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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부활한 박정희식 '투기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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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1세기에 부활한 박정희식 '투기꾼 경제'"

희망을 찾는 농업 살리기 <2> '껍데기 경제'에 생명 짓눌려

<프레시안>은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건강한 농지제도 개편을 위한 연석회의(농지제도 연석회의)'와 공동으로 최근 농지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통해 촉발된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공론화하는 기획을 마련한다.

지난 도법스님의 여는 글에 이어 이번에는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경제학 박사)이 기존 농업정책을 경제정책과 연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글을 보내왔다. 우 실장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 '박정희식 국민 동원경제'가 지역 수준에서 부활하고 있다"며 "농지 위에 짓는 도로, 골프장, 관광특구라는 세 가지 패키지와 이것을 인프라로 하는 도시를 건설하는 최근의 움직임은 1970년대 동원경제가 가졌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결여된 건설 경기 부양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투기꾼 정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우 실장은 "지금 잘 사는 선진국 중 과거나 현재 그 어느 때라도 건설업의 GDP(국내 총생산) 비중이 8~13%를 넘은 적이 없고, 일본이 15%를 넘었다가 공황으로 그야말로 죽다 살아났다"며 "우리나라 역시 20%를 넘어 25% 근처까지 간 두 번은 1979~80년 공황과 1997~98년 IMF 사태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현재 건설업 비중이 또다시 20% 이상으로 늘고 있는 현재 투기꾼의 경제 정책을 그만두지 않는 한 1년 안에 일본의 '헤이세이 공황'과 같은 사태를 맡게 되리라는 것이 우 실장의 음울한 예언이다. 편집자.

***IMF 경제위기와 '국민 동원경제'의 종료**

우리나라의 농업은 어떠한 방식에서 누가 진단하더라도 위기 상태이다. 2004년도에 발표된 통계청의 '2003년 농가경제 조사'에 의하면 농가당 연소득은 2천6백50만원인데 비하여 농가당 부채는 2천9백만원이다. 채무구조의 논리를 농가에 대입하면 농업이 아니라 농민 한 명 한 명이 구조조정 대상인 셈이다. 이러한 양적인 비교를 해보기에 앞서 보다 중요한 것은 질적인 변화이다. 기본적으로 2004년 2월 참여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제정한 '농업․농촌 기본계획'은 가히 '농업 안락사 기본계획'이라고 부르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어떻게 하면 농업에 투입되던 돈을 다른 분야로 효율적으로 전환시킬 것인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참여정부의 '농업 포기 정책'이 문제라고 일방적으로 정부의 잘못만으로 몰아붙이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 사회가 가지고 있다. 정부가 농업을 포기해서 농업이 어려워진 것인가 혹은 농업이 어려워져서 정부가 농업을 포기한 것인가라는 달과 달걀 같은 논쟁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이제 '사양산업'으로 낙인찍힌 농업에서는 아무런 논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건설업이 DJ 후반기의 과잉투자에 의하여 자체조정 국면을 맞았을 때 '건설업 연착륙'으로 온 국가가 한 바탕 움직였던 것에 비하면, 농업의 위기는 몰락한 정승집 상가와 다를 바가 없다. 정승집 개가 죽어도 문상이 줄을 서는 것과 달리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옛말이 지금 우리나라의 농업에 딱 맞는 비유인 것 같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발생한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IMF 경제위기에서 찾아져야 할 것 같다. 물론 1998~1999년 경제위기 동안에 우리나라의 종자회사가 모두 외국회사들에게 넘어간 것과 같이 장기적 농업의 기반이 무너져 버렸다는 소소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IMF 경제위기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시스템 그리고 그 경제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 펀더멘털' 자체가 변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신체제 이후로 우리나라 경제를 설명할 때 세계은행 등 외국의 경제전문기관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가 국민 동원경제(national-mobilization economy)라는 개념이다. IMF 경제위기 때의 금 모으기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동원경제의 마지막 상징인 셈이다. 동원경제의 흔적은 우리나라에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다. 휘발유에 비해서 디젤의 가격이 아직도 생산가격에 비해서 현저히 낮은 이유는 민간 부문에서 '돈을 모아' 산업용 연료인 디젤에 대해서 지원해주는 '교차 보조' 때문이다. 민간용에 높은 세금을 부가하고, 산업용에 낮은 세금을 부가해서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후생을 일부 희생하면서 산업, 특히 2차 산업인 제조업에 이득이 가도록 만들었던 유신경제의 장치들은 한정된 한반도의 재원 및 노동력을 집중시켜 막 펼쳐진 2차 국제 분업에서 '대한민국 경제'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고, 이러한 경제의 '모터' 역할을 한 국민 동원경제는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화려했던 한국 경제의 한 세기를 마감하게 된다. 1995년의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을 다시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는 '위기'라고 사람들은 진단하고 있다. 국민들의 금 모으기는 동원경제를 대한 시대에 마지막 노스탤지어인 셈이지만, 이미 동원경제가 불가능해진 '금융자유화'의 벽을 넘어선 대한민국 경제가 동원경제로 회귀할 수는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국민에 대한 동원력으로 운용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무리 사람들이 유신경제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스템은 과거로 복귀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바로 이 유신체계의 톱니바퀴 중의 하나로 지금의 정책틀을 형성하게 된다. 추곡수매와 정부 구매라는 두 가지 축은 결국은 '보조금'을 통해서 저가의 임금체계를 지탱하는 우리나라의 동원경제의 중요한 장치였다. 에너지에 대한 교차보조가 결국에는 기업의 수출경제력을 확보해주는 장치라면, 농업에 대한 추곡수매의 보조 장치는 저임금체계를 사회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장치였다.

