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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메르켈'호, 좌우협공에 좌초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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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메르켈'호, 좌우협공에 좌초할 거라고?"

[기고] 독일 '대연정'의 출범을 지켜보며

세계화의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새로운 국민경제의 좌표를 찾아 전 사회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현재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과제다. 기존의 사회경제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정치적 시도들이 제도 개혁이나 정책 혁신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고, 그러한 개혁 정치의 게임의 장에는 '사회 협약'이니 '대연정'이니 하는 새로운 정치 기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지하듯 최근 독일에서는 지난 9월의 조기 총선이 낳은 난해한 선거 결과를 기반으로 사회민주당(SPD)과 기독교민주당(CDU)의 두 국민 정당이 서로 한발씩 양보하며 대연정 정부를 출범시켰다. 연정 논의 중반에 발생한 사민당 내부의 분란으로 당시 만들어지던 정국 구도에 다소 수정을 겪게 되었지만 초기에 형성했던 연정의 큰 틀과 운영 방식은 별 다른 변화 없이 유지된 채 '합의의 나라'답게 대연정의 출범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논란을 일으키며 사민당의 신임 사무총장으로 지명되었던 젊은 여성 정치가 나알레스는 결국 당 대회에서 경선 출마에 기권을 했고 총재 뮌터페링은 사민당의 당수직을 내놓는 대신 새 정부의 노동사회부 장관과 부총리는 계속 맡기로 했다. 사민당의 내분을 보며 덩달아 경제 장관직을 고사한 바이에른 주 주지사 슈토이버는 베를린 입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며 발언을 자제하던 기민당의 여성 당수 메르켈은 결국 큰 실수 없이 총리의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결국 새 정부의 성공적인 출범이라고 하는 대의 하에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들이 모두 부분적으로 각자의 정체성 훼손을 감내하는 선택을 했으며 이는 '대연정'이라고 하는 흔치 않은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상황윤리'로 받아들여졌다. 부가가치세를 올리지 않겠다던 정당(사민당)이나, 딱 2%만 올리겠다던 정당(기민당)이나 공동 집권을 하자마자 3%의 부가가치세 인상 불가피론을 펴면서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그래도 양호한 수준이라고 변론을 펴고 있지만, 국민적 반발은 그리 심하지 않다.

***좌우 양쪽에서 공격받는 '대연정'**

대체로 대연정의 성립과 더불어 제출된 정국운영 프로그램은 지난 시기 적녹연정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안인 '아젠다 2010'의 내용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데군데 각 당의 입장을 절충하거나 교환한 듯한 모습이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 노동 부문 개혁안을 살펴보면, 해고 규제 완화와 관련해 기존에 6개월이던 '견습기간(Probezeit)'의 상한선을 최고 2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는 사용자들이 신규 채용자에 대한 해고 규제의 부담을 더 적게 지도록 한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대체로 기민당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한 듯한 모습이다. 그 대신 기민당이 계속 강조해 왔던, '단체교섭 자율주의 원칙'을 수정하는 노동법 개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노동조합 앞에서 사민당의 체면을 유지시켜 주고자 한 노력이 보이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아젠다 2010' 자체가 당초 좌우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던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대연정의 집권 프로그램 역시 좌우 모두로부터의 공격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상황이다.

대연정의 개혁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우파들은 신정부 개혁안의 함량 미달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영미권의 보수언론들의 입장이 그러한데 이들은 기민당과 신임 총리 메르켈이 대연정의 덫에 걸려 더욱 과감한 개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신정부의 개혁 퍼포먼스도 그리 신통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좌우의 대결이 그들 사회에서 보다 훨씬 좌측에서 균형점이 찾아져 있는 독일 사회의 수많은 제도적 기제들의 유지는 그들의 눈에 한낱 좌익 보수주의로 걱정스럽게 비춰질 뿐이다. 당초 '아젠다 2010'에 담긴 '합리적 차선'의 의미를 곱씹는 일은 일단 뒷전이다.

반면, 독일의 신좌파 정당이나 전통적인 사회주의자들에게 '아젠다 2010'과 신정부의 정국운영 프로그램은 공히 신자유주의와 복지 축소를 지향하는 반민중적인 프로그램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또 다른 시각에서 대연정 정부를 향해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성과를 의심한다. 독일 사회의 양극화 경향을 우려하며 보다 강력한 부의 재분배를 위해 기존의 사회보장 시스템의 유지를 전제로 재구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재구성의 비전과 방안에 대한 묘책은 그리 뚜렷하지 않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로**

한편 프로그램의 성격과 무관하게 어제의 정적들이 오늘의 국정 운영의 파트너가 되어 있는 모습은 정국의 양상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다.

애당초 지난 여름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며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의 승부수를 띄운 이유는 상원의회(Bundesrat)를 거의 모조리 차지한 기민당이 사사건건 제기할 비토를 뚫고 나갈 비전이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슈뢰더가 직접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의회 해산이 대연정을 초래해 마치 그가 대연정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린 듯한 꼴이 되었다.

이제 독일의 TV 토론회에서는 기존에 사민당과 함께 여당의 입장에서 방어정치를 펴던 녹색당이 다른 편 야당 석으로 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반면, 야당의 입장에서 공격을 하던 기민당이 사민당과 함께 여당의 일원으로 국민들에게 양해와 인내를 구하고 있는 어색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정국의 무게는 대연정의 주체들 쪽으로 강하게 옮아가 있는 상태다.

정치가들의 말잔치나 정국의 구도야 어떻든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제발 신정부만큼은 벌써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400만~500만 명 수준의 만성 실업난을 해결해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그 동안 누려온 사회적 안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지켜주기를 바라면서 대연정의 행보를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분위기다.

***메르켈 '대연정', 순항할까?**

분명 대연정의 개혁 퍼포먼스를 미리부터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정치가 '프로그램'과 '리더십'의 양날개를 필요로 하는 예술임을 염두에 두었을 때 유사한 프로그램이더라도 새로운 정국구도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의 교체로 인해 새로운 추진력을 받으며 다른 결과를 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 보고 싶다.

정치인으로서 겨우 15년의 짧은 배경을 갖고 있는 대연정 수장 메르켈은 여성과 동독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독일의 거대 보수당의 당수직에까지 올라 내부의 경쟁자들과 온건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헬무트 콜 이후 그의 후광에만 기대고 있었던 자신의 당을 성공적으로 리드했다. 또 쉽지 않았던 지난 두 달간의 정부출범 과정도 결과적으로 깔끔히 매듭지으며 자신의 통합 지향적 리더십을 과시했다.

그녀의 유연한 정국 운영이 개혁의 진통을 세심히 헤아리면서 사회경제적으로 균형 잡힌 퍼포먼스를 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대연정의 내부모순을 간과한 채 짧은 정치 이력과 함께 근래에 혜성같이 급성장한 이 여성 정치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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