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통계청장이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된 지 3개월만에 마침내 '통계 주도권'을 둘러싸고 통계청과 재경부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통계청 "공식발표 직전·직후에 재경부가 나서지 말라"**
통계청 김민경 차장은 1일 "경제 관련 지표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있기 직전이나 직후에 재정경제부가 예상수치를 언급하거나 분석자료를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경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 산업활동 동향 등과 관련한 통계가 나오기도 전에 재경부가 미리 예상수치를 언급하거나 '설익은 분석자료'를 내놓아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현재 통계청은 통계의 작성과 공표 과정에서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지 않는 등 완전한 중립성을 지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중립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통계청이 차관급 기관으로 승격됐다고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며 발끈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통계청은 수치를 발표하고 재경부는 분석과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통계청의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사실 통계청이 차관급 기관으로 승격되기 전인 지난해 2월부터 '사전 자료요청 제도'가 폐지돼 재경부는 통계 원자료에 대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계청의 발표 직후에 관련 분석자료를 내놓는 것까지 '부당한 간섭'으로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재경부의 불만이다.
그러나 이날 김민경 차장의 발언이 나온 직접적 계기는 재경부가 먼저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재경부측도 할 말이 없는 눈치다.
지난달 29일 통계청이 '10월 산업활동 동향'을 통해 산업생산 증가율이 8.0%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재경부의 한 고위간부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월 산업생산 증가율이 7%를 넘을 것 같지 않다'고 '예상치'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차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통계의 중립성'을 지키려는 '원론적인 주장'이라거나 '소신 있는 통계관료로서 해야 할 말을 했다'는 평가들이 주조를 이룬다. 지난 36년간 통계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해 온 김 차장은 지난 8월에 차관청으로 승격된 통계청의 초대 차장으로 승진 기용됐으며 김경임 주 튀니지 대사 등과 함께 한국의 여성 1급 공무원 3명 가운데 1명이다.
***한국은행과 재경부 간 갈등의 재판 돼서야**
다른 한편에서는 "통계청이 재경부의 부속기관쯤으로 여겨지던 지난해까지만 해도 감히 하기 어려운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통계청의 공식발표 전에 재경부가 임의로 예상치를 밝히는 것은 시장에 대해 통계에 대한 혼란과 불신을 가져오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타당하지만, 경제정책의 총괄부서인 재경부가 통계에 대해 분석자료를 내놓는 것까지 '간섭'으로 몰아붙인 것은 통계청이 너무 앞서간 것이라는 게 재경부 쪽의 비판이다.
경제지표에 대한 시장 또는 언론의 지나친 비관적 전망으로 경제심리를 위축되는 폐해도 있는 만큼 재경부가 정부 차원의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기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현재 통계청이 산업, 서비스업, 고용 등에 대해 월 단위 및 분기 단위의 통계를 발표하면 당일에 즉석 분석자료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김민경 차장은 "산업활동 동향, 서비스업활동 동향 등에 대한 통계청 발표 직후에 재경부가 정부의 의견을 담은 분석자료를 내놓는 것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굳이 견해를 내놓고 싶다면 이런 통계들을 묶어 종합적으로 분석하거나 정기적 발간물인 '그린북' 에 담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번 논란을 통해 한국은행과 재경부 간의 해묵은 갈등을 연상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오래 전부터 한국은행은 '금리 결정권'을 둘러싸고 재경부와 힘겨루기로 갈등을 빚어 왔다.
매달 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 재경부에서 직간접적으로 '금리 결정의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발언들을 흘려 시장에 혼란을 준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통계청과 재경부의 통계 주도권 갈등을 계기로 재경부가 통계 결정권에 대한 통계청의 위상을 최대한 존중하고 통계청은 시장에 신뢰을 주는 분석을 내놓을 수 있도록 두 기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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