동원경제가 실질적으로 종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를 통한 교차보조보다는 휘발유, 디젤 그리고 LPG의 가격 왜곡으로 인한 시장 왜곡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고, 결국 경유값과 LPG 가격을 높이게 되었다. 동일한 흐름 속에서 동원경제 체계가 깨어진 90년대 후반 더 이상 우리나라의 농업은 산업체에 대한 간접 보조로서의 '효용성'을 잃어버린 셈이다. 1987년 이후 증가한 임금체계에서 농업에 대한 보조가 더 이상 임금보조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게다가 개방된 수입 농산물의 파고에서 농업은 현실적으로 '수출형 경제' 구조에서 아무런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동원경제는 끝났지만, 동원에 대한 '향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핸드폰과 자동차는 예전의 동원경제 시절의 수출 상품이 국민에게 주던 행복감을 대신해주었고, 이 바뀐 상황에서 농업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농촌 지역에서 인구에 비해서 약간 넉넉하게 배당된 국회의원 체계가 아니었다면, 농업이라는 매우 특별한 '경제영역'은 채 20세기를 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70년대 형성된 농촌 체계의 정치경제학만이 '농업의 과잉 대표'라는 지적 속에서 화석화된 업종 하나를 21세기까지 끌고 넘어온 셈이다.

***동원 경제를 채운 미국 유학파들의 '뉴욕 스타일'**

하버드 대학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우수한 대학이고, 약간은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학문의 종합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드물게 종합적인 대학이다. 이 하버드 대학의 공간관리에 대한 소위 도시공학 분야는 하버드의 학풍과는 좀 다르게 제국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간단하게 '뉴욕 스타일'의 공간재편에 대한 강조점을 두고 있다.

청계천 공사 비리로 구속된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 같은 사람들이 이 뉴욕 스타일 공간배치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는데, 문제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경제의 최정점에 있는 뉴욕 스타일을 우리나라 전역에 도입하려고 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위기에 빠진 농업이 가까스로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왔을 때, 노무현 정부를 만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농업을 안락사 시켜야 한다는 농림부와 전국을 뉴욕처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그야말로 뉴욕 스타일의 주창자들이 참여정부에서 정식으로 만나게 된다. 어차피 농업을 살리기 어렵고, 또 뉴욕 스타일로 1인당 '10평'씩의 공간을 제공하면서 전국을 도시화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하는 두 가지 담론이 만나면서 우리나라 농업이 공식적으로 '사망'할 조건이 완벽하게 형성이 된다.

