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백남준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후 몇 시간 동안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20세기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의 타계 소식에 일부 누리꾼들이 그를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백남준의 국적이 '미국'이다." "그의 처 시게코 쿠보다의 고국은 심지어 '일본'이다."
이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의 '들뜬' 분위기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황우석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언제든지 '애국주의', '민족주의', '순혈주의'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그리고 그들이 더 나아가기 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펴낸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김혜신 옮김, 돌베개 펴냄)은 바로 그런 점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찬물'이다.
****남과 북을 찾은 코리언 디아스포라, 서경식과 조양규**
서경식이 20여 년간 세계 각지 디아스포라 예술가의 흔적을 좇은 이 책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저마다 책 한 권 분량의 사연을 안고 있는 디아스포라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와 '공동체'에 대한 간단치 않은 질문들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지금 디아스포라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오늘날 이 말은 다양한 이산 민족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가 됐다. 소문자 디아스포라(diaspora) 탄생의 배경에는 노예무역, 식민지배, 세계대전, 지역분쟁, 제3세계 민주화, 자본주의의 전 지구화 등 지난 수백 년간 결코 순탄치 않았던 '고난의 근·현대 세계사'가 놓여 있다.
당장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삶 역시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 때 철도 건설 노동자로 일본에 건너간 할아버지 대부터 일본에 터를 잡았던 서경식의 가족은 고국이 독립한 후에도 계속 일본에 남는다. 고국이 독립한 후에도 그들의 고난은 계속됐다. 1970년대 고국을 찾은 그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은 간첩으로 몰려 각각 19년, 17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 후 30년 가까이 서경식은 형들의 옥바라지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오랜 세월을 방황으로 보냈다.
이런 서경식의 삶은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소개되는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기구한 사연들 중 하나일 뿐이다. 조양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해방 직후 좌익 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결국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후 일본 미술계의 '기린아'로 떠올랐지만 1959년 '북조선 귀국운동(북송 사업)'이 시작되자 1961년 북조선으로 건너갔다. 그는 반쪽 고국을 찾으면서 "도구도 표현도 일본보다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공중에 매달린 듯 어중간한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 조국의 현실 속에서 싸우고 싶다"고 밝혔다. 북송 후 2년 가까이 소식을 전하던 그는 행방불명이 됐다.
***디아스포라들의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런 디아스포라의 슬픈 사연이 어찌 한반도에만 한정되겠는가? 책 전체에 걸쳐 서경식을 사로잡은 이들의 상당수는 유대계 디아스포라들이다. 이탈리아의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서경식은 이미 〈프리모 레비를 찾아 나선 여행〉이라는 책을 일본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기도 했다.)
유대인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화학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독일에 저항하는 파르티잔(빨치산) 활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힌 그는 아우슈비츠에 보내졌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탈리아에서 그와 함께 같은 열차로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615명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를 포함한 3명에 지나지 않았다. 생존 후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토대로 나치의 극악한 폭력을 고발하는 노력을 폈으나 결국 1987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살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신생' 조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막지 못한 데 대한 무기력함이 있었다.
프리모 레비의 불행한 삶은 서경식이 '디아스포라적 자기인식'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의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로 이어진다. 가산 카나파니(Ghassen Kanafani)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카나파니는 1948년 열두 살의 나이로 난민이 된 뒤 교사 등의 직업을 거쳐 작가가 됐으며 말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ELP)'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카나파니는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열망했지만 결국 1972년 폭탄테러로 사망한다.
평생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로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던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3년 3월 3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본 지 6개월 후 뉴욕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경식은 그가 남긴 마지막 말에 깊이 공명한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 곳은 최후의 변경이며 나는 최후의 하늘을 보고 있는가 봅니다.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운명이 멸망해가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은 '여기서부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묻습니다. 우리는 다른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싶습니다. '너희들은 죽었다'는 말만으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눈물 젖은 근대'에 포박된 삶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서경식은 이 책에서 고국의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내부' 사람들이 온갖 이방인과 소수자들의 '눈물 젖은 근대'에 포박된 삶에 의문을 갖기를 바란다. 그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외부'로부터 내는 목소리가 '내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나는 낙관하지 않는다. (고국을 처음 찾았던) 고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내게 조국은 반드시 편안한 장소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차이를 지닌 채 진행될 '외부'와 '내부'의 대화에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런 곤란한 대화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외부'와 '내부'라는 개념의 장벽을 넘는, 새로운 '우리'의 모습을 모색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은 일본의 〈세까이(世界)〉에 2004년 6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2005년 7월에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글은 번역 과정에서 〈프레시안〉에 연재돼 고국의 독자들을 먼저 만나기도 했다. 한 번도 고국에서 오래 머문 적이 없던 서경식은 이 책 출간과 함께 3월부터 성공회대 객원연구원으로 1년간 체류할 예정이다.
그가 고국을 처음 찾은 것은 1966년 열다섯 살 때였다. 이제 그는 쉰다섯 살이 됐다. 40년 만에 고국을 '원체험'할 그는 1년 후 무슨 기록을 또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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