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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브스크, 동아시아 족들의 영혼이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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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브스크, 동아시아 족들의 영혼이 떠돌다

김봉준의 '유라시아 문화기행' <6> 하바롭스크

얼마나 드넓으냐, 사방이 탁 트였다.
광활한 대지
시원한 공기
이게 얼마만이냐.
사는 게 모두 턱턱 막힌 반도 땅,
그것도 모자라 대륙으로 가는 길 콱 막힌 역사의 섬에 갇혔다.
이렇게 말뚝 하나 없이 탁 트인 대지가
땅 인줄 모르고 살았네!

하늘 땅 서로 마주하며
막힘없이 흐른다.
하늘과 땅 사이 까마귀는 나르고
소들 한가롭게 풀을 뜯고
거위는 목청껏 소리 지르고 우리도 웃으며 달린다.
저 대지 사이를 보라, 얼마나 드넓더냐.
하늘과 땅, 자연과 나, 너와 나, 나와 나, 삶과 죽음 사이가
원래는 얼마나 드넓으냐!
얼마나 멀지 않더냐!

하바롭스크는 우스리스크에서 620키로미터를 달려야 하니까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더 먼 길입니다. 북으로 오르는 먼 길을 한나절 달렸습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숲 아니면 초원이 보일 뿐 집은 간혹 가다가 하나 둘입니다. 나무들 수종이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온대림 상수리과 나무들이 주종을 이룹니다. 길게 누운 대지에 거친 차도를 따라 달리는 대륙의 푸른 여름은 하염없습니다. 오랜 도시 생활에 답답했던 내 마음은 탁 트인 기분입니다. 우리가 달리는 자동차 길 옆으로 러시아 농부들이 말을 타고 지나갑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까 멋진 폼을 보여주려는지 갑자기 말을 세차게 몰았습니다. 말이 우리 차 속도 70킬로보다 더 빠르게 달렸습니다. 야성 넘치는 말과 농부의 모습을 담기위해 연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말도 차도 카메라도 흔들립니다. 여러 장을 찍은 거 같은데 건질만한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가까스로 살린 사진 한 장 올립니다.

***뒤섞인 역사의 도시 하바롭스크**

꼭 가고 싶었습니다. 하바롭스크는 이상하게 끌리던 곳입니다. 동아시아의 역사가 속 깊은 곳에 숨쉬는 듯 합니다. 고조선 때는 읍루 숙신이 살던 곳, 광개토대왕이 숙신을 병합하였으니 고구려의 변방이던 곳입니다. 아무르강의 신누런 황토물결 따라, 시베리아대륙의 바람결 따라 동아시아족- 고아시아족과 신아시아족의 영혼들이 떠도는 것 같아 윙윙 귓전을 맴돕니다. 17세기 엘로페이 하바롭프 탐험자가 모피사냥의 천국이라고 소개했으나, 동아시아 종족들의 영혼은 이때부터 러시아제국에 의해 유린되기 시작했습니다. 흡사 아메리카 인디안들이 서방 제국에 의해 침략당한 것과 비슷합니다. 문명을 전해준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가지고 실은 모피와 금광과, 목재와 땅과 노동력을 착취하러 들어 온 것입니다. 1858년 청나라가 허약해 진 틈에 국경조약을 체결하고 제13시베리아 국경수비대가 진격하여 확보한 땅입니다.

