수준인 평당 3만7500원에 최고 일인당 6만 평의 땅을 매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관련법령을 보면, 수용되는 토지 보상가액 또는 면적 이내에서만 대체 토지 구입이 가능한데 국방부가 관계기관과의 협의 하에 대체 토지 구입은 물론이고 지역적 범위까지 넘길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완료했다는 설명입니다.

땅 욕심 많은 농민들 입장에서, 협의매수 했더니 이렇게 좋다는 사탕발림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대책위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승철 씨의 마음이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부터 글 잘 쓰기로 유명한 동네 시인 한승철 씨가 주민들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을 다 잡는 시를 한 편 써서 촛불집회장에서 읽었습니다. 눈물어린 아름다움이 담긴 시였습니다.

***나의 운명**

세상을 탓하여 무엇하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주어진 남은 세월 발자국 곱게 걸어
한 점 부끄럼 없는 이름 남겨 놓고 가리라
이러쿵 저러쿵 한들 내 마음에 달려 있네
힘없는 민중들이여 북망산 가는 날에는
빈손으로 가는 것을

무엇이 두려우랴 마음을 다스려야지
바라보고 있네 황소 4마리
너희는 우리의 희망이도다 내 간 뒤 누가 내 말 하랴
긴 세월 삶의 지혜 백발이 보배로다
그 보배 베풀면서 기쁨을 누릴레라
그날을 위하여

이날 시 읽는 소리를 듣던 김택균 사무국장은 목소리 낭랑한 지선 씨에게 다시 읽어달라고 청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두 번 세 번을 들어도 좋은 시는, 땅만 보고 살아 온 한승철 씨 마음 그대로입니다. 투쟁하느라 너무 바빠서 지난 가을 추수한 쌀을 창고에 쟁여 놓고 팔지 못해, 당장 경제난에 봉착한 대책위 간부들의 마음도 모두 담겨 있습니다. 주민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그것을 넘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 있습니다.

***평범한 농민을 '데모꾼'으로 만드는 대한민국**

황새울 들녘에서 500여 일 동안 촛불을 들고 있는 주민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돈 많은 어느 신문은 사설에서 '주민들을 부추기는 불순한 세력이 있다'고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의식화 시키는 빨갱이들이 주한미군기지확장반대 투쟁의 배후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승철 씨나 김택균 사무국장이나 김지태 위원장은 누가 시킨다고 뭘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그동안은 모질게 당하고 살면서도 '국가 원망, 미군 원망은커녕 그저 생목숨 하나 부지하여 새로운 삶터에서 온갖 노력을 했을 뿐 나라에서 시키면 세금내고, 부역하고 통일벼 심으라면 통일벼 심고, 군대 가고, 국가에서 시키는 일은 다 했습니다. 비행기 소리, 총소리 시끄럽고 부대에서 흘러내리는 오염된 폐수, 부대에서 솟는 시커먼 불길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지만 어디다 따질 줄 모르고 묵묵히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자신들의 재산과 땅을 빼앗는 것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겁니다. 국익을 위해서 촌무지렁이들은 입 닥치고 땅 내놓으라고 하니, 국가에 대한 원망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한미 간에 합의되었다는 종이쪽을 보면, 사업 시행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는지 이전해서 오는 부대가 뭐하는 것들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포괄합의서인데, 국회의원이나 국방부,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삶은 호박에 이 안 들어갈 말'로만 주민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도대체 국민들이 모르는 국익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조차 않으면서 무조건 국익이라고 합니다.

그런 마당에 '데모질' 하지 않고 눈 시퍼렇게 뜨고서 땅 뺏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주민들을 반미 투사로 만든 것은 국가입니다. 주한미군기지확장반대 투쟁의 배후가 있다면, 이 땅의 주민들을 국민 취급하지 않은 국가입니다. 봄이면 모 심고, 여름이면 피 뽑고, 가을이면 추수해서 자식새끼들 공부시키고 대학 보낸 자식들이 행여 운동권 될까봐서 김치 싸들고 찾아가 말릴만한 사람들을 빨간 머리띠 두른 투사로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원래 살던 대추리(현재 미군기지)에서 쫒겨나 지금의 대추리를 만들었던 분들 중에 89살 먹은 조선례 씨는 당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기 회관 진 디, 노인정 있는 디, 그게 다 산이거덩. 거기다 죄 집들 굴을 파고, 뙷장을 떠서 이럭하고, 불들을 때가매, 그냥 막 거그서 살았어. 흙집인디, 흙으로다가 이렇게 이렇게 뭉쳐 가지구서 짓는 집들, 으자쩐헌 사람들은 그때 다 죽었어. 어린애들하고 노인네들하고." (평화바람 주민 인터뷰 中에서)

***어떻게 일군 땅인데 미군에게 넘겨야 하나**

죽어가는 가족들을 데리고 뻘을 간척하고 손마디가 부르트도록 일군 땅이 바로 지금의 대추리, 황새울 들녘인 것입니다. 돈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그 땅을 다시 미군에게 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일인거지요. 벼가 자라고 엄마 젖을 빨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눈물이 서린 이곳이 군인들의 군화 발에 밟히고 비행기의 활주로가 된다는 것은 잔혹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목숨을 내 걸고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농촌공사에서는 벼농사에 쓸 물을 주지 않겠다고 하고, 평택시에서는 농협 쪽에 벼 계약재배도 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오히려 국방부는 농사를 지을 경우 징역을 보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년 전에 철새가 보리를 너무 뜯어먹어 총기 좀 내달라고, 새를 쫒게 총 좀 내달라고 해도 천연기념물은 보호해야 한다고 난색을 표하던 공무원들이 팽성 땅에 귀중한 역사 유물이 나왔다는 발표를 보고도 묵묵부답입니다. 미군기지를 짓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만 합니다. 헌법재판소까지 포함해서 저들 좋은 쪽으로만 법을 휘두르는 국방부나 법원은 모두 한 통속입니다. 농촌공사, 농협, 평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믿을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봄이 되고, 들녘의 위험이 다가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평택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변호사, 노동자, 집 고치는 사람,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영농자금을 마련해 주는 운동까지 합니다. 주민들이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들이 오는 겁니다. 들녘에 봄이 오기 위해서는 들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는 겁니다.

대통령에게 차라리 빨리 죽이라고 호령을 하던 김지태 씨는 그 희망을 믿고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용역깡패 수천 명을 데리고 들어와도 지지 않고 싸웁니다. 평택 팽성의 촌무지렁이들이 제국주의 군대를 몰아냈다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팽성 들녘이 이라크를 향해서 출격할 비행기들의 활주로가 되지 않도록 이들은 오늘도 모판을 다듬고 영농 계획을 짭니다. 평화의 씨를 뿌리는 지금, 평택 황새울은 인간 존엄이 자연과 함께 살아 있는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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