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최근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 및 이에 따른 일제불매운동-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좌절 위기 등과 관련,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고이즈미의 외교 실패를 질타하는 일본내 목소리가 끊이지 않아, 고이즈미는 집권후 최대위기에 직면한 양상이다.
***고이즈미, “신사참배와 반일시위는 별개 문제”**
고이즈미 총리는 11일 총리관저에서 기자단과 만나 중국의 반일 시위에 대해 “정말로 유감스럽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중국이 이번 반일 시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강조한 데 대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의 안전은 중국 측에 책임이 있다”면서 “잘 인식해 주길 바란다”고 말해 중국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고 재발 방지를 강력 요구했다.
그는 또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반감이 중국 반일시위의 근본적 도화선이 됐다는 책임론이 일본 언론과 정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반일 시위는 별개 문제”라며 “이는 오랜 세월의 역사적인 문제나 반일 감정도 작용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고이즈미, "후진타오 주석 만나고 싶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러나 외형상 중국에 대한 강경태도를 표명하면서도, 이날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과 최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정부간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주장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특히 오는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반둥회의) 50주년 기념 정상회의 시기에 “일정이 가능하다면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과 회담에 이 문제를 협의하고 싶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쳐, 궁지에 몰린 상황을 시인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문제삼아 일절 일본측의 중-일 정상회담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日외무차관, “다리 밟힌 사람 감정 생각해야” ‘中 폭력 용인 비판’ 부정**
일본정부의 초조해하는 모습은 야치 쇼타로 외무성 사무차관의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표출됐다.
야치 사무차관은 11일 중국의 반일 시위에 대해 “중국이 일본과 같은 민주국가인지는 모르지만 집회를 하는 것 자체는 중국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중국 정부가 용인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중국에 대해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또 “다리를 밟힌 사람은 다리를 밟은 사람에 대해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일 전쟁으로 많은 중국인이 사망한 현실과 역사를 지울 수 없으며 상대의 감정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비주류, “고이즈미, 우정사업보다 국제관계 신경써라”**
하지만 고이즈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책임론은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자민당내에서도 총리 책임론이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고 언론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내 비주류인 호리우치파의 호리우치 미쓰오 회장과 가메이파의 가메이 시즈카 전 정조회장 등은 이날 밤 도쿄의 한 호텔에서 회합을 갖고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민영화 법안 제출을 서두르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 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우정 민영화보다는) 한-일, 중-일 관계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지적해 동북아 주변국과의 관계개선에나 우선 신경 쓰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민주당의 오카다 가츠야 대표도 이날 또다시 “폭력시위를 제지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라면서도 “양국 정상 사이의 신뢰 관계가 없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꼽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사민당의 마다이치 세이지 간사장도 “미국을 추종하느라 아시아 국가와의 신뢰구축을 소홀히 한 고이즈 외교정책이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이치다 다다요시 공산당 서기국장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문제가 반일감정격화의 원인이라고 꼽아 고이즈미 총리를 압박했다.
***<아사히>, “고이즈미 책임 무거워”**
<아사히신문>은 12일자 사설을 통해 “중국내 반일이 이렇게 타오르는 것은 전대미문”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책임은 무겁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빈부 격차로 인한 불만 등 중국내부 사정에 의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문제의 근저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배를 중단하라는 요청에 대해 계속해서 참배하려는 자세가 중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납치문제나 북망 영토 문제 등에 대해 일본 입장에 대한 지지가 필요한 때에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까지 우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외교 실패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아울러 “총리는 큰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양보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의 성의있는 대응만을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신문은 이밖에 “총리는 가능할 때마다 ‘세계속의 미-일 동맹’을 강조하지만 아시아에서의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미국의 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자민당, 고이즈미 총리 구하기 돌입**
이처럼 비난이 쇄도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부여당의 극우세력은 '고이즈미 일병 구하기' 작전에 본격 나서는 양상이다. 고이즈미가 몰락할 경우 배후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해온 극우세력의 발언권도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극우세력인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은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는 것이 좋다는 단편적인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수”라면서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측면 지원 사격에 나섰다. 또 자민당 극우들 사이에서는 “중국 정부가 불만의 배출구로서 반일 시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강한 불신감도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케베 쓰토부 자민당 간사장도 이날 한 강연에서 “파괴 활동으로 일반 시민에게 위해가 가해지고 있으므로 누가 봐도 중국이 나쁘다”면서 “일본 대사관에 돌을 던지는 것은 일본을 공격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중국을 맹비난했다.
중국의 거센 반일시위가 일본내 극우세력과 평화세력간 전쟁을 불붙이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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