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장관은 "한국의 주적이 누군지 밝히라"며 남북경협 축소를 압박한 헨리 하이드 미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의 고압적인 내정간섭 발언과 관련, "하이드 발언은 일방적"이라고 비판한 뒤 독자적으로 대북지원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발언 배경 및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
***정동영, "그러는 미국은 <국방백서>에 주적 명시하고 있냐?"**
정 장관은 14일 오전 통일부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의 최근 발언과 관련한 보고를 받은 뒤, "대북지원은 인도적 측면과 남북화해협력, 한반도 안보상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제공해 왔다"면서 "대북지원에 대해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김홍재 통일부 대변인이 전했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존권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협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 뒤, 구체적으로 하이드 위원장을 지목해 "하이드 위원장의 일방적인 발언은 적절하지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고 하이드 발언을 질타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미국은 동맹이고 북한은 동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제한 뒤,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에서 삭제한 것을 비판한 하이드의 발언을 지목하며 "미국을 포함해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백서>에 적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 장관은 이어 "현재 남북이 적대적 대결상태로부터 공존과 화해협력을 향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분법적 사고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재차 하이드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동영, "한국, 이라크에 세번째로 많은 군대 파병했다"**
정 장관은 또한 한국이 위협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선 적을 분명히 하라는 하이드 발언과 관련,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적을 명시하지 않고 태평양 지역에서 타 당사국 영토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을 경우에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되어 있다"며 "적을 먼저 규정해야 미국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동맹의 목적과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우리는 한미간 우호협력정신에 바탕해 태평양 지역도 아닌 이라크에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규모로 군대를 파견해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외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 관계를 고려해 이라크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한 우리나라에게 이런 식으로 압박을 가해도 되느냐는 반박인 셈이다.
한마디로 말해, 하이드 위원장 발언은 주제 넘은 '내정간섭적 발언'이며, 남북 경제협력은 주체적 판단아래 계속 해나가겠다는 게 정동영 장관이 가한 반박의 요지였다.
정 장관의 이날 반박은 단순히 정 장관 개인의 발언이 아니라 그가 국가안보회의(NSC)의장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숙의 끝에 나온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을 해석돼, 향후 하이드 위원장 등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오는 19~20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방한해 북한에 대한 한국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정 장관의 이번 강도높은 발언이 나온 것은 무관치 않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하이드, 미 의회내 대표적 매파**
이에 앞서 지난 10일 하이드 위원장은 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열린 `한반도: 6자회담과 핵문제' 청문회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서울에서 나오는 안보 문제에 대한 혼란스러운 신호는 우리가 북한과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더 어려운 것으로 만들 뿐"이라면서, "특히 평양이 주적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한국의 <2004년 국방백서>는 혼란을 일으키는 분명한 모순을 담고 있다"고 '주적 삭제'를 문제삼았다.
그는 이어 <국방백서>에 '한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이라크에 파견한 미군병력 15만명의 4배가 넘는 69만명의 미군을 한반도에 파견할 것'이라고 적시한 대목을 언급하며, "만일 당신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에게 당신의 적이 누구인지 분명히 말해달라"고 말해 파문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는 또 이날 "미국과 한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단결해야 하며 양국간 오해는 북한에게 이용당할 것"이라면서 한국과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의 정도를 재고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남북경협 축소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이드는 일리노이주 출신의 16선 의원(임기 2년)으로 보수성향이 짙으며, 일리노이 주민인 김동식 목사가 북한에 납치됐을 대 다른 일리노이주 출신 상.하의원 10여명과 함께 김 목사 신변 정보를 요구하는 서한을 지난 1월 주유엔 북한대표부를 통해 북한에 보내기도 했었다. 그는 또 지난 2001년에는 한미간 긴장을 낳았던 황장엽씨의 미국 방문증언을 위해 황씨 초청을 주도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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