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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복지재정 확충은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

<기고> '사회양극화' 해결하려면 '복지세' 검토해야

최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앞으로 4년간 필요한 8조6000억 원 중 3조 원에 대해서는 재원조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정하지 못했다"면서 복지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부족한 자금 3조 원을 조달하는 문제를 놓고 "사회부처와 경제부처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혀, 현재 복지재정이 처한 난관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그는 현 정부여당이 "중산층-서민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고까지 말함으로써, 복지재정의 문제가 노무현 정부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복지재정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에 대한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의 글을 받아 소개한다. 이 문제는 비단 현재 여권의 성격과 관련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향후 우리 사회의 진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대한다. <편집자>

최근 사회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화두가 되고 있다. 물론 사회양극화란 자본주의의 근간을 버리지 않는 한 필연적인 현상이란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꽤나 호들갑이라는 제법 냉정한 시각으로 양극화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냉정을 유지할 문제는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자유자본주의(free capitalism)는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뒤 그 야수적 본성에 의해 모든 분야를 양극분해하고 마침내 사회존립의 정당성을 심각히 훼손시킨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럴 때 수많은 사회개혁가들이 등장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을 표방하며 사회의 변혁을 주장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제수호를 사명으로 하는 정객들에 의해 새로운 사회보장제도가 창안되면서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작업이 본격화됐다. 그 백미가 존 메이나드 케인즈에 의해 창안된 유효수요 이론에 근거한 과감한 정부 재정지출 정책이다.

***사회정책의 본격적 전개를 알리는 신호탄**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소득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었을지언정 자본주의의 고유한 속성인 양극화의 시정을 국가정책 수립의 근간으로 하자는 목소리가 요즘처럼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없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러한 조류가 대세로 존재함은 결국 자본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폐해에 대한 '사회적 자각'이 비로소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는 곧 한국사회의 성숙지수가 높아졌음을 나타내는 것이요, 사회정책의 본격적 전개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정권의 콤플렉스에 짓눌려 이념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이고 부정의한 사회구조의 타파에 진정성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제 구미의 선진 제국들보다 한 세기 늦게나마 사회정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합리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하는 작업을 본격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물론 이러한 판단이 매우 성급하고 주관적인 단정일 수 있음을 알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작업이 시작된 결정적 계기는 국가적 불행이었던 IMF 구제금융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DJ 정부에 의해 '생산적 복지'가 천명되고 복지정책이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의 전면에 나서는 가운데 기초생활 보장제도가 만들어지고, 4대 사회보험 제도가 손질되고, 복지재정의 일차적 확대가 이루어진 게 그 계기였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의 근본적 해법으로 채택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재편은 끊임없이 사회적 탈락자를 양산하는 방식이었고, 그 정도의 사회보장제도 보완책으로는 우리 사회가 터지는 봇물을 막을 수 없는 수문과 같은 형편이었다.

***참여정부의 복지정책, 실망 이상**

이어 등장한 참여정부는 적어도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돼야 한다는 자각 아래 분배를 성장과 대비시켜 정책적 아젠다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에 대한 판독능력을 갖고 있었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성과의 표출, 국민의 체감도 증진을 통한 승인의 과정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적어도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냉혹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중산층으로의 영유아 보육료 지원 확대, 근로소득감면제(EITC)의 적극적인 도입, 아동수당 제도의 도입, 기초연금제의 도입, 100만 빈곤아동 해소 정책, 과감한 신빈곤층 해소 정책,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 수많은 진보적 정책들이 사회적으로 요구됐다. 그럴 때 참여정부로부터 시원한 응답을 듣지 못했던 이들은 이제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의 수준을 넘어 분노의 단계로까지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책이 수용되느냐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압축하면 집권세력의 정책의지, 국민의 수용성, 그리고 재원조달의 가능성 등 세 가지 요소를 들 수 있다.

