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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산업 민영화는 에너지메이저의 음모"

에너지 전문가 한 목소리, "시장요소 도입은 시대착오"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 도입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산자부의 '에너지기본법' 추진 움직임이 다시 저지된 가운데, "세계적인 '에너지 메이저' 중심의 독점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해법"이라는 국내외의 지적이 제기됐다.

***"전력 산업의 사유화와 탈규제는 '사기극'"**

22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에너지 체제 전환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오스트레일리아 울런공 대학 샤론 베더 교수(사회학)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영국을 따라서 수많은 나라들이 에너지 산업을 시장 논리에 따라 사유화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며 "에너지 산업을 사유화한 많은 나라에서 실업이 늘어나고, 요금은 점점 올라갔으며, 환경오염은 더 심해졌고, 서비스의 질도 좋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2003년 <파워 플레이>(최기련 옮김, 교보문고)라는 책을 통해서 전 세계의 전력 산업을 장악하기 위한 초국적 자본의 음모를 고발한 베더 교수는 이날도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갖는 허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배더 교수는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하자는 이들은 국가의 에너지 산업 독점에서 벗어나면 민간 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그 비용을 줄여 요금을 낮추고 동시에 이윤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며 "하지만 이 주장은 현실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전력 산업의 예를 들어보면 세계 각국의 전력 기업들은 사적 소유 기업들보다 결코 높지 않은 비용으로 일관되게 전력을 생산해 왔으며, 사기업보다 훨씬 낮은 요금으로 전력을 공급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미 20여 년 동안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한 나라들이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브라질은 한때 풍부한 강물을 이용한 수력 발전 때문에 싸고 풍부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1995년 전력 시스템을 외국에 매각한 후 소비자들은 막대하게 오른 요금을 감내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전력 시스템을 소유한 외국 기업은 이윤을 자국으로 부치는 데 관심을 둘 뿐 새로운 발전 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는 내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와 관련한 수많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력 산업의 사유화는 또 일자리를 대거 감축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전력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1990년대 중반 약 8만3천명에서 최근 3만3천명으로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력 산업의 사유화와 탈규제는 '사기극'의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며 "급기야 민간 전력회사들이 잘 나갈 때 배당금 한 푼 못 받았던 납세자들은 이제 손을 털려는 그들에게 지원 자금까지 대야 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시장 경쟁 요소 선구적으로 도입한 영국도 실패, 모든 부담 소비자에게"**

영국 그리니치 대학 국제공공서비스(PSIRU) 스티브 토머스 선임연구원도 베더 교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자유화 모델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 실제 사례를 통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머스 연구원은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한 선구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예를 보면 그 실패가 명확해 보인다"며 "영국의 소비자들은 소매 전력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 경쟁 요소가 도입된 대가로 그때그때 소매 전력 공급자를 바꿀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데만 5년간 총 16억달러(1조6천억원)를 부담해야 했고, 이들 소매 전력 공급자들이 지불한 마케팅 비용 2억달러(2천억원) 역시 소비자의 몫이 됐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한 뒤 치러야 했던 사회적 대가는 무수히 많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전력 공급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며 "2003년 유럽과 북미에서 송·배전망의 결함으로 발생한 정전 사태와 2000년 캘리포니아와 브라질에서 발전량 부족으로 발생한 전력 두절 사태는 그 좋은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할 때 영국 모델을 장려하면서 이것이 어느 나라에서나 적용 가능한 것처럼 간주한 것이 문제였듯이 그 대안 역시 보편적이며 이상적인 모델을 굳이 찾는 것은 옳지 않다"며 "그 나라의 에너지 산업, 전력 산업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에너지 산업, 에너지 메이저 중심의 독점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어"**

안현효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최근의 새로운 에너지 산업 재편과 재구조화 물결에 주목할 것을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 세계 에너지 산업이 다시 재편과 재구조화 물결이 일고 있다"며 "기업들이 재합병으로 수직·수평 결합이 나타나 점점 규모를 키우며 초국적 에너지 메이저로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경쟁은커녕 국가를 초월한 사기업에 의한 에너지 독점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산업에 시장 경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실패로 밝혀진 만큼 에너지 산업의 공기업의 바람직한 기업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열린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산업 정책적 요소, 환경 정책적 요소,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에너지 비전'에 부합하는 공기업을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토론에 나선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실 박창규 보좌관은 "대안적인 공기업 구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며 "이제 그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할 필요가 있고 특히 노동조합이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과제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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