동원경제에서 저임금을 담당할 아무런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농업과 뉴욕스타일의 국토 개발을 외치는 뉴욕 스타일파에게 농촌은 그저 아직 개발되지 않은 '택지'를 무한히 공급할 수 있는, 그야말로 '택지 제공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흐름을 가운데에서 매개한 곳이 농지투기로 물러난 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제라인이었다. 2004년 7월 '골프경제'와 함께 발표한 것이 '농지 해제 방침'이었고, 실질적인 농업 포기는 2004년 2월의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 이미 정부안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6헥타르 7만호 전업농을 제외한 나머지 농가들은 농업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게 하고, 이 때 이들의 철수한 땅을 도시에서 대기하고 있는 '도시 자본'이 흡수하도록 한다는 이 정부의 계획이 가장 첨예하게 형상화된 것이 '탈농재촌'의 정신에 녹아 있다. 농업을 그만두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빈민화된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와 새로운 사회적 문제점을 일으키지 않도록 농촌지역에 붙잡아놓는다는 것이 정부의 농업정책의 기본 기조이다.

동원경제의 축에서 보호받던 박정희 시대의 단꿈에서 깨어난 한국 농민에게 참여정부라는 공간은 통과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조건이었다. 정부로서는 이미 농업에서 후퇴하라고 그야말로 '시그널'을 내린 상태이지만, 기업과 달리 농민들은 정부의 신호에 대해서 즉각 대응을 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소농 형태로 버티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정말 답답한 상황이다. 6헥타르, 즉 1만 8천 평까지 농지를 확보한 농민은 정책적으로 어떻게든 안고 가겠다고 했는데, 나머지 농민들은 아직도 농업에서 철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종 지원을 해줄 테니 '농외소득' 쪽으로 가보라고 하는데, 그것도 유보적인 농민들은 뉴욕 스타일의 국토 재편을 통해서 전국을 뉴욕처럼 만들어 나름대로 선진화도 시키고 2만불 경제를 만들어보자는 재경부 경제관료들의 눈으로 보면 도대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시대의 화석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것이 정부의 농지법 개정안이다. 누구든지 농업기반공사에 사인만 해주면, 얼마든지 농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른바 농지은행을 통한 '농지 세탁'을 통해서 헌법의 '경자유전' 조항을 피하면서 실질적으로 투기 자본을 끌어들여 아직도 떠나지 않는 농업을 실질적으로 해체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낸 셈이다.

우리나라 농지에서 농업진흥지역은 53%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지역들은 나름대로의 지자체의 개발계획을 통해서 이제 얼마든지 용도를 전환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 토지를 산 사람들은 21세기 초입의 마지막 '대박'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농업진흥지역 밖에 '지구단위계획'과 같은 지자체의 종합적 개발계획을 통해서 도시화할 수 있는 면적이 현재 우리나라 도시 지역의 2배 정도 된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도시지역의 2배에 해당하는 신규택지가 공급가능 지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동원경제가 지나간 자리에 토지투기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지자체' 주도의 지역 동원경제가 다시 생겨나는 셈이다. 농업용지로 간척한 자리에 골프장과 디즈니랜드 같은 관광지역을 만드는 새만금을 포함해서 참여정부 시대에 생기는 대부분의 신규택지는 일부의 산림지역을 제외하면 농지에 집중되어 있다. '경자유전'의 시대에서 '임자없는 땅'의 시대로 이미 전환된 셈이다.

***그러나 뉴욕 스타일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이렇게 치밀한 참여정부의 21세기 전략에도 그러나 비어 있는 부분들은 있다.

첫째는, 토지투기에 대해서 아무리 참여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대응한다고 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일부러 토기투기를 부추겨서 단기간의 경제 부양만을 목표로 하겠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악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집권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악의적인 정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이헌재 전 부총리의 경우에도 자신이 농지투기를 하기 위해서 농지를 풀어주었다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그러한 선의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토지투기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토지 공개념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미 위헌판결을 받은 적이 있어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도시지역에서 사용하는 개발이익환수제도 어느 정도 균일화되고 표준화된 도시 지역에서도 잘 효과를 보지 못하는데, 동일한 지표 개발이 거의 불가능한 농업지역에서 개발이익 환수도 작동시키기가 어렵다. 세금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10배 이상의 시사차익이 기대되는 지역에 대한 투기를 세금만으로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미 읍, 면 지역에 대한 개발계획을 담은 지구단위계획 등의 지역계획에 대한 권한은 이미 지자체로 다 넘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이를 제어해준다고 하더라도, 지자체의 농촌지역 전환에 대한 정책적 절차는 이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시장은 오히려 투기에 대해서 친화적이다.

