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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을 '신화'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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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을 '신화'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

[기자의 눈] '아인슈타인 뇌' 전시 소동을 보고

1955년 사망 후 240조각으로 잘라 보관해 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뇌 표본 한 조각이 '특수 상대성이론 발견 100돌'을 맞아 전시를 위해 국내에 들어온다. 생전에 우리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이 사후 50여 년 만에 뇌 조각으로나마 찾아와 방학을 맞은 '과학 꿈나무'들을 만나게 된 것.

***결코 특별하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뇌**

몇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 과학자의 뇌 조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 발견 100돌'을 기념해 물리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마련된 전시회에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들여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또 이 일이 전 언론에 대서특필될만한 것인지는 한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 사망 당시 부검의였던 토머스 하비에 의해 240조각으로 나뉘어 보관돼 온 그의 뇌는 반세기 동안 전 세계를 떠돌며 온갖 소문의 근원지가 됐다. 특히 한동안 언론은 그의 뇌를 해부ㆍ분석하면 '천재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막상 그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뇌는 1230g으로 오히려 정상인의 평균 무게(1400g)보다 덜 나갔으며 대뇌의 주름도 단순해 일반인의 뇌와 비교했을 때 결코 특별하지 않았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머리 꼭대기에 해당하는 두정엽의 아래 부분이 정상인보다 20% 크다는 것 정도다. 일부 과학자들은, 손상되면 '계산 불능증'이 나타나는 두정엽 아래 부분이 큰 것이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천재의 비밀'을 해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아인슈타인이 천재였는지도 논란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주위를 놀라게 할 만큼 똑똑한 학생도 아니었고 특히 어학 실력은 형편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선 최근의 연구들도 주목할 만하다. 지능지수(IQ)는 유전적 요인 또는 '자궁 내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꼭 창조적인 인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인슈타인만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IQ는 122로, 특출 나게 높은 편이 아니다. 한 마디로 뇌를 분석해서 천재의 특징을 가리는 일은 선정적인 기삿거리를 좇는 언론의 입맛에는 맞을지 몰라도 합리적인 대응은 아니다.

***평화운동가-사회주의자 아인슈타인 모습 부각됐더라면…**

합리적 사고가 과학활동의 기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들여오는 데 많은 돈을 쓴 주최 측은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수 상대성이론 100돌'을 맞아 이번에 기획된 여러 가지 행사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재조명하는 것과 함께 어려운 물리학을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데 큰 목적을 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을 전시하는 게 과연 이런 목적에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다. 그의 뇌를 본 많은 과학 '꿈나무'들이 '천재의 뇌'라는 이미지에 압도돼 '물리학은 (이런 특별한 뇌를 가진) 천재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뇌의 안전한 전시를 위해 1억원의 보험에 들고 첨단 항온 항균 제습 시스템을 갖춘 특수 진열장까지 마련한 주최 측의 노력을 다른 곳에 쏟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행사가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 또는 자본주의 비판에 적극적이던 그의 모습도 부각시켰더라면 어땠을까?

독일 나치에 대항해 미국에 원자폭탄 개발을 제안했던 그는 평생을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고 죽기 몇 달 전 영국의 철학자 러셀과 함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해 반전ㆍ반핵 운동에 불을 지폈다. 또 그가 1949년 5월 미국의 좌파 성향 월간지 <먼슬리 리뷰>에 발표한 글 '왜 사회주의인가'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지적한 글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그 역시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다.

이런 모습이 널리 알려진다면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대중들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뿐만 아니라, 흔히 물리학과 같은 과학 연구를 사회와 유리된 '특별한 것'으로 보는 대중들의 편견을 없애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특히 어린이ㆍ청소년들에게는 바람직한 '과학자의 상'을 생각해보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과학 신화화'에 앞장서는 언론들**

아인슈타인 뇌의 한국 전시를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한 것 역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은 이미 2003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인체의 신비' 전시회 때 한번 전시된 적이 있다. 첫 전시가 아닌데도 거의 전 언론이 일제히 이를 제목으로 뽑아 부각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언급은 음미해볼 만하다. 그는 <신화론>(정현 옮김, 현대미학사)에서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은 마치 마술로 우주의 신비를 풀어낸 듯하다"며 "영구 보관된 뇌는 아인슈타인이 현대의 신화가 된 것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렇게 그를 신화화하는 데는 언론이 큰 역할을 했다.

대중이 그 문제에 관심이 있으니 언론은 쓸 뿐인가? 만약 언론들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너무 비겁하기도 하거니와 사실에 부합되지도 않는다. 대중들은 물리학,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등의 개념 또는 현상에 막연히 관심을 갖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관심이 특별한 지향을 갖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무정형의 관심에 방향을 부여하고 내용을 채워주는 것은 사실 교육과 언론의 몫이다.

그런 마당에 신화화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 할 아인슈타인의 뇌를 들여와 이번 전시회의 취지를 오도한 주최 측,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을 물신화하고 상품화하는 데에 일조한 언론은 스스로의 행동을 되짚어 반성해야 마땅하다.

평소 '과학 대중화'와 '사이언스 코리아'를 목소리 높여 외치던 과학계와 언론이 '공모'해 '과학의 신화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 역설적인 현실을 만약 아인슈타인이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번엔 들여온다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눈이라도 달려 이 자가당착의 꼬락서니들을 제발 한번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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