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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잃은 사회, '황우석 기만'의 덫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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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잃은 사회, '황우석 기만'의 덫에 걸리다

[분석] 황우석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기만했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재개를 요구하며 한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한 과학자의 과학연구 재개 문제를 놓고 시민이 분신을 한 것은 세계 초유의 일이다. 도대체 2006년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난 2일 민주사회정책연구원(원장 김윤자 한신대 교수)은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황우석 사태로 보는 한국의 과학과 민주주의'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두 달이 넘게 계속되고 있는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시각들이 제시됐다.

***자기기만의 늪에 빠진 황우석…"불특정 다수 속이기 위해 스스로 변신"**

도대체 황우석 교수는 왜 저렇게 떳떳할까? 또 한 과학자의 '사기극'과 관련해 한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은 왜 발생하게 됐을까? 최종덕 상지대 교수(과학철학)는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바로 '개인적 자기기만'이 '집단적 자기기만'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날 발표한 '기획적 속임과 자발적 속음의 진화발생학적 해부'라는 글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의 변신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렇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을 통해 비로소 상대를 진정으로 기만할 수 있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식의 자기기만은 당연히 가상적인 허상에 지나지 않으나 자기 내부에서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확신감에 의해 유지된다"며 "자기기만 없는 상대기만은 잘 기획된 결과물을 산출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기만은 항상 자기기만을 수반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나아가 "성공적이거나 효율성이 높은 자기기만의 심리적 상황은 집단 전체의 물질적-정신적 대의명분을 전제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권력지향적 자기기만의 경우 애국주의, 민족주의, 집단주의라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등에 업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자기기만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선별적으로 인지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을 자동 폐기하는 심리구조를 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황우석 교수의 그간 행적에서 이런 자기기만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가 과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논문조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하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자기기만에 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확신감'을 내면화했고, 이런 확신감을 난치병 환자 치료("우리는 '인류와 질병치료를 위해 싸우는 군대다")나 애국주의("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이다") 등을 강조하며 유지해 왔다는 것. 황 교수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바꿔치기'를 주장하는 것 역시 최 교수의 분석과 일치한다.

***희망 잃은 사회 '황우석 기만' 덫에 걸려…"붕괴 직전까지 사실에 눈 감을 것"**

최종덕 교수는 "이런 개인의 자기기만은 집단 내 구성원들의 자기기만으로 전염된다"며 "특히 현실의 결핍된 삶의 조건을 보완하고 개선하려는 개인의 희망이 집단의 욕망으로 연결될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자기기만을 집단 속으로 성공적으로 전이시키기 위한 '선동'이 큰 힘을 발휘한다. 황우석 교수의 경우에는 난치병 환자, 애국주의 등을 통해 순수한 대중을 자기기만 전염 단계에 이르게 했다는 것. 최 교수는 "이런 자기기만 전염 단계에서는 대중들 역시 알고 싶은 것만 알려고 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자기기만의 소용돌이에서는 이성 혹은 진리의 나침반 바늘은 결코 옳은 방향을 가리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집단적 자기기만이 대부분 자발적 현상이라는 것도 강조해야 할 대목이다. 최 교수는 "집단적 자기기만 자체가 개인의 자발성을 함축하지만 이런 자발성은 대개는 연습된 결과의 관성일 뿐"이라며 "이런 집단의 자기기만 형성은 대부분 오래 전부터 권력에 의해 익숙해지도록 연습된 결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박정희 독재권력에 대한 향수도 황우석 교수에 의한 집단의 자기기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종덕 교수는 결론적으로 "개인의 자기기만에 집단의 자기기만이 동조하는 이런 현상은 거짓을 변명하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을 보태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며 "큰 폐해를 낳으며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붕괴 이후에 있다. 최 교수는 "붕괴 직전까지 집단의 구성원은 사실에 대해 눈을 감으려 할 가능성이 크지만, 붕괴 이후에도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지향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황우석 교수와 같은 특정인의 자기기만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집단의 비정상적 동조 현상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최 교수의 발표 외에도 강신익 인제대 교수('황우석 사태를 통한 한국의 과학문화 진단), 전방욱 강릉대 교수('황우석 사태로 본 과학보도의 한계와 극복 방안'), 홍성태 상지대 교수('황우석 사태와 한국 사회')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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