이로써 동아시아족들의 드러난 역사는 종말을 고합니다. 나나이(여진), 에벤키(말갈), 만주, 조선, 브리야트, 울치, 우데헤, 네기달, 캄차키, 아쿠트, 추쿠치, 꺄랴끼, 알레우트, 이뗄리메느....... . 종족 이름도 우리에게는 낯설어 졌지만 사실은 우리와 비슷한 용모에 비슷한 피부 색깔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수만 수천년을 이웃하며 살아온 동아시아족들입니다. 배달족은 기원전 1~2만년전에 바이칼 부근인지 알타이 산맥 어디에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시베리아 중원에서 동으로 다시 남으로 흘러들어옵니다. 한쪽은 홍산지역과 요동을 거쳐 서해안을 따라 남도로 들어오고 또 한 쪽은 아무르강을 따라 동으로 오다가 연해주를 거처 동해안으로 해서 김해로 들어왔다고 고고학계에서는 봅니다. 무문토기와 줄무늬 토기의 이동경로로 추론합니다. 김해의 패총과 울주군 암각화에서 나오는 유물이 시베리아 북방의 고아시아족문화와 동일한 문화권입니다. 동해루트로 들어온 우리 조상은 일부가 연해주와 북만주에 머물면서 후에 부여와 고구려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하바롭스크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키로를 달리면 아무르강변에 시까취 알랸의 암각화 유적지가 나옵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한국에 남아있는 울주군 암각화와 동시대입니다. 같은 고아시아족의 문화권으로 고고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슴과 사람과 별자리와 가면이 그려진 암각화에서 고아시아문화의 시원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유전자분석 방법으로 DNA 검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혈연적 근친성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언어문화, 종교관, 통과의례 풍속에 이르기까지 범동아시아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동으로 흘러온 아무르강과 만주에서 북으로 흘러온 우쑤리 강이 수많은 지류강을 합치면서 대합류를 하는 이곳은 동시베리아 수륙문화권을 이룹니다. 이곳은 러시아제국이 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샤만이즘 문화권입니다. 여기서 이들이 이뤄낸 고대문명의 흔적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하바롭스크 고고학박물관으로 한시라도 빨리 가서 눈으로 확인 하고 싶었습니다. 하바로부스크, 도시 이름은 러시아의 침략자 이름을 붙여 겉으로는 신생 러시아 도시처럼 보일지라도 역사여행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으로 여행이며, 문화는 역사의 관점에 따라 달리보이기 마련입니다.

연해주 최대의 화력발전소 마을 루츠고르스크를 지나 드넓게 펼쳐진 푸른 대륙을 달리면 아무르강 하류가 펼쳐집니다. 누런 황토물이 바다처럼 펼쳐진 거대한 강입니다. 여름 장마철에 물이 불면 강폭의 길이가 500미터를 넘습니다. 이 거대한 강을 넘어 큰 도시를 만났습니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의 중심 도시, 인구 60만의 극동 최대 도시입니다. 지금은 슬라브인이 대부분이고 우크라이나인, 유태인, 동아시아족이 소수민족들입니다. 하바롭스크는 극동지방의 행정 산업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푸틴 정권은 중앙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러시아 전역을 7개 구역으로 나누었는데 극동지역 수도로 하바롭스크를 정하고 대통령 전권대사가 주재하는 명실상부한 극동의 중심도시로 만들었습니다. 주지사 선거도 푸틴 정권 이후 대통령 임명제로 바꿨습니다. 지방권력은 모스크바를 바라보며 통치합니다. 러시아는 주정부 권한이 막강해서 지역 연안 어장, 지하자원, 공공사업 등의 개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권은 이권과 결탁하여 있습니다. 주정부 경찰이 막강한 힘을 휘두릅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경찰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앞서가는 차를 우리 차가 갈 때까지 멈춰 서게도 합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앞지르기를 하여 차를 가로 막습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듣는다? 그러면 총을 빼듭니다. 막강한 권력입니다. 철저히 보호받으며 달려가야 하는 유라시아대장정 일행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정해진 길로 끌려 다니는 것 같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안내하는 경찰이 고맙기는 하지만 주민과 교류를 차단당하니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강력한 경찰력 없이는 치안이 유지 되지 않는 사회입이다. 민간인 중심의 평화교류란 아직 멀기만 합니다.

