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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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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

〈김봉준의 붓그림편지 13〉

3월 22일에 국회에 갔었습니다. 국회 방문이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작년 여름에 시베리아로 유라시아 대장정길을 떠나기 위해 국회 앞 광장에는 간 적이 있었지만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증을 받아서야 겨우 들어갔어도 짜증스럽지 않았습니다. 처음 국회를 방문한 것이 결코 자랑은 아닙니다. 국회가 우리네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봐도 자주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너무 늦게 찾았습니다.

관심 가는 일이 두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국회 첫 방문 날은 관람거리가 많았습니다. 오전에 문화부장관 김명곤 내정자의 장관 청문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지역문화진흥법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국회 덕분에 수지맞는 공부를 했습니다.

우선 장관 청문회부터 갔습니다. 주로 기자들과 문광부 공무원들이 참석한 방청석에서 구경했습니다. 문화정책은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백년지대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의원들이 많았습니다. 총론에서는 그런데 각론에서는 스스로 세운 기조가 자주 무너집니다. 청빈한 예술인의 길을 걸어 온 김명곤 내정자에게 부동산 투기니, 강남 아파트 입주니 하는 것으로 의혹을 잡기는 좀 억지 같았습니다. 오히려 문화정책에 대한 소신 있는 질의응답이 오가길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자꾸 질문이 서울시장 테니스장 특혜 문제로 옮겨 가더군요.

문화관광부가 드디어 본격적인 예술인이 수장이 되었으니 이제는 남다른 기대를 합니다. 건물이나 짓고 겉치레만 번지르르 한 문화예술 정책이 아니라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 아는 장관이라 기대가 앞섭니다. 장관 한 사람이 새로워진다고 시스템과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습관처럼 있지만 이 기회를 문화개혁의 호기로 삼고 차기 정부에서는 문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점심 식사와 함께 있었던 지역문화진흥법 재정 간담회에서는 법 발의자인 이광철 국회의원, 예총·민예총, 지역문화예술단체, 지역문화원, 지역문화재단, 지자체 문화과, 예술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수도권과 지역 간에 문화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문화정책과 재정지원이 수도권에 편중된 현실에서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화적 소외가 심각한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이광철, 이계진 등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당리당략을 떠나 모처럼 만에 보는 예술과 정치의 아름다운 의기투합이었습니다.

이광철 의원 말대로 지역문화의 소외와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특별법으로라도 만들어 지역문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법취지에는 오신 분들이 대개 공감했습니다. 다만 법 제정 초기부터 발생할 수 있는 법의 생소함이 있을 것이고 재정 확보에서 어려움도 있을 것이니 4월 법제정 전에 보다 섬세한 보강과 법제정 이후 홍보가 필요할 것입니다.

발제와 토론에서 나온 바대로 지역문예단체의 논의 구조가 예총·민예총·문화원이 제각각이던 것이 지역문화예술위원회로의 일대 개편이 불가피 할 터이니 공유해가는 과정 자체가 문화민주주의의 일대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논의 중심이 광역에서 기초 단위로 더 이동해야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한 지적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몸통만 말하자면 지역문화의 진흥은 지역의 일상생활가치, 재래시장문화, 지역전통문화, 지역생태가치를 보호 생장시키는 방향에서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샛강이 오염되어 있는데 한강 정화운동만 벌인다고 될 것인가, 시범적인 대형 문화도시, 문화지구 지정 등 규모화·가시화에 너무 조급성을 보인다면 법 취지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또 다시 치적 중심의 문화행정이라는 소리가 안나오길 바랍니다.

지역문화콘텐츠 원형개발이 문화콘텐츠진흥원 등에서 대형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하지만 그래야 시놉시스 수준을 못 넘을 것이고 설사 훌륭한 창작품이 나온다 해도 지역적 문화자산이 되기보다 촬영세트장의 관광지화가 얼마 안가서 시들해지는 경우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지역문화화 하는 일은 창작자가 밖에서 가지고 들어오기보다 지역주민과 예술인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창작하고 조직하고 관리할 때 그 성과가 지역으로 공유된다고 봅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의 핵심 주체로 '문화복지사'라는 개념이 나왔습니다. 사회복지사처럼 문화도 복지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인데 개념규정에 너무 매여서 법 본래 취지인 지역문화의 내발화·활성화보다 일자리 창출이나 예산 나눠먹기에 급급하지 않기를 이번만은 바랍니다.

