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건희 회장님, 더 늦기 전에 귀국하십시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건희 회장님, 더 늦기 전에 귀국하십시오"

[기자의 눈] 110일째 미국체류…삼성 안에서도 '실망' 목소리

지난 9월 4일 출국해 4개월이 넘도록, 정확하게는 23일로 110일째 미국에 체류 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작금의 '황우석 배아줄기세포 조작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평소 이건희 회장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의 행위특성으로 '거짓말, 변명,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억지'를 꼽아 왔던 것을 감안하면, 황우석 교수는 이 회장이 말한 '10만 명을 먹여살릴 1명의 천재' 목록에서 일찌감치 삭제됐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황우석 사건으로 안기부 X파일, 기업지배구조 논란, 금산법 개정안 등 삼성의 뒷다리를 잡던 사안들이 잠잠해져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황우석 광풍'이 허위에 근거한 거품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한국은 다시 '삼성공화국'의 현실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21, 22일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삼성 애니콜, 고비사막에서 인명을 구하다', '일본 언론, 일본엔 왜 이건희 회장 같은 경영자 없나', '에버랜드 CB, 삼성 비서실 관여', '호남 최대폭설…삼성전자 가동 중단' 등의 제목을 달아 '삼성공화국 국민들이 알아야 할 소식들'을 전했다.

다른 한편으론 22일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에 이건희 회장이 불참하자 호사가들 사이에 '이건희 위독설', '삼성 경영권 승계설' 등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이건희 회장은 각계에 보낸 연하장에 "지난 한 해는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미래와 희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보람찬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2005년이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이 회장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그까이 꺼' 다 괜찮다는데 왜 못 오나?**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 내용이 폭로된 X파일 사건 수사, 삼성 애버랜드 전환사채(CB) 변칙증여,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문제,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 씨의 자살, 이 회장의 폐암 재발 가능성 등 2005년은 삼성에 악재가 연속된 해였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측근들 가운데 누구도 선뜻 그의 귀국을 권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측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X파일 사건은 무혐의 처리되었고 금산법 개정안의 연내 입법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물론 삼성 에버랜드 CB 변칙증여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 상황이 삼성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막내딸의 자살은 이 회장 개인에게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한 사건이었겠지만, 그는 이미 "개인적인 아픔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 없다"며 경영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국민여론이 정부와 검찰의 '삼성 봐주기'를 비판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중국의 사막 한 가운데서 인명을 구하는 데 공을 세운 일명 '이건희 폰'을 자랑스러워하고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의 낸드플래시 카드 기술에 뿌듯해하는 '사외 삼성맨'이다.

그런데도 이 회장이 삼성공화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도, 검찰도, 국민도 '그까이 꺼 다 괜찮다'며 그의 과오들에 면죄부를 주고 '어서 돌아와 세계 속의 삼성, 세계 속의 한국을 이끌어 달라'는데도 왜 그는 돌아오지 않는 걸까?

삼성 관계자도 모른다는데, 기자가 이 회장의 깊은 심중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기자로서는 다만 2005년이 이 회장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게 아니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이었던 건 아닌지 추측해본다. 고통스러운 2005년이 아직 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그 한복판으로 들어와 자신과 삼성이 책임져야 할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기엔 그의 마음이 너무 쇠약해진 것은 아닌지….

분명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해외 체류가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그에게서 느껴졌던 당당한 재계 황제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반대로 고독하고 울적한 은둔자의 이미지만 짙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슈퍼스타 CEO'와 '고단했던 국민의 삶'**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일본 전자기업의 위기'라는 특집기사에서 "일본 전자업계는 삼성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왜 우리에게는 이건희 회장과 같은 경영자가 없는 것일까"라고 한탄했다.

이 내용을 그대로 따와 보도한 일부 한국 언론들의 속내야 뻔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우리 시대 기업경영자의 한 전형을 제시하는 슈퍼스타 CEO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슈퍼스타 CEO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각은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다. 이 시대의 전형적인 기업경영자를 두고 한편에서는 '악인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극히 훌륭한 분'으로 떠받든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중성을 개탄한다. 이런 이들에게는 장학사업, 자선사업 등을 하며 겉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내세우지만 뒤로는 노조탄압, 편법상속 등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이 회장이 한국사회를 망가뜨리는 원흉 같이 보인다.

그러나 '재벌=나쁜 놈'이라는 공식은 여러 모로 위험하다. 이런 공식 속에서는 이 회장과 삼성이 한국 사회와 경제의 시스템과 규칙들 전반에 대해 응당 져야 할 책임들이 사라져버린다. 본디 '나쁜 놈'이라면 그가 책임져야 할 것이 없다.

그런가 하면 "괜한 시기심으로 잘 하고 있는 삼성의 발목이나 잡지 말라"는 주장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이 우리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이 잘 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자동적으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의 발전과 우리나라의 발전이 상생의 관계로 구축되려면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삼성이 어디 이건희 회장만의 것이던가. 삼성의 반세기 역사에는 한국전쟁, 개발독재, 민주화 투쟁, IMF 경제위기 등 역사의 수많은 고비고비를 힘겹게 넘어 온 한국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 있다.

***"진정 슈퍼스타라면 과거 반칙행위의 부작용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이건희 회장은 이미 "나는 현재 가진 재산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로도 자손의 3~4대까지 먹고 살 수 있다"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이 단지 부를 축적하는 것만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삼성 기업이라는 수단을 통해 비즈니스를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궁극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기자는 미국에 있는 이건희 회장과 전화연결이 된다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건희 회장님, 정말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우선,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십시오. 돌아와서 '존경할만한 경영자 1위'로서 내우외환에 빠진 삼성을 늠름하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업 지도자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십시오.

노조탄압, 편법상속, 기형적인 기업지배구조, 삼성자동차 부채 등 그동안의 반칙행위에서 초래된 부작용들을 털어버리고 진정한 '재계의 청와대 주인'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삼성에 대한 배신은 대한민국에 대한 배신'이라고 믿고 있는 삼성 지지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어쩌면 공허하달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의 가식을 넘어 한국 사회와 경제계의 진정한 슈퍼스타로 우뚝 서시기 바랍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 이렇게 오래도록 해외에 체류하시는 데 대해 삼성그룹 안에서도 '국민에게 무책임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