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우리나라 농업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농업 생산은 국내총생산(GDP)의 4%, 농업 인구는 전체 인구의 8%, 농지는 국토의 7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의 경우 GDP의 2~3% 정도가 농업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앞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작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농업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농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계산에 의해 재정경제부는 필요 없게 될 농지에 골프장을 짓기로 했다. 재경부의 '골프장 300개' 정책이 이런 논리의 산물이다. 이 나라는 지금 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스터 섬의 비극', 2006년 대한민국의 현주소**
정부는 6ha의 경작지를 갖게 될 '농업경영인' 6만 가구만 남겨놓고 나머지 농민들은 농업에서 철수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농정 로드맵 10개년 계획의 핵심이다. 계획대로라면 농업이 GDP의 2%가 되고, 농업 인구는 지금의 절반 수준(4%)으로 줄어든다. 농지보존지역에 해당하는 약 53%의 땅을 '도시자본'을 이용해 농민들로부터 사들이겠다는 농지은행은 이미 올해 업무를 시작됐다.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단 '국토생태'라는 개념 속에서 살펴보자. 현재 국민들이 거주 및 경제활동을 하는 지역은 전 국토의 15% 정도다. 그 중에서 5만 명 이상의 집단거주 지역의 도시화 비율은 95%가 넘는다. 국토의 10% 이상을 도시 및 공업 지역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의 고밀도 개발을 수행한 나라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홍콩 정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현재 도시화 수준도 결코 낮은 게 아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생태계 보존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의 비율을 5대5로 바꾸는 큰 변화 앞에 서 있다.
전 국토의 30%가 산림 생태계만큼 우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대기 정화 및 산소 생성 기능을 담당하던 논 생태계가 아스팔트와 아파트로 전환되는 것이 우리가 보게 될 변화의 핵심이다. 인류가 이 정도의 급격하고 대규모적인 변화를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는 터라, 참여정부의 농정 로드맵이 국토생태와 국민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태학계를 비롯한 학계에서 전망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이 '이스터 섬의 비극'과 같은 붕괴(Collapse)의 모델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이용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농업에서 인구의 4%가 빠져나오는 것도 당장 눈에 띄지는 않을 것이다. 고령화된 우리의 농촌에서 먼저 퇴출되는 고령 농민들은 경제활동인구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에 실업률이 상승하거나 지니계수가 변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의 통계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몰락하고 있는 도시 빈민층과 서민층에 탈농업 인구 4%가 더해진다고 하면 '쪽방 가격', '쪽방 임대 경쟁률', '학교급식 지원 대상 아동 수'과 같은 신문에서 잘 다루지 않은 숫자들에서는 분명히 큰 변화가 생길 게 뻔하다.
***'농촌 어메니티'의 실상…전 국토 누비는 '부동산 디벨로퍼'**
물론 이 정도는 정부도 알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근간이 되는 개념이 '탈농재촌'이다. 농사는 그만두게 하되 계속 사람들이 농촌에 머무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흔히 '농촌 살리기'로 묘사되는 이 개념의 본질은 바로 농촌 전면개발 정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농촌관광' 같은 게 잘 안 되자 이제 정부는 '농촌 어메니티'라는 이름을 내걸고 부동산 개발업체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작년부터 이른바 '디벨로퍼(developer)'라고 불리는, 부동산 기획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을 돌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역의 전면개발 계획을 세워준다며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접근해 알짜배기 땅의 일부를 사들이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화 계획을 세운다. 지자체장들은 번듯한 선거공약을 만들고, 부동산 개발업체는 떼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2006년 한국경제의 대박 가능성은 줄기세포가 아니고 정부가 풀어버린 새로운 농지에 새로운 도시의 그림을 그리는 부동산에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강남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이런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관련 학계의 교수들도 직접 사장을 하거나 기획이사 같은 직함을 맡으면서 '어메니티'라는 이름으로 농지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신용불량자는 자금지원으로 회생시킬 수 있지만…**
이렇게 되면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지자체장과 부동산업체가 이익을 보는 대신 그 피해는 농민, 서민, 다음 세대가 안게 된다. 농민에게 들어가던 보조금은 '농촌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설업자 주머니로 흘러들어간다. 또 부동산에 의해 지탱되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뱀파이어 경제'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고스란히 서민과 다음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농정 로드맵을 현 상황에서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1차산업인 농업에 국민세금으로 지출되는 농업보조금 119조 원을 3차 산업인 건설에 대한 보조금으로 바꾸는 정책이다. 이게 '탈농재촌'의 실체이고, 농업과 농촌 살리기가 '국민경제 뜯어먹기'로 전환된 이유다. 농촌으로 도면 들고 내려간 부동산 디벨로퍼들이 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이 확보한 알짜배기 땅의 시세가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밥상에 오르는 밥 한 공기에 약간 들어가던 보조금마저 떼어내서 건설업 보조금으로 전환시키고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사용될 돈도 역시 지역의 골프장 건설 보조금으로 들어가는 경제 살리기와 농업 살리기 정책은 웃겨도 아주 웃기는 일이다. 문제는 국토생태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이 웃기는 정책 때문에 결국 국토생태계가 복원 불가능한 마지막 지점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신용불량자는 자금을 지원해서 회생시키면 되지만, 국토생태는 복원 가능점을 넘어서면 어지간해서 뒤로 다시 넘어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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