시·군·구 문화복지사의 활동을 보면 사회교육, 사회화·의사소통, 여가향유, 교양획득, 취미활동, 특기개발·자기개발, 취업준비교육, 사회재활교육, 동호회활동 등인데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원적 관계를 명확히 하고 실용적 가치에 치중하다 보면 지역문화의 창발성이 얼마나 살아날 것인지 걱정도 됩니다. 거기다 기존의 사회복지사, 지역예술교육사, 지역문화지도사, 평생교육사 등과 업무가 충돌할 수 있으니 서로 의논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데, 지역문화 예산 증액은 다른 분야 예산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이 또한 지역문화 주체들의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할 것입니다. 왜 지역문화가 사회발전에 원동력인가, 국가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인가를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간에 특성화나 문화 영역 내의 상호 순환성 못지않게 지역예술문화 건설 이전에 지역문화의 원형성에 관한 정리와 체계화와 창작·생산유통화가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민담, 지명설화, 향토사를 지역주민과 지역문화예술인이 같이 정리하고 지역문화 콘텐츠로 현장 주민들과 함께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문화종 다양성 보존은 지역문화의 보존 생산 유통의 다른 의미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전통지역문화의 기억을 가진 노인들은 사라지고 없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원을 초기에 어디에다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20년 전 서울에서 예술활동을 접고 고향 같지 않은 고향, 서울을 떠나면서 지역문화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역문화로부터 다시 배우지 않으면 나의 예술은 허망하게 공중분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경기도 지역도시에서 다시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면서 지역문화예술에 대한 아무런 법적 지원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롭고 힘든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국회에서 정치와 예술이 손잡고 지역문화를 걱정하니 격세지감이 듭니다. 정치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서로 필요해 의해서 토론하고 미래는 문화국가시대라는 이구동성의 발언들을 국회에서 하는 시대이니 감회가 밀려옵니다.

2000년 우리 마을에서는 정착한지 7년 되는 해에 '숲과 마을 미술축전'으로 지역문화예술인이 지역 주민과 결합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습니다. 그 때 만든 마을지도는 마을 어르신들의 구술을 토대로 구성하고 발로 걸으며 그린 지도그림입니다. 아직도 우리 마을에 오는 손님은 진밭골 그림지도를 찾습니다. 여기 그때 제가 그린 붓그림을 소개합니다.

그 때 두 해에 걸친 축전으로 지역예술인은 어떻게 지역주민과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작가들 20명이 스스로 돈을 거두어 축제 자금을 만들고 미술전시와 공연을 펼쳤고 주민들은 장승고사를 하고 마을 청소를 하며 식당과 민박을 했습니다. 벌써 7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인심과 신명만 믿고 정부지원 없이 펼쳤던 소박한 민간 축제였습니다.

지역문화진흥법이 입법 취지대로 성공하려면 민간문화 문화복지사 제도도 좋고 문화시범도시도 좋지만 지역에 오래 살아 온 민간인들, 누구보다도 정말로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 촌노들의 문화 무의식계, 민간의 보이지 않는 문화세계를 읽어내고 지역문화창조의 주체로 그들이 동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지역문화의 뿌리는 역설적이게도 교육혜택을 못 받은 시골 촌노들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일수록 풍부한 지역원형문화에 젖어서 살아 왔습니다. 말씀이 어눌하고 언술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그분들의 무의식이야말로 지역문화 해설이고 '문화복지' 일 수가 있습니다.

정치는 보이는 세계-법, 제도, 질서, 의식계를 생산하고 조정하는 것이라면 문화예술은 보이지 않는 세계- 꿈, 신화, 소망, 신념, 무질서, 무의식을 만나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영역입니다. 보이는 물질세계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청해 온다면 문화·예술은 일부러 피하진 않습니다. 가려진 진실을 찾고자 내방하는 자에게 언제나 따듯할 것입니다. 경계가 허물어진 창구에서는 사람 사는 향기가 흐를 것입니다.

지역문화진흥법까지 만들어지는 만큼 예술인은 장르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대안을 가지고 지역으로 더 하방하시길 바라고 지역주민들은 마음의 문을 여시면서 두 주체가 참다운 지역문화의 주체가 되길 바랍니다. 국회에서의 예술과 정치의 아름다운 만남이 지역에서 주민과 지역문화예술인의 창조적 만남으로 이어져 가화가 아닌 진짜 지역문화의 꽃이 피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봉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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