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를 엄습한 것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죽음의 냄새였다. 팔루자 곳곳에서 수많은 시체들이 죽은 곳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다. 그 중 상당수는 들개들에게 반쯤 뜯긴 상태였다. (…) 2004년 11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팔루자에서는 다시 학살이 시작됐다.
나는 팔루자 근처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17살 된 소녀의 공포에 찬 증언을 기억한다. '11월 9일 미군들이 우리 집에 왔어요. 아빠와 이웃 할아버지가 현관으로 나가자마자 막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쓰러진 뒤 군인들은 언니를 마구 때린 다음 총으로 쏴 죽였어요.'
이런 증언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다 미군들에게 '제발 쏘지 말라'고 호소했지만 그들은 절대로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살람 이스마엘, '마침내 드러난 팔루자의 진실', <소셜리스트 워커> 인터넷판, 2005년 2월 19일)
정부가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의 파병 기간을 연장하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2004년 4월 미군의 이라크 팔루자 폭격 때 현지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던 살람 이스마엘 '이라크를 위한 의사회' 사무총장이 12일 공개 강연회를 가졌다.
이스마엘 총장은 지난 2월 부시 대통령이 2004년 11월 재선에 당선되자마자 팔루자에서 진행된 '미군의 학살극'을 사진과 함께 공개해 또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보건 포럼 2005'에 참가하고 있는 이스마엘 총장은 이라크 현지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함께 "지금 이라크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닌 의약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라크 보건의료 기반 파괴…마취제·메스 없이 일반 칼과 실로 수술"**
이스마엘 총장은 "현재 이라크는 의약품, 의료기기, 병원은 물론 보건의료 행정 체계까지 보건의료의 기반 자체가 모두 파괴된 상황"이라며 "마취제나 메스와 같은 기본적인 의약품들이 없어 마취제 없이 일반 칼과 실로 수술을 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이스마엘 총장의 증언은 그가 준비한 사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라크 병원의 건물들에는 하나같이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미군이 2003년 초부터 지난 10월까지 미군 기지로 접수해 사용했던 이라크 서부의 보건의료인 양성소도 있었다.
이스마엘 총장은 "미군이 이 보건의료인 양성소를 군사 기지로 활용하면서 모든 보건의료 시설을 파괴했다"며 "미군은 이라크인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13억 달러 수준의 보건의료 시설을 파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1>, <사진 2> => 사진과 캡션은 '작성중' 상태 같은 기사에서 써주세요.
***"의사마저 반체제 인사라며 추방…'저항세력'은 수술도 못 받게 해"**
보건의료 시설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통치하면서 기존 이라크의 보건의료 행정 체계가 무너진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스마엘 총장은 "보건의료 행정 체계가 무너져 유통기간조차 알 수 없는 의약품들이 유통되고 있다"면서 "환자들에게 공급될 식량도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들어오는 것도 부패한 상태라 환자에게 먹일 수 없다"고 현실을 고발했다. 이스마엘 총장은 "사담 후세인 통치 때보다 '문명국' 미군이 점령한 후 보건의료 상황이 더욱 악화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보건의료 교육 체계도 무너진 지 오래다. 이스마엘 총장은 "단 1명의 심장병 전문의가 1000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수련의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는데 그마저 미군에 의해 반체제 의사라고 쫓겨났다"며 "유능한 의사들이 안전 때문에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남아 있는 의사들마저 미군에 의해 반체제 의사로 낙인 찍혀 병원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의 매일 폭격과 테러가 일어나는 이라크에서 부상자를 치료할 의사들을 찾기는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마엘 총장은 "모든 분쟁 지역에서는 '의료 중립성(medical neutrality)'이 지켜져야 한다"며 "미군은 이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수술 중이던 의사를 미군이 끌어낸 적도 있다"며 "수술을 받던 환자가 '저항 세력'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소개했다. 그는 "결국 그 환자는 죽었다"고 덧붙였다.
***"미군 점령 후 '의료의 시장화'…빈민들 의약품에 접근 못 해"**
미군과 함께 들어온 '의료의 시장화' 역시 이라크의 보건의료 기반을 파괴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이스마엘 총장은 "미군 점령 이후 급속하게 시장화되고 있는 보건의료 상황이 이라크인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마엘 총장은 "모든 것이 이윤을 위해 돌아가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은 약효가 거의 없는 값싼 의약품만을 찾게 된다"며 "그나마 이마저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 가난한 사람들은 의약품에 접근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폭로했다.
이스마엘 총장은 "미군이 들어온 후 의료기기와 의약품 수급을 기업이 전담하면서 바그다드에 있는 16곳 병원 중에서 오직 1곳만 X레이 장비를 가지고 있다"며 "기업이 이윤 추구를 하다보니 발생하는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3>
***"한국군은 분명한 점령군…파병 연장은 이라크인 분노에 불 붙이는 격"**
이스마엘 총장은 마지막으로 자이툰 부대를 파병 중인 우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스마엘 총장은 "한국군은 분명히 점령군"이라며 "한국인이 일본에 지배당한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듯이 이라크인도 한국인에게 점령당한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또다시 파병을 연장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이라크인의 분노에 불을 붙이는 격"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마엘 총장은 자이툰 부대 철군을 위한 우리 시민의 노력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의 시민들이 이라크에 있는 한국군이 철수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한국군 철수 운동을 벌여 해방을 향한 이라크인의 투쟁에 지지를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상자기사 시작>
***"환자 구하려다 총 맞아 죽은 '알리', 한국 의대생에게 알리고 싶다"**
<사진 4>
프레시안 : 한국에서 APEC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입국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나?
이스마엘 : 비자 신청 때문에 애를 먹었다. 입국이 금지될 뻔했으나 간신히 비자를 발급 받았다. 그러나 체류 기간을 7일밖에 내주지 않아 금방 돌아가야 한다.
프레시안 : '이라크를 위한 의사회'는 어떤 단체인가?
이스마엘 : 이라크 전역에서 모인 젊은 의사들이 지난 2003년 10월 바그다드에서 결성한 단체다. 분쟁 지역에서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보건의료인들을 위한 교육·훈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군의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처음으로 최근 바그다드에 보건의료인의 수련 과정을 개설했다.
프레시안 : 운영이 쉽지 않을 텐데 '이라크를 위한 의사회'의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가?
이스마엘 : 우리는 미국이나 이라크 등 어떤 정부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않는다. 자원봉사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봉급을 받은 적이 없다. 활동에 필요한 돈은 유럽 등의 비정부기구(NGO)로부터 오는 지원을 통해 마련한다. 우리는 순수 의료봉사 단체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는 데다 구성원들도 다양한 종교,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우리 단체가 국제적으로 존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1주일 동안 한국에서 하고 싶은 활동은?
이스마엘 : 이라크 의대생과 한국 의대생 간의 결연을 맺고 싶다. 이라크 학생들에게는 좋은 보건의료 기반이 갖춰진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학생들에게는 의사 윤리를 되새기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알리'라는 이름을 가진 의대생을 기억한다. 그는 의사 자격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총격을 받고 쓰러진 환자를 구하려다 총에 맞아 죽었다. 알리야말로 의사 윤리를 지킨 사람이라고 본다. 한국의 예비의사들도 이라크 문제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상자기사 끝>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