물론 이 세 가지 요소 중 앞의 두 가지는 측정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그리고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최근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 사회양극화 논의가 어느 정도 수용되고 있으며 국민의 정서 역시 그 심각성을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건은 세 번째, 즉 재원조달의 가능성에 있다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희망한국 21'이란 사회안전망 보강정책을 내놓고 2009년까지 8조6천억 원을 쏟아 붓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으며, 곧이어 약 15조 원 내외에 이르는 저출산 대응정책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과정에서 물경 23조에 이르는 재원의 조달방법을 놓고 정부 내에서 사회정책 부처와 경제정책 부처 사이에 대립구도가 형성됐을 것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아직도 3조 원에 이르는 재원의 확보가 이루어지지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런 그의 고백은 정부 내 갈등의 일면을 엿보게 하는 것인 동시에 국민 일반으로부터 재원 확보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도 비치고 있다.

***세금에 의한 불평등 시정 미흡**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서구에서는 이미 20세기 중반에 틀을 형성해 놓은 복지국가로 이제라도 갈 수 있게 해줄 재원의 조달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인가?

이미 우리나라의 복지재정이 지니고 이는 문제점들은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단적으로 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2001년 사회지출비(social expenditure)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22.4%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8.7%에 지나지 않는다. 삼 분의 일이 조금 넘는 수준인 것이다. 이를 경제력 규모의 차이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 치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구 선진국들은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할 때 대부분 이미 사회지출비의 비중이 15%를 넘고 있었다는 점이 웅변으로 말해준다.

우리의 복지재정은 단순히 양적인 부족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의 사회지출비의 구성을 보면 각각 사분의 일 정도가 퇴직금과 건강보험급여이고 이어 국민연금 등의 순으로 돼있어 소득재분배 효과 면에서는 매우 미흡하다. 그 결과 세전소득과 세후소득 간의 지니계수 차이가 약 4.5%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OECD 회원국들의 평균치는 41%이다. 즉 세전소득에 있어서 불평등도가 심하기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OECD 모든 국가의 공통적 현상이지만, 여타 국가들은 조세제도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정부가 사후적인 보정작업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양극화의 심화를 설명하는 데 주요한 논거가 된다 하겠다.

그렇다면 국민 삶의 안정감을 확보하는 동시에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정책들을 전개하기 위해, 그리고 서구 선진국가들 수준으로의 사회지출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재원의 조달방안은 무엇인가?

***기존 예산범주 조정으로는 복지재정 확보 어려워**

원론적으로 말해서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주어진 예산범주 내에서 기능별 항목상의 비중을 바꾸는 방식, 즉 다른 용도의 예산을 사회정책 부문으로 돌리는 일이다.