하바롭스크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수도답게 도시미관이 아름답습니다. 강변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는데 혁명광장, 레닌광장은 관광객이 의례 들려서 사진 찍기 좋은 곳입니다. 구소련이 극동에 건설한 도시문명은 서구유럽풍의 돌 건축으로 잘 남아있습니다. 동로마제국과 그리스정교의 영향을 받는 러시아는 유럽풍 도시를 이곳 극동까지 퍼다 날랐습니다. 혁명동상은 볼세비키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기리는 것일 겁니다. 각 지역마다 시민혁명군이 조직되어 혁명을 일으켰고 레닌기치로 성공했으니 도시마다 레닌동상입니다. 중국에 가면 마오 동상이 즐비하니 동북아시아에는 두 대국의 영웅이 근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혼례복을 입고 가장 먼저 가서 사진부터 찍는 곳도 레닌광장이고 국가기념일 행사를 펼치는 곳도 이곳입니다.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은 사회주의의 국제적 보편성에는 실패하였지만 대국가 건설에는 성공했습니다. 소련 사회주의가 두 가지 유효성이 있었다면 하나는 서구제국주의에 대항 이데올로기인 점과 자국민을 통합시키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20세기 사회주의는 세계사적 인민해방 테제로는 일단 실패한 것이었고 거대한 나라를 통합시키는데 유효한 에너지로서의 사회주의는 성공하였습니다. 마오와 레닌의 공통점은 서방 제국주의에 대응하여 민족을 위기로부터 구원한 자로 동북아에서는 대중·민족적 영웅으로 아직 선명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시내 콤소몰 광장에 가보면 시민혁명군을 상징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구소련시절 파괴되었던 성모승천 성당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성당을 재건축 하고 있습니다. 건축 노동은 중국인 건설 노무자를 불러다가 한답니다. 도시 공공시설 노무에는 북한 노무자도 고용되어 있답니다. 이 도시 대부분 공공 토목건축은 중국·북한인에게 맡기고 설계와 마지막 인테리어는 러시아인 손으로 한답니다. 러시아인이 게으르다고 해야 할지, 약다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동토에서 사는 방식 같습니다. 땅 넓고 자원 많은 나라의 여유로움도 보입니다.

전승기념광장, 레닌 광장 등 곳곳이 혁명기념물로 세워져있습니다. 유럽과 러시아의 도시를 비교할 때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라면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가 이제는 유적처럼 남아있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서유럽풍 도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도시 기념 조형물들은 나름대로 수준이 있습니다. 간결, 엄숙, 구체성, 담대성, 기념성을 분명히 들어내고 있는 러시아 시광장의 조형미술은 러시아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망해도 사회주의 예술이 사회주의를 지속적으로 공공연하게 옹호하고 있습니다.

시민광장문화의 전통이 없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요. 식민지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 시광장에는 맥아더 동상 같은 외지의 영웅부터 세워야 했습니다. 민족적 자긍심이 광장 문화로 뿌리내리기에는 열악한 식민지적 환경이었겠지요. 시민광장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자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수용했어야 하는데 정체성이 시민적 합의를 이루려면 하루아침에 되겠습니까? 러시아나 중국은 식민지 경험도 없고 땅도 넓으니 당당히 다른 길을 갖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전히 당당할 수 있는지 모르지요. 러시아 시민광장은 러시아식이 있었고 중국은 중국식이 있습니다. 그 중심적 내용에 레닌, 마오가 있고 조형미에는 자기 정체성이 있습니다.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 이후에야 시민광장문화를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공공미술, 청계천 복원, 서울 숲 공원 등 지금 여럿이 생기고 있지만 명색이 조각가인 내 눈으로 보자면 아직도 날림입니다. 각설하고, 여행지로 다시 마음을 돌리겠습니다.

***잊혀진 신령한 영혼의 문화를 찾아서**

하바롭스크 고고학 박물관은 입구 원숭이 석물부터 눈길을 끌더니 작은 박물관 방들에 꽉 찬 유물들로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이것들이 어느 때 유물인지 박물관 직원에게 물어도 모를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해의 것인지, 금나라 것인지, 어느 동아시아 부족들의 유물들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첫 방을 들어가니 구석기부터 신석기 유물입니다.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줄무늬토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방에는 발해, 금나라, 요나라, 청나라 유물까지 뒤섞인 것 같습니다. 저도 잘 구분이 안가 안내자에게 물으면 자기들도 모른답니다. 사진만 찍지 못하게 말립니다. 촬영비용을 내서야 사진 촬영이 허락되었습니다.

