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모터스(GM)가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GM이 일본 도요타가 주도하는 하이브리드차 전략 대신 수소 연료전지차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시장의 싸늘한 반응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최근 'GM의 위기'가 이런 경영 전략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경제학 박사)은 이런 GM의 실패가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주도하는 에너지 정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미국의 예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수소 연료전지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가 하면 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소에 원자력 발전 확대를 전제로 한 '수소 경제' 비전을 만들 것을 주문해 왔기 때문이다.
우석훈 실장은 또 미국발 '수소 경제'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노무현 정부가 자칫하면 'GM의 위기'로 도약의 기회가 생긴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은 언제든지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우 실장은 1990년대 후반 현대자동차 관련 연구소에서 수년간 자동차 산업을 연구한 경험이 있다. <편집자>
***GM의 경영 위기, 어디서 비롯됐는가**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종종 "경마장 가는 길"에 그들의 일터를 비유하곤 한다.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모델 하나만 제대로 출시되면 그 때까지의 부진을 털고 새로 출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이유로 자동차 회사들은 경영이 어려워도 과감하게 사업을 접기가 어렵다. 푸조가 이른바 '세컨 카 임팩트'를 만들면서 기사회생했다고, 기아는 봉고차의 신화를 이어갈 카니발 출시를 눈앞에 두고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좋은 예들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아 죽이기'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이른바 '포디즘'을 만들어낸 포드를 제치고 제너럴 모터스(GM)는 1960년대 이후 자동차 산업의 대부이며 또한 스스로 '기준'이었던 회사다. 이제 창사 100주년을 앞에 둔 세계 1위의 자동차 업체 GM이 도산까지 갈 수 있는 경영위기에 내몰려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의 이유는 무엇이고,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부시 체계와 '에너지 위원회'**
부시 대통령이 첫 임기가 시작하면서 띄운 몇 가지 위원회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하지 않았던 위원회가 바로 에너지위원회라는 것이다. 이 에너지위원회의 의장이 바로 부통령인 딕 체니였다.
나중에 이 위원회가 구상하는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위원회는 2020년 이후 아랍 지역에 지나치게 편중된 석유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 기후변화협약 이행 체계인 교토의정서에 미국은 가입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소위 알라스카 드릴링(Alaska drilling)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북극 지역의 유전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것 정도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회의 잠정적 결정 중 주목할 것은 원자력의 비중을 늘려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결정은 '수소 에너지'라는 형태로 외부에 나타났다. 메탄, 즉 천연가스를 전기로 분해해 이 수소를 자동차에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즉 원자력 발전을 확장해서 발생한 막대한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메탄, 알콜을 직접 분해함으로써 수소를 얻어내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연료전지에 대한 몇 가지 흐름**
아폴로 호에 안전한 에너지원을 공급하기 위해 개발된 연료전지는 발전소, 가정용 소형 복합발전, 핸드폰이나 노트북용 소형 연료전지, 자동차용 연료전지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자동차용 연료전지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회사는 미국과 캐나다가 공동출자한 뒤 조세를 줄이기 위해 캐나다에 설치한 발라드라는 회사다.
자동차에서의 연료전지는 기술적 논의가 몇 가지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는 수소를 자동차 내에서 직접 분해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분해한 다음에 수소만 외부에서 주입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자동차에 도시가스나 LPG 아니면 알콜 같은 것을 주입해줄 것인가 아니면 이미 분해된 수소를 주입할 것인가의 차이다. 이 때 후자의 경우는 엄청난 규모의 대안 에너지 발전원을 확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원자력 발전으로 수소를 분해하게 된다.
유럽은 경유차 단계를 10년 정도 거치다가 단계적으로 자동차에서 직접 분해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겠다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 단계에서 지나치게 연료전지를 앞당기면 원자력 발전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점이 생겨날 뿐더러 여러 가지 부차적인 경제적 문제가 생겨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수소 분해공장과 함께 수소 저장소 그리고 수소 주유소라는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 방식은 기술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유럽과 미국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미국 자동차업계의 선택과 도요타의 도전**
GM을 포함한 미국 자동차업계는 산업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부시 행정부의 결정에 따랐다. 그들이 연구개발(R&D)의 주력을 연료전지에 투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이 방향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원래의 경유차를 거쳐 연료전지차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그냥 추진하였다. 이론적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는 경유차 단계를 거치지 않는 기술적 모험을 선택한 것인데 원자력 문제와 수소 저장소와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는 어차피 정부에서 해줄 것이므로 GM과 포드 등의 회사들은 그야말로 세계화된 자동차 시장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한 셈이다.
도요타가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도요타는 현실적으로 수소를 직접 분해하는 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할 세계적 단계가 아닌 상태에서 경유차를 기반으로 전기 에너지를 부가적으로 덧붙인 하이브리드차의 상용화를 앞당겨서 시장에 출시해버렸다. 이게 2004년 말 세계시장 전망에서 자동차 전문가들이 과연 2005년도에 GM이 도요타의 도전을 물리치고 계속해서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 배경이다.