둘째는, 농업이 가지고 있는 국민경제 내에서의 적극적인 기능이다. 수출산업에 대한 '몰아주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동원경제로서의 농업의 경제적 기능은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데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농업이 국민경제에서 아무런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농지는 생태적 기능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국민 음식의 안전이라는 '식료 안전(food security) 기능을 중요하게 확보하고 있고, 부수적으로 고용 유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만 하더라도 GDP에서 농업이 2%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총고용의 10%를 농업이 흡수하고 있다. 대부부의 유럽 국가에서 비슷한 수치들을 목격할 수 있다. 고용의 10%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농업 부문에서 그 정도의 버퍼 역할을 해주지 않고 급격하게 변화는 후기 산업사회의 산업 부문에 10% 정도의 고용을 던져버리면, 받아줄 산업이 없을 뿐더러, 그 정도로 고용에 문제가 생기고도 휘청거리지 않을 국민경제는 자본주의 시장형태를 형성하고 있는 이 지구상에 없다.

도시 국가에 가깝고, 통일과 국제 사회 진출이라는 특수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대만을 제외한 OECD의 전 국가가 1998년~1999년을 경계로 다투어 '친환경농업 선언' 혹은 '국민투표' 등을 실시하고, 농업 회생을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 자본에 비해서 '생태 자본'의 희소성이 높아질 2010년 이후에 친환경 농업이 새로운 국제 경쟁의 주요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 하에서 한국처럼 전격적으로 농업을 포기한 나라는 선진국은 물론 후진국을 보더라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심지어 중국마저도 사회적 고용과 농업유지를 이유로 농촌지역에는 세금을 없애주는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2005년에 농업 포기정책을 실질적으로 도입한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베트남 밖에는 없다. 베트남은 한국 경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뉴욕 스타일의 국토 관리방안에는 농업이 가지고 있는 21세기형 기능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그리고 일단 투기국면으로 경제가 전환되면, 미안하지만 시장경제에서는 이를 제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가 없다는 1929년 미국 대공황을 통해서 미국이 겨우 배운 값비싼 교훈과 1990년대 헤이세이 공황이라는 10년 장기불황을 거친 일본의 '거품 경제'의 아픈 교훈도 없다.

전 세계 어느 경제학자도 투기 국면으로 경제가 전환되어서는 투자도 없고, 민생도 없고, 또한 장기적 성장도 없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리고 경제정책에는 일단 투기국면으로 넘어가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므로 투기가 불가능하도록 사전적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21세기에 전 세계가 동의하는 상식이 지금 참여정부의 농업정책과 공간 정책에서만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정책입안자와 정책 전문가의 눈이 너무 '뉴욕 스타일'에 가 있어서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역에서의 동원경제의 부활과 '껍데기 경제'**

1970년대의 동원경제가 우리나라에서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참여정부 하에서의 지방정부의 정책은 2년만에 다시 동원경제로 회귀한 측면이 있다. 1970년대에 온 국민이 살아 보자를 외쳤다면, 지금은 각 지역이 '살아보자'를 외치고 있다. 잘 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 사는 것이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다시 동원경제가 부활하는 것은 문제다.

도로와 골프장, 그리고 관광특구라는 세 가지 패키지가 전국에 유행이다. 물론 모두 농지 위에 짓고 싶은 시설물들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프라'로 하는 '도시' 건설이 유행이다.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동원경제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찾아보면, 이것이 중화학공업과 자동차라고 하는, 나름대로 지식축적과 타산업 파급효과를 가지는 곳에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그린벨트와 조림정책으로 '국토 생태'라는 최소한의 근간을 만드는, 소위 국민 경제 내에서의 타협 같은 것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정부의 '낮은 수준의 동원경제'는 기술과 경제 그리고 생태와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조화도 배제한 채 건설과 토목공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이 나라는 지금 21세기 초입에 이 나라가 가진 모든 자산과 자본을 지역의 토목 공사에 그야말로 '올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경제에서는 이것이 '건설업 경기부양'이고 지역 동원경제로 내려가면 '주민 숙원사업' 혹은 '잘 사는 도시' 혹은 '우리 동네로 오세요'가 된다.