원시시대 모계사회 여신상이 우선 눈길을 끕니다. 뇌문, 태극문 토기, 격문토기가 눈을 잡습니다. 동북아 일대에 공통으로 퍼져있는 빗살무늬 토기입니다. 제 눈을 가장 끈 것은 초벌구이 고아시아얼굴을 흙으로 빚은 흙상입니다. 흙으로 만든 어떤 도구의 손잡이 부분 같은데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고대인과 첫 만남입니다. 고아시아족의 영혼과 만났습니다. 숨이 멈출 것 같았습니다. 고대 아시아인의 내면의 풍경과 처음으로 마주 쳤기 때문입니다. 명상에 잠긴 고대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 서역으로부터 불교의 선(禪)적 명상이 전해오기 이전, 동아시아 태고적 고요가 시간을 초월하며 전해 옵니다. 동아시아인의 사유적 인간상의 한 전형을 만났습니다. 한반도 안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고대인 소조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부서지지 않고 반만년을 지나서 우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두 손 모아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눈을 감은 듯 뜬 듯 고요히 바라보는 무념무상의 얼굴입니다. 광대뼈가 크고 볼이 넓은 얼굴상으로 동아시아 신인상의 원형(archetype)으로 보입니다. 내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조상의 흔적 같습니다.

시베리아에서 고고학을 연구한 강인욱 박사에게 물었더니 그 얼굴소조는 기원전 3~4000년 전 것으로 아무르강 하류 콘돈지역에서 발굴한 것이랍니다. 우체국을 건설한다고 땅을 파다가 출토하였답니다. 고아시아인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옆방에 있는 발해유물로 갔습니다. 발해의 와당을 만났습니다. 발해인지 금나라인지 모르게 뒤섞어 놓은 벽돌 전문, 전대, 불상이 나타납니다. 불상이 출토되었는데 어느 시대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해 것인지 금나라 것인지 아니면 발해를 멸망 시켰던 요나라 시대 것인지 연구과제입니다. 그 방에서는 단연 투각벽돌이 눈에 꼬칩니다. 와! 우리의 민화세계를 입체로 그대로 보는 듯합니다. 발해의 유물이 분명합니다. 경복궁 꽃담장 장식과도 비슷하고 민화 닭과도 비슷합니다. 이것은 민화적 미의식의 원형입니다. 정감 있고 우람하고 구성진 감성을 표현한 양식입니다. 새벽닭이 복을 부른다고 하고 봉황이 무늬로 둘러쳐진 벽돌인데 상당히 고급스런 집의 벽을 장식한 조각이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태양을 상징다고 할 수 있는 도상인데 이는 동아시아의 하늘 숭배사상, 즉 천손족의 세계관이 투영 되 있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입구에 모조로 만든 바위덩이들이 즐비했습니다. 아무르 강변에 새겨진 신석기 암각화를 그대로 복재한 바위들입니다. 시까취 알랸 지역의 바위 새김 그림은 한국의 울주군 암각화와 동시대, 동종의 문화권을 이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 있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현장에는 못 갔으나 모조품이나마 암각화를 무더기로 만났으니 수지맞은 기분입니다. 순록 같은 동물들은 먹이를 내어준 것에 감사하는 영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빗살은 생명의 신령한 영혼이 밖으로 환하게 발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희생한 고귀한 생명에 감사하는 제의가 그 때 그 곳에서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감사의 염원은 재생을 노래하는 법.

