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천사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얼굴을 과거를 향해 돌리고 있다.
우리 앞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그는 끊임없이 파편 위에 파편을 쌓으며 이 파편들을 그의 발 앞에 던지고 있는 파국만을 보고 있다. 그는 잠시 머무르면서 죽은 자들을 깨우고 부서진 것들을 맞춰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낙원에서부터 펼쳐진 날개로 불어오는 세찬 폭풍은 너무도 거세어서 천사는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가 없다. 이 폭풍은 천사를 쉴 새 없이 그가 등 돌리고 있는 미래로 몰아가고, 파편 더미는 그의 앞에 하늘에 닿을 듯 쌓인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서
▲ 낙동강 달성보 ⓒ 김흥구 |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골이 파인다. 유유히 흐르던 물길을 가로지르며 댐보다 큰 보(洑)가 만들어진다. 손가락 하나로 조약돌을 튕기며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의 유희처럼 그들은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에 골을 내기 시작한다. 아득하지만 아늑한 곳, 푸르게 남아 있던 유년 시절, 나의 기억까지도.
▲ 낙동강 칠곡보 ⓒ 김흥구 |
강을 따라 걷는다. 내가 보았던, 보고 싶었던 풍경들은 어디에도 없다.
이 강의 미래를 떠올리면서 역사의 천사가 과거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던 이유를 생각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억지스런 폭주도 그가 등돌리고 있던 '미래'였다.
무엇을 위해 아름다운 녹지와 모래에 휘감긴 여울, 그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생명들을 파괴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소중한 것,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의 가치를 깨닫고 후회할 뿐이다. 가장 위대한 잠언은 자연 속에 있다.
강, 그리고 그 주변의 밭을 온통 파헤치는 포클레인 곁에서 텃밭을 일구던 아낙의 한숨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곧 우리의 한숨이 될 것이다.
아낙의 밭에서, 물고기가 죽은 모래밭에서, 한 마리 새가 물마시던 강 옆에서, 나의 추억을 잃어버린 그 강 가에서, 과거로 얼굴을 돌리고 있던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
▲ 낙동강 함안보 ⓒ 김흥구 |
▲ 낙동강 낙단보 ⓒ 김흥구 |
▲ 낙동강 달성보 ⓒ 김흥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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