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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검투사'가 돼 구경거리가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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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검투사'가 돼 구경거리가 되는 세상"

[강연] 불확실한 세상, '정치'와 '과학'엔 무슨 일이?

'불확실성'. 이보다 21세기를 설명하는데 적합한 열쇳말이 또 있을까. 2008년 말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의 여파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와 국제 분쟁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나타내는 불확실성의 징표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정국을 긴장시킨 천안함 침몰, 4대강 사업 그리고 지방선거의 '극적 반전'까지. 이렇게 '불확실성'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주요 열쇳말이 됐다.

정치·경제·문화·생태·과학기술 등 다섯 분야의 지식인 10명이 공동 집필한 <불확실한 세상>(박성민·조효제·박종현·최정규·노명우·이창익·박상표·강양구·김재영·김명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불확실성'이란 열쇳말을 공통 주제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관련 기사 : 세상을 지배하는 단 한 가지 '확실한' 원리는…)

이 책의 공동 저자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와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이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독자와 만나 '불확실한 세상'을 놓고 직접 의견을 주고받았다.

디지털 혁명과 '정치의 몰락'

박성민 대표는 우리 시대의 '불확실성의 원인을 '정치의 몰락'에서 찾았다. 정치의 몰락은 바로 '디지털 혁명'이라는 새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박 대표는 "디지털 혁명 이후, 그간 사회를 지탱하던 체제가 무너졌다. 과거 신학과 인문학이 세상을 지배하는 담론이었다면, 이제 이들은 밑바닥 신세가 됐고 과거 천덕꾸러기였던 과학과 기술이 꼭대기에 올라섰다"며 "훗날 역사학자들은 1990년대를 '빌 클린턴의 시대'가 아닌, '빌 게이츠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서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정치 영역에서도 '비주류의 승리'를 초래했다"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사례를 꼽았다. 그는 "40대 혼혈인 오바마 의원이 미국 사회의 '주류 중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맞붙어 승리했다는 것은, 디지털 혁명 이후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박성민 대표는 "다수당의 다수파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 다수당의 소수파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 소수당의 다수파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마침내 소수당의 소수파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어떤 정치학 교과서도 이것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박 대표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정치란, 돈·조직·언론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의 현실은 3선, 4선 의원이 될수록, 즉 권력이 많아질수록 대권과 멀어진다"며 "초선 의원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안철수 씨 같은 과학기술자가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박성민 대표는 '인터넷의 등장'을 비주류의 승리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는 "앤디 워홀은 15분이면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1980년대 이야기"라며 "이제 1분이면 가능하다. 미국 대통령이 신발에 얻어맞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고 말했다.

인터넷의 등장은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초래했지만, 이는 정치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중요한 원인다. 박 대표는 "과거 원형극장에서 왕과 귀족의 구경거리가 됐던 사람은 노예였지만, 이제는 '황제'들이 칼을 들고 싸우고, 대중이 이를 지켜보며 즐기는 세상이 됐다"며 "초등학생이 대통령에게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말하는 세상, 즉 대중이 통치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의 힘을 빌려 부상한 정치인에게도, '디지털 혁명'은 양날의 칼이 될 수밖에 없다. 박성민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내 '비주류'에서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될 수 있었지만, 정치인을 24시간 감시하는 디지털 혁명의 힘으로 언제든 다시 발목을 잡힐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최근 들어서 아무리 인기가 높았던 정권도 금세 지지율이 급락해 조기 몰락을 겪는 것은 그 증거"라고 설명했다.

박성민 대표는 "이는 곧 정치의 몰락, 정치인의 몰락, 정치 철학의 몰락을 의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의 주장은 예언처럼 곧바로 맞아떨어졌다. 강연회가 열린 바로 다음날(2일) 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전격적으로 사임했다. 2009년 9월 일본 정치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며 화려하게 등장한 지 8개월 만에 '몰락'한 것이다.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20대에 달렸다

▲ <불확실한 세상>(박성민·조효제·박종현·최정규·노명우·이창익·박상표·강양구·김재영·김명진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그렇다면, 이런 정치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할 가능성은 없는가? 박성민 대표는 20대와 같은 디지털 혁명의 최첨단에 선 세대가 디지털 세대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 때, 비로소 이런 불확실성이 해소될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민 대표는 "1960년 3월 15일 부정 선거가 있었고 이를 참지 못한 고등학생, 대학생이 거리로 나와서 4·19 혁명의 중심이 되었다"며 "그로부터 25년 뒤인 1985년 2·12 총선 때도 대학생이 신민당 바람의 중심이 되었고 결국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1960년, 1985년 변화를 이끌었던 세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며 "2010년은 또 그로부터 25년이 되는 시점인데, 내일(2일) 선거에서 혹은 앞으로 몇 년 새에 20대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20대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자기 권리를 찾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지 않는다"면서 "디지털 혁명의 중심에 선 20대가 왜 새로운 세대에 걸맞는 자기 주장 찾기에 나서지 못하는지 정말로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박성민 대표의 발언이 나온 지 채 하루도 안 돼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예상을 깨고 승리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선거 결과에는 숨어 있는 야당 표심, 특히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조직된 20~30대의 적극적인 투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바야흐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것일까?

'실험식 밖으로 나온' 과학, 그 불확실성의 대안은?

책의 과학 분야를 집필한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은 '실험실 밖으로 나온'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을 강조했다.

김명진 운영위원은 "흔히 과학은 다른 지식 체계와 달리,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 같은 통념은 1970년대부터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과학 지식의 형성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들이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과학을 떠받치는 '확고한 토대'에 물음표를 달기 시작한 것.

김 운영위원은 "이러한 과학 지식의 불확실성은 과학이 실험실 바깥으로 나올 때, 즉 과학이 정책 결정의 근거로 활용되거나 공학적으로 응용돼 새로운 인공물을 만들어낼 때 더욱 커진다"면서 유전자 변형 식품과 우주 왕복선 챌리저 호의 폭발 사고를 그 사례로 제시했다.

▲ 김명진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이렇게 '실험식 밖으로 나온', 따라서 불확실성을 더욱 내재한 과학기술이, 그것에 무지한 일반인과 만나는 접점이 넓어지면서 불확실성은 더욱더 커진다. 김 운영위원은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은 실험실 과학에 비해 사람들의 눈에 훨씬 잘 띄게 되지만, 불확실성은 도리어 커져 과학의 확실성에 기대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충돌하는 역설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김명진 운영위원은 "앞으로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한다고 해서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도리어 "과학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확신을 접고, 과학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전문가들의 자문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보다, 일반 시민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열어야 한다"며 '과학 기술의 민주화'를 강조했다. 유전자 변형 식품·지구 온난화가 초래하는 기후 변화·나노 기술 등, 전 지구적으로 쟁점이 되는 사안을 놓고 더 이상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책 결정에 관한 덴마크에서 시작된 '합의회의'를 소개하며 "전문가와 시민이 머리를 맞대고 과학 기술의 민감한 사안을 놓고 토론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키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면서 "불행히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제도를 통해서 시민의 의견을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할 통로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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