와문과 빛 무늬가 수두룩합니다. 물을 공경했고 해를 숭상했던 것이 샤만-풍류문화의 원형입니다. 물을 상징하는 것은 생명의 상징인데 동심원을 그리는 '원 안의 원'이 생명의 근원인 물을 상징합니다. 태양 빛과 물과 바람을 상징하는 도상들이 풍류(風流)입니다. 샤만이즘의 세계관에서는 영혼이 생명의 빛과 물결과 바람결을 타고 모였다가 흩어지고 떠돈다고 봅니다. 순록이 사령(死靈)을 싣고 하늘로 승천한다고 봅니다. 정령(精靈)은 생명체의 숨결에 있고, 신령(神靈)은 더 크고 초월적인 것에 있으니 그곳은 특별한 성소를 나타냅니다. 이 샤만이즘 문화는 고구려 벽화에도 주류를 이룹니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문화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이전 북방 샤만전통은 동북아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이룹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나는 풍문(風紋), 뇌문(雷紋), 성문(星紋), 운문(雲紋), 원문(員汶), 삼족오와 동물벽화도 샤만이즘 세계관입니다.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사슴과 사람을 보면 인본주의가 더 두드러집니다. 국가적인 군사력으로 생산물을 큰 규모로 노획하는 시대에 동물은 사냥대상으로 전락합니다. 목숨을 주고받는 자들과의 영적 교통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고아시아 샤만문화에서는 식사와 제사를 일체로 보았습니다. 영육일체의 사고를 놓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의식주를 주는 동물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츔이라고 부르는 유목민의 집은 아파치 인디안 집과 똑 같은데 나무를 시옷자로 걸치고 순록의 가죽을 덮습니다. 순록을 사냥하여 생산 수단화하기 시작하던 유목시대 사람의 얼굴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울주군 암각화에도 비슷한 신인(神人)이 보입니다. 인간도 동물과 식물처럼 신령한 영혼이 깃든 존재로 보았습니다. 영적 평등시대입니다. 영혼을 가진 생명을 모두 존귀하고 신비스럽게 보던 영적 평등 시대입니다. 서쪽으로는 핀란드까지, 동쪽으로는 캄차카반도에 이르기까지 발견되는 순록신화는 시베리아유목문화를 대표하는 상징화입니다. 얼음이 언 땅 밑에서 돋아나는 이끼를 먹고 사는 순록, 그 순록의 기다란 이끼 길을 따라 고아시아인들은 순록을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서시베리아 어디에서나 줄기차게 순록신화와 순록을 새긴 비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평생 순록 덕분에 산 고대 시베리아 유목족은 죽어서까지 영혼을 하늘로 실어 나른다고 여겼습니다. 영혼을 나르는 순록은 저 알타이의 황금으로 만든 순록문장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 옆에 있는 향토 박물관을 갔습니다. 밖에는 거북이가 다 깨져나간 비석을 이고 엎드려 있습니다. 우스리스크에서 두개를 발굴 했다는데 하나를 이곳에 갖다 두었답니다. 눈도 입도 코도 발도 다 닳고 닳아 침묵의 돌로 변했습니다. 이 비석은 아직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연대를 밝힐 수 없습니다. 비석의 글자가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발해 것 같다는 추정만 무성합니다. 향토박물관 안에 들어가니 장승, 솟대, 승천하는 날개 달린 짐승, 나무에 통째로 새긴 조각들, 명경, 주술대, 샤먼 의상, 부족신화 그림, 동굴 가죽으로 덮은 시옷자의 츔 집, 우리와 근친한 문화라는 것을 단박에 느낍니다. 나나이족(여진족)의 문화만 아닙니다. 여러 동아시아 소수족 것을 뒤 섞어 놓았습니다. 에벤키, 캄차키, 올치, 니기달, 우데기, 브리아트 등등... . 저도 그들을 잘 모릅니다. 아~, 누군가 이곳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향토사학자가 한국에서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쪽을 보니 늑대인지 사슴인지 잘 모르지만 어째든 날개 달린 짐승이 등에 도마뱀을 얹고 승천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땅의 신상 뱀과 날개를 단 하늘 신상이 합친 복합계신화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숭배하는 종족과 땅을 믿는 종족의 접신물(接神物) 같습니다. 두 종족 간에 혼인의례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은 곳곳에서 보입니다. 장승은 장승인데, 우주목입니다. 땅의 신상인 뱀과 거북이가 아래에서 기어오르고 하늘의 신상인 새가 있고 가운데에는 신인간이 새겨진 장승입니다. 우주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천지인의 샤만적 사유체계가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족들의 공통된 세계관입니다. 동아시아의 성스러운 수 개념은 3수인데, 이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수리적 사유체계입니다.