1970년대에 5%를 약간 웃돌던 사회복지 부문의 재정지출상 비중은 3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볼 때 25%를 넘어섬으로써 매우 일취월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OECD 국가들이 정부 예산 내에서 50% 내외를 사회복지 부문에 지출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의 재정구조 상 개선의 여지가 적은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부문의 투자를 통해 국가경제의 기본 인프라를 확보한다는 구실 하에 그간 '묻지마' 투자가 대거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지방토착세력과 건설대기업에 정부예산이 봇물 터진 듯 흘러들어간 과정을 생각하면, 그렇게 낭비되던 예산을 복지부문으로 돌릴 여지가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원조달의 방식을 현재 주어진 재정의 파이(pie) 내에서의 재조정으로 하자고 말할 시점은 이미 지났다. 구조화되는 사회갈등과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800만에 달하는 빈곤층의 생활기반 와해를 막으며 시장임금이 아닌 사회임금을 통해 국민들 삶의 기본적 욕구를 정부가 책임지는 현대정부의 틀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소요예산을 이런 식의 조달방식에만 의존하기는 어렵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에서 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당장 저출산 고령화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현재 GDP의 약 2% 정도인 이 분야의 지출을 2010년까지 최소 6%에서 최대 15%, 2020년에는 7%에서 17%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는 곧 100조 원 이상의 예산 소요액을 말하는 것이므로 일상의 방식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재원조달 방식으로서 새로운 재원 발굴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는 지하경제나 음성소득, 그리고 면세점 이하 소득 뒤에 숨어있는 위장소득 등에 대한 과감한 세원발굴이 절실하다. 이는 과세기반을 넓히는 방식이며, 한국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기본조건을 확보하는 길이다. 또한 우리사회의 조세형평과 분배정의를 확립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근로소득 납세자의 42%(2002년 기준)가 면세 대상자이며, 종합소득자 납세 의무자 381만명 중 52.5%인 200만 명(2001년)이 과세 미달자인 게 현실이다. 소득세 확정신고자 중에서도 장부를 기재한 자는 45.4%에 불과하여 기장을 하지 않은 나머지 54.6%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은 전체의 29.3%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뿐이 아니다. 부가가치세에 있어서는 전체 사업자의 48.9%(2001년)가 간이과세자이며 이들로부터의 세수 비중은 1.76%에 불과하다. 따라서 현금카드 영수증 공제제도 등으로 이들의 소득을 확보한다 해도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근로소득 면세점의 인하와 국선 세무사 도입 의무화 등과 같은 자영업자 소득 파악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토지와 금융자산에서 부유층에 대한 적극적 과세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종합부동산세의 강화, 주식의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형평의 현실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의 인하, 부동산 자본이득에 대한 전면 실거래가 과세의 실시가 그것이다.

***목적세의 도입,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추진돼야**

이러한 다양한 대책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유세 또는 저출산세와 같은 목적세의 도입이다. 일반적으로 목적세의 도입에 대해서는 재정 일반의 관점에서 볼 때 세출과 세수의 연계성이 높아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효율적으로 사용된다면 매우 유용한 효과를 내지만, 지출상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이 제거되기가 쉽지 않아 바람직스럽지 않은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부처 관료들이나 대부분의 재정학자들이 목적세에 대해서는 알레르기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교육세, 농어촌특별세 및 교통세 등과 같이 고유한 목적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목적세를 과감하게 도입해온 경험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양극화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리고 현재 저출산 및 고령화 추세가 미래사회에 대해 갖는 가공할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그 재원의 마련을 위한 목적세 신설을 전향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때 관건은 국민의 추가적인 조세 부담능력 여부다.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 수준은 OECD 국가 중 하위에 속하며, 유형별 국가군에 비교할 때도 다른 국가들과의 차이가 현격하다. 즉 우리의 경우 사회보장기여금을 제외한 조세부담률을 볼 때 2002년에 19.8%에 그치고 있다. 이에 비해 영국과 미주 국가의 평균은 28.1%, 북구의 평균은 35.8%, 유럽대륙국가의 평균은 27.1%에 달한다. 물론 미국과 같이 19.6%에 달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20% 후반대임을 통계는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구 선진경제와 그들의 재정구조를 본받는다는 전제 위에서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최소 5-8%의 추가 조세부담 능력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감세(減稅) 주장은 철학의 빈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감세는 조세감면에 따른 효과가 주로 중산층 이상에 돌아가므로 소득역진적일 수밖에 없고, 재원의 축소로 중산층 이하 계층을 위한 복지재원의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소득재분배의 역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목적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의 근거로서 세입과 세출 간 연관성의 결여 및 지출상의 경직성이 거론되고 있으므로 이런 문제점을 불식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고 소득재분배 효과를 좀 더 강조하며 전 계층과 미래사회 구성원 모두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인상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이든 현 단계에서 우리 사회는 복지세라는 목적세의 도입을 통해 현재 절박하게 요구되는 적극적 사회정책의 실현을 위한 재원을 조달해야 하는 시점에 있으며, 이런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정부나 정당은 끝내 국민의 안위와 미래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복지세의 도입은 실현 불가능한 신화나 신기루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실현돼야 '현실' 차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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