1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보면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주요 관전 포인트는 과연 GM의 업계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이브리드 차를 내세운 도요타가 세계 1위의 자리를 드디어 차지하게 될 것인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변화와 GM의 몰락**
2005년도의 세계 에너지 시장은 사람들의 상상보다 고유가를 더 오랫동안 유지했다. 이라크발 고유가 정국은 사실상 미국이 만들어낸 것인데, 이게 호사가들이 얘기하듯 미국 정부가 에너지 확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세계 전략의 일환인지 쉽게 얘기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올해의 고유가가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세계 최저의 에너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 시장은 3배 가량의 에너지 상승을 감당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리터 당 3000~4000원의 상승에 그쳤지만 동일한 원가 상승에서도 에너지세가 저렴한 미국은 몇 배의 상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는 고전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깨고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시장에 진입했다. 혼다에 이어 포드마저 하이브리드차로 전략을 바꾼 상태에서 GM도 2005년 초 연료전지차 개발의 희망을 일단 접고 하이브리드차 개발로 전술 수정을 했다. 하지만 자동차가 그렇게 1년 만에 개발되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자동차 시장의 묘미가 있다.
이 상황에서 결정타가 된 것은 각 주정부에서 시행하기 시작한 하이브리드차 보조금 정책이다. 가솔린이나 디젤차에 비해서 고가인 하이브리드차로 넘어간 소비자들이 고유가 국면에서 줄기차게 보조금을 요구했고, 결국 자동차 매입의 부담을 '환경 개선'의 이름으로 사회적으로 처리하자는 명분 앞에 보조금 정책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었다. 바로 이 때 GM의 경영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 100주년을 맞으면서 불과 1년 만에 거함 GM의 몰락을 앞두고 사람들은 이제 GM이 미국 정부의 적극 지원을 받으면서 기사회생할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는 비행기와 달리 공공재가 아니다"는 기존의 기조 하에서 결국 몰락할 것인가를 놓고 전망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정 회사를 두고 인격적인 묘사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어쨌든 GM은 오너가 고용한 기획통들이 전권을 행사하는 포드에 비하면 개별 엔지니어와 의사 결정 시스템이 존중되는 약간은 민주주의에 가까운 선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국민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국민 기업' 혹은 '대중들의 기업'과 같은 이미지를 GM이 좀 더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GM의 몰락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원자력으로 수소를 대량 추출하고 이 수소로 자동차를 운행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원대한 소위 '수소 경제 전략'과 약간은 우연적일 수도 있는 중동 석유시장에 대한 대외정책이 2005년 미국 사회라는 공간에서 결합되면서 GM이 도산할 것인가 아니면 기사회생할 것인가를 점쳐야 하는 상황이 온 셈이다. 내년에 연료전지가 상용화될 가능성은 0%인데다, 미국식의 원자력형 수소엔진 차량 방식을 눈치 빠른 도요타나 신중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따라갈 가능성은 더욱 없어 보인다.
차라리 경유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몇 년을 버티고, 그 동안에 하이브리드차를 개선하면서 장기적으로 도시가스를 사용할 수 있는 연료전지 차량을 개발하는 것이 장기적 승부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주유소에서 약간의 변경으로 그냥 연료전지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하면 역시 장기적으로 부시 행정부가 결정한 수소 자동차는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올해 자동차 시장은 전부 어려웠고, 그래서 도요타를 포함한 나머지 유럽 자동차 회사들도 고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은 미국의 "덩치 큰 대형 자동차" 시장에 던져진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에게도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 정책이 다 옳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이 하는 건 다 틀린 것도 아니다. 이 시점에서 내가 GM과 도요타의 자동차 전쟁을 1년 이상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던 이유는 작년에 우리 정부가 선택한 한 가지 결정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의 선택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올해 일산에서 열렸던, 사람은 붐볐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자동차 박람회를 통해서였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미국 방식을 채택한 연료전지 시범차량을 소개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차에 시승하면서 작지 않은 지원을 약속했다. '수소경제'라는 말은 멋있지만, 바로 이 방식을 장기대안으로 선택한 GM이 파산 위기에 내몰린 지금 자동차의 장기 연구개발(R&D) 로드맵에 대한 분명한 점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에너지 산업의 선거로비 자금의 창구 역할을 했던 체니 부통령의 선택이 틀렸던 것인데, 이 작은 선택의 실수가 100년을 버텨 온 GM이라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업체를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현 정부는 GM의 방식이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해 아마 같은 기술을 채택하였을 것이지만 이미 GM 모델이 실패한 지금 분명한 검토가 다시 필요하다.
"경마장 가는 길"과 같은 세계 자동차 산업의 개편 과정에서 수소 경제 모델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현 정부를 만들어준 것이 원자력 산업도 아니라서 미국 정부와는 출생부터 성격이 다른 이 정부가 엄청나게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하는 미국식 연료전지 방식을 기술개발 목표로 선택한 것은 좀 이상하다. 사실 GM의 경영 위기가 현대에게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아직은 무리하지만 서둘러 베르나 하이브리드차 모델을 시장에 출시하려는 현대의 전략적 선택이 아주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예기치 않았던 고유가 정국이 만들어낸 이 혼란 속에서 일부 기업은 죽고 일부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정부는 GM 사태를 잘 보면서 원자력이 제일 싸고 또 '수소경제'는 미래의 산업이라는 기존의 입장만을 고수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이 공공의 이익과 기업에 같이 도움이 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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