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6자회담에서 어떤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질 수 있을까. 7월 말에 재개되는 회담에서 북한은 군축협상을 시도하지 않고 미국은 고농축우라늄(HEU)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요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북-미간의 '타협'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北, 6자회담의 군축협상 전환 요구 안 해” **
<로이터>와 AP통신 등은 10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을 방문 중인 미 정부 고위관리를 인용해 “북한은 회담 복귀에 합의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유인책을 보장받지는 못했지만 양측은 상대방에 대한 기존 요구사항을 완화하거나 일부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회담 복귀 발표에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이번 회담에서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 북-미 양국의 이런 자세는 회담 진전에 긍정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이 고위 관리는 "북한은 6자회담의 목적을 군축협상과 같은 광범위한 문제가 아닌 비핵화로 좁힐 것을 재확인했다"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반겼다. 북한이 '6자회담을 군축회담으로 변경하자'는 기존 주장을 완화했다는 설명이다.
6자회담의 군축회담 전환 주장은 지난 3월 31일 제기된 것으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입장에 따라 6자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6자회담 틀은 북한의 핵무기 비보유를 전제로 한 것. 따라서 핵군축회담 요구는 6자회담 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 수밖에 없어 관련국들은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고 그 과정에서 6자 회담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었다.
***“美, 북한에 HEU 핵프로그램 인정 요구 안할 것”**
미국은 북한의 이같은 자세에 HEU 핵프로그램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으로 화답하고 나섰다. 이 고위 관리는 “미국은 더 이상 북한에 HEU 프로그램을 다시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협상을 시작하는 첫 단계로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인정했다가 그 이후에는 부인하고 있는 HEU 존재를 다시 인정하라고 요구해 와 이 문제가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그동안 HEU의 존재를 부인하는 동시에 ‘미국의 HEU 주장은 북한내 모든 군사시설을 샅샅이 뒤지려는 속셈과 같은 것’이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군사위성을 통해 적발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과는 달리 HEU 핵무기 개발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전 국토를 일일이 뒤지지 않을 수 없어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물론 미국의 'HEU 인정 요구' 철회가 북한내 HEU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인정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플루토늄 문제와 HEU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던 기존의 입장을 잠시 보류했다는 점에서 회담의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측의 이런 입장은 플루토늄 문제와 HEU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자는 미국내 일부 한반도 전문가들의 의견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 등 26명의 한반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반도정책 태스크포스’는 지난해 말 ‘북핵 위기 종식을 위해’라는 제목의 정책 제안서를 통해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마지막 단계로 돌리고 플루토늄 문제를 우선해 북한과 협상하라”면서 총 4단계의 북핵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북한에 무기급 HEU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부족해 현존하는 분명한 위협인 플루토늄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HEU 문제는 상호 신뢰가 싸인 뒤 마지막으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성렬, “‘제네바 합의 + 알파’ 정도로 중간선 타결 가능성”**
이에 따라 제4차 6자회담에서 북-미 양측이 한 발짝씩 물러선 자세를 견지한다면 핵심 쟁점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접근하기 쉬운 문제는 해결이 가능해 일정 정도 성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원은 “긍정적으로 본다면 ‘제네바 합의 +알파’ 정도의 중간선에서 타결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핵심쟁점들의 타결 가능성은 높지 않아 한계가 있겠지만 기존 HEU 문제와 북한의 군축협상 주장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일정 부분 타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 연구원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이 NPT 복귀와 IAEA 사찰 수용까지 가기는 어렵지만 북한이 현재의 핵무기고를 늘리는 조치를 중단하고 보유 핵물질 확산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등 현재와 미래의 핵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근본적으로 낙관할 상황은 아니지만 북핵 해결의 가닥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이번 6자회담 의제에서 HEU 문제를 제외하는 것이 협상의 진전에 하나의 조건"이라며 "6자회담을 군축협상으로 전환하자는 북한의 기존 입장 역시 인권문제를 의제화하려는 미국 전략에 대한 대응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양측 모두 복잡한 주장을 일단 내려놓고 의제를 기존 6자회담 의제로 한정하는 선에서 타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北외무성 “한반도 비핵화 최종 목표”, 美라이스 “이제 시작일 뿐”**
한편 이와 관련 북한은 10일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가진 문답에서 “1년 남짓 정체돼 있던 6자회담 과정이 다시 추진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우리의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며 “전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은 우리의 최종목표이고 그것을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실현하려는 것은 우리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재차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북한이 6자회담을 군축협상의 장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보도와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북한은 지난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했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발언에 이어 이번에 재차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함으로써 6자회담에 임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핵을 동결하는 데는 비교적 용이하게 의견을 모을 수 있지만 과거의 핵무기까지 폐기하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훨씬 험준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반응도 아직은 북한의 의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의 회담 복귀와 관련해 이날 베이징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중요한 것은 회담에서 진전을 이루는 것이며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뉴욕타임스>도 이에 대해 “부시 정부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산 마약과 위조지폐, 무기 수출 단속 등 강압적인 조치들을 계획해 왔다”면서 “6자회담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해 미국내 분위기를 반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