또 좌측에 헝겊에 그린 샤먼 그림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보는 순간 삼수분화의 세계관을 담은 신화그림임을 담박에 알겠습니다. 두 마리의 용이 마주하며 떠있고 그 아래 9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용을 시조로 하는 두 씨족이 만나서 아홉 자손을 낳고 그 부족이 번창해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부족신화 그림 같습니다. 그 밑으로 족보가 나무줄기 뻣듯이 그려져 있으니 종족의 역사는 신화로 내려옵니다. 이곳 향토박물관에서 만난 동아시아향토문화 유물은 진한 땅 내음과 생물의 영혼과의 진한 대화를 들려주는 것 같은 '대지의 문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동북아의 문명 아닌 문명**

이제 하바롭스크를 떠나야만 합니다. 아쉬움을 남기고 2박3일의 짧은 일정을 끝내고 떠납니다. 그러나 몇가지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이곳은 분명히 동아시아족들의 무수한 문명이 수만년전부터 피고지고한 곳이라는 것, 동아시아의 샤먼이즘 전통과 종족신화가 전설처럼 내려오던 땅이라는 것, 동아시아족의 문명이 19세기까지 아무르강처럼 도도히 흘러내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제정러시아의 이식문화와 소련 사회주의로 변화한 문명을 인정하듯이 그 이전 동아시아의 문명을 역시 인정하여야 마땅합니다. 이곳은 동아시아 고대 샤만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입니다. 계급과 국가와 물질적 소유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아시아 대륙의 끝의 문명입니다. 18~9세기까지 샤만이즘의 영혼을 믿던 곳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안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대지를 어머니로 하늘을 아버지로 섬기며 모든 자연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상상을 감히 할 수 없었습니다. 지배와 억압과 착취의 사회악이 대세를 이루지 않던, 맑은 영혼을 간직하며 살던 지구촌에 몇 안 되는 곳입니다.

샤만이즘을 야만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것은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그리스 문명에 나오는 무수한 신화도 야만입니다. 제우스에 의해 유라는 겁탈당하고 소등에 묶어서 유괴된 채 지중해 일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지역이 되었다는 제우스의 성폭력 신화야말로 남근주의 폭력의 원조입니다. 지금 유로화 동전에까지 이 신화를 자랑처럼 새겨놓은 것이 오늘의 유럽신화인데 거기에 비하면 동아시아의 신화는 신선경지입니다.

알타이문명, 브리야트·몽골문명, 그리고 이곳 연해주의 '아무르 샤만문명'은 동아시아의 인문학을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잘 들어나지 않는 문명입니다. 세계 인문학의 브랭크입니다. 이곳 동북아문명권을 빼놓고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4대문명권을 규정한다는 것은 서구적 문명관입니다. 문명이란 인간이 자연과 결별하며 대도시를 형성한 제국만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편견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 친화적 삶의 양식을 가꾸어 온 역사에서 문명 아닌 문명이 있습니다. 21세기 탈근대의 문명전환기에 요구되는 생태,생명문화의 근원입니다.

저는 이곳이 고대 동아시아 샤만문화의 발원지이며 아무르강 일대가 우리 민족의 문화 근원과 동류하는 곳이라는 사실 만 확인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쑹화강은 북해로 흘러가며 동아시아 문명의 젖줄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훗날 또 이곳에 오지 못하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후학들이 이곳의 고대문명사를 밝힐 것이라고 믿습니다. 서구문명의 지구적 상처를 아무르는 대안을 동아시아의 사유체계에서 찾는다면 아무르의 맑은 영혼의 문화부터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떠나려니 자꾸 박물관에서 본 고아시아인의 사유하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하바롭스크에는 동아시아족의 영혼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아시아의 영혼을 맞이하는 초혼가를 부르며 다시 시베리아 서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에벤키족의 아리랑이 있다는 곳으로.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맞이하세 맞이하세~ 깨어났네 깨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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