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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군조차 싸늘하게 만드는 일본, 그들만의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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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군조차 싸늘하게 만드는 일본, 그들만의 상식"

우수근의 아시아워치 <34> 8.15 한중일의 동상이몽

2005년 여름은 한중일의 암울했던 '과거사'가 더욱 선연히 다가서게끔 한다. 2005년 여름에는 한국의 광복 60주년(8월15일)과 일본의 패전 60주년(8월15일), 그리고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60주년(9월3일)이 들어 있어 각국은 서로 다른 행사 속에 처절했던 과거를 들춰내 보지만 그 지향하는 의도가 3국의 동상이몽을 처연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8월맞이'에 여념 없는 중국**

현재 중국 국영 CCTV와 각 지역 방송국은 항일전쟁을 주제로 한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시시각각 방영하고 있다. 중국의 지면 혹은 인터넷 매체들 또한 항일전쟁 관련 특집으로 지면을 대거 활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대륙 전역에서는 항일 항전 승전 6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 이벤트를 '열렬히' 전개 중에 있기도 하다.

먼저 수도 베이징의 국가박물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600여 편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753점의 문물 및 사료 등에 의한 '난징대학살 기념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난징시가 위치한 장쑤(江蘇)성이 주관하는 이 전시회의 전시물들은 80% 이상이 민간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는 일본군이 1934년 5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중국인 100만 명을 강제 동원해 새로 만든 14개의 군사 요새와 1700㎞에 달하는 지하 벙커 사진을 특별 전시 중에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서는 동북 3성의 14년에 걸친 항전 기록을 담은 '동북항전실록'이 출판되었고 일본군에 의한 세균전 피해자들의 생생한 사진과 증언을 담은 사진집 '피눈물로 고발하노라'(泣血控訴)가 출판되어 중국인들으로 하여금 과거를 다시 한번 전율케 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 각지에서의 이와 같은 이벤트에 앞서 중국과 대만의 현역 및 퇴역 장성 100명은 항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베이징의 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또 다른 대일 국공합작을 연상시키는 서화 전시전을 개최했다. 그뿐만 아니라 개막식 저녁에는 중국 주재 유엔대표단 건물에서 항일전쟁을 다룬 영화 '7.7사변'이 유엔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상영됐다. 이와 같이 중국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탓하려는 듯한 의도가 다분한 다목적용 '8월 맞이'에 여념이 없다.

***대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일본의 선택은?**

이에 비해 60주년 패전 기념일을 맞은 일본의 2005년 8월 맞이는 어떠한가? 일본 정국은 현재 2차대전 이후 줄곧 집권해 온 자민당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60년 전 투하된 원자폭탄과는 다르지만 2005년 8월의 일본정계에는 또 다른 초메가톤급 폭탄이 투하됐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한 중의원 해산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과거사와 관련해 자민당의 집권이 계속되는 한 일본에게는 독일과 같은 대승적 평범한 도리를 기대하기 힘들다. 유달리 선후배 관계가 강한 일본 정계가 아닌가. 그곳에서 그동안 자민당을 쥐락펴락 한 일본의 정치 선배들이 유지해 온 섬나라 일본다운(섬나라를 의미하는 영어 'insular'의 어원에는 편협함, 옹졸함, 속 좁음 등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과거사 관련 정책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자민당의 한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며 기존의 정치선배들을 모두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자민당 정권이 창출되거나 혹은 자민당의 파벌이나 그로 인한 이득에 초연한 자(즉 자민당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아요, 이단아)만이 시도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자민당의 문제아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지금, 자민당 붕괴로까지 이어질 그 모험수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다보면 고이즈미에 의한 자민당에의 도전은, 일본 정계의 구태의연함에 가하는 일격쯤으로만 해석되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 국내적인 측면에서는 이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다. 적지 않은 일본 국민들이 '개혁'을 부르짖는 고이즈미를 지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지 않은가. 즉 우리는 그의 대내정책적 측면보다는, 주로 우리와 더욱 가깝게 관련된 그의 대외정책(과거사를 포함한)을 중심으로 고이즈미라는 사람을 조망하고 판단하기 쉽다. 그런데 이들 정책과 관련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동안 일본 자민당은 과거사에 대해 'insular'적 한계를 벗어나질 못했다. 대범하고 후련하게 사과하며 그에 따라 성의있는 조치를 취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들의 과거 죄에 대해 '당당한'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고이즈미는 집권 공약으로 8월15일 야스쿠니 참배를 내세우는 등 기존 일본의 그 어느 우익인사들보다도 더 위험한 사람이 아닌가. 지도자 개인의 사관(私觀)을, 국가나 정부의 사관(史觀)화 하려는 위험천만한 행태로 인해 그가 이끄는 일본(아니 더욱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가 구성한 일본 정부)은 급기야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유례없는 나락으로 내모는 난폭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더 개악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입장**

그리고 그로 인한 역사의 뒷걸음질은 드디어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들어 패전 60년을 맞아 과거사 등과 관련한 그들의 공식 입장을 그들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우선 과거사 등과 같은 민감한 국제 사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공식 입장 피력을 극구 꺼려 왔던 외무성이 그들의 입장을 나타냈다는 점 자체가 일본의 기존 외교답지 않은 변화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변화란 것이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전쟁이 재발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야스쿠니에 참배한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인용해 "이는 결코 과거사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기재하고 있다. 이는 고이즈미나 일본 정계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취지로 분석 가능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외무성은 1995년 전후 일본 총리로는 유일하게 비민자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사회당 출신) 총리 담화 등을 인용해 "침략과 식민지배로 아시아 국민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점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되새기고 있다"면서도 일본은 동서로 분리되어 있던 독일과 여러 모로 다르므로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이고 있기도 하다. 기존 일본 소수 우익 정객들의 주장을 대변하다시피 한 기술인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남경대학살'의 경우 민간인이 사살된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의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는 등 아직도"세계의 상식은 일본에 통하지 않고 일본의 상식은 세계에 통하지 않는다"는 일본인 그들만의 상식에 입각한 가해자다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외무성의 이와 같은 '단호한'변화는 고이즈미와 그에 버금가는 매파의 수장 마치무라 외상을 등에 업은 일군의 인사들이 일본 외무성을 접수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패전 60주년인 현재, 역사를 '역사화'하기보다는 대내외적인 괴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해 광복, 패전 그리고 항일전승 60주년이 담긴 한중일의 2005년 여름은, 일본의 동상이몽으로 염장군조차 싸늘하게 만드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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