지금 잘 사는 선진국 중 과거나 현재 그 어느 때라도 건설업의 GDP 비중이 8~13%를 넘은 적이 없고, 일본이 15%를 넘어섰다가 헤이세이 공황으로 '거품빼기' 10년 동안 그야말로 죽다 살아났다. 우리나라도 20%를 넘어 25% 근처까지 간 적이 두 번이 있는데, 1979~80년 공황과 1997~98년의 IMF 경제위기가 나타났다.

2003~2004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고속도로만 13만㎞가 새로이 건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 1㎞ 만들 때 건설비가 대략 600억원 정도 들어간다. 2000년의 국회 도서관의 1년 도서구입비가 11억원이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가장 먼저 차이를 보이는 것이 도서관 숫자 같은 것이다. 그야말로 고속도로 1천㎞ 지을 때 딱 1㎞의 비용만이라도 도서관을 만들었다면, 그 한 해 동안에 우리나라에는 국회도서관보다 10배는 좋은 도서관이 1백30개가 생겼을 테지만, 그 모든 국민적 자산을 도로 만들고, 도시 형성하는데 때려 넣고 있던 셈이다.

이렇게 2년간 경제를 운용하다가 급기야 정부 재정이 심하게 적자 국면으로 들어가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연기금까지 동원해서 더 늘리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기조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하드웨어 시설물에 온 국가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느라고 정작 소프트웨어에는 아무 것도 넣지 못한 그야말로 '껍데기' 경제가 형성된 셈이다.

국민경제에서 20%를 넘어서는 건설업 비중이 2~3년 유지되면 우리나라 현대경제사의 수치로는 경제공황이 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농업이나 지방경제만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건설경기부양 국면을 1년만 더 억지로 끌고 나간다면, 경제 회생이 아니라 일본형 헤이세이 공황으로 본격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고, 국제적인 경험이다.

지금 이 큰 껍데기 변화로의 대 전환에 우리나라 농민들이 그야말로 맨 몸으로 서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동산이 아니라 '생명'이다**

농업정책은 조금만 자세히 보면 허점을 누구나 쉽게 찾아낼 정도로 엉터리다. 추곡 수매를 없애고 그 돈을 '농촌지역'의 도로와 아파트 건설 심지어는 골프장 비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지금의 119조 지원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삶의 질 법'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은 농촌지역 개발특별법이라고 부르는, '농림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지역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농지법 개정과 함께 추진되는 건설교통부의 '토지규제기본법'은 농지에 관해서도 건설부 장관이 해제를 추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모든 걸 모으면 지금의 추곡수매 자금이 결국에는 농어촌지역 개발에 들어가는 셈이다. 말이 좋아 개발이지 도로 아니면 큰 아파트 몇 개 그리고 골프장 짓는 돈이다. 형식은 농업 지원이지만, 내용은 그나마 제대로 작동 안하던 농업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하는 것이 정부 농업정책의 기조이다. 말은 그렇게 안하지만, 입법예고된 것들과 종합계획들을 모아보면, 돈의 흐름은 그렇게 가도록 이미 입안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농업에 보조금 안 주는 나라는 없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농업은 직불제로 바로 소득보존을 해준다. 이런데도 농업이 위기가 아니라면 정말 이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지 소유를 해제하고, 지역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 마치 국민여론이 찬성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부동산'이 현실적으로 현 경제의 운영국면을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이 아니라 농업을 살려야 한다. 그러면 농민도 살아난다. 그러나 농민을 살린다고 하면서 농민들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바꾸는 2004년 2월의 농업․농촌 기본계획은 제고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합의 하에서 넓고 길게 토론을 한다면 농업 회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광우병으로 농업이 초토화된 영국도 5년 만에 농업을 살렸고, 동구의 값싼 농산물의 전초기지로 전락했던 스위스도 6년 만에 농업을 살려냈다.

농업에 가기로 한 원래의 보조금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농업을 살릴 수 있지만,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도로 짓는데 그 돈을 돌려버리면, 농업만이 아니라 국민경제까지 한 번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집이 없는 대부분의 국민들과 3,500평을 평균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농가 그리고 팔 것이라고는 몸 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다수는 투기꾼이 아니고, 우리나라 농민의 대다수는 생명을 살리는 것에 사명을 갖고 하루를 사는 선한 농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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