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4일 유효일 국방차관의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적 논란과 관련해 ‘교도소내 가혹행위나 교전 등 아무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같은 국방부측의 ‘무혐의’ 발표에도 불구, 여전히 의문점들이 남아있어 각종 의혹이 모두 사라질지는 미지수다.
***국방부, “유효일 국방차관 관련 강경진압 등 아무 근거 없어”**
고경석 국방부 감사관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최종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유 차관이 지휘하던) 62연대 3대대가 광주 시민과 직접적인 충돌, 교전행위, 교도소내 가혹행위, 반인권적인 진압행위 등과 관련됐다는 구체적인 진술, 증거, 기록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당시 부대장병, 광주 기무부대 관련자, 62연대 지원 기무부대요원, 광주교도소 교도관,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단체를 면담, 증언청취한 뒤 20사단 충정작전상보, 전투상보, 검찰수사기록, 인사기록 등을 확인했으나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유효일 국방차관이 지휘하던 3대대는 1980년 5월 21일 저녁 6시 50분 광주 송정리 비행장 입구 및 서창다리 지역에 투입돼 22일 오전 7시경 비행장 입구에서 버스 12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광주비행장 입구에서 대치했으나 교전은 없었다고 고 감사관은 말했다.
이와 관련 당시 육로로 이동했던 62연대의 0.25톤 차량 14대를 포함한 장비는 21일 오전 8시경 광주공단 입구에서 피탈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으며 이에 따라 3대대는 개인 화기만을 휴대한 채 경계임무를 수행했다고 당시 중대장이었던 이 모 대위가 진술했다.
국방부는 이어 ‘반항자 사살 및 폭도 탈출 적극 방지 등의 임무수행’에 대해서는 그같은 지침을 구두로 수령한 사실은 적시돼 있지만 당시 모 중대장에 따르면 바로 취소돼 시행되지 않았으며 관련기록에서도 구체적인 작전내용 및 결과가 기술돼 있지 않아 “부대가 바로 이동해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교도소내 3대대 등 군 병력에 의한 가혹행위 전혀 없어”**
국방부는 아울러 광주교도소 구금자에 대한 가혹행위 여부에 대해서는 당시 교도소의 교도관과 부대원 및 광주 기무부대 관련자들의 '3대대는 내부와는 단절된 상태에서 외곽경비 업무만 수행, 가혹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증언을 빌어 “3대대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또 27일 도청진압작전 당시 민간인 사살여부에 대해서도 당시 3대대는 광주고속터미날 일대에 대한 작전 임무를 수행해 직접적인 교전행위가 없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관련기록을 확인한 결과 다른 대대와 달리 전과기록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상자 전과 기록은 같은 연대 2대대에서는 확인됐다.
광주 진압 공로와 관련해서는 유 차관은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공로로 정부 포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전투병과 교육사령관 표창은 수상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측은 “적극 가담한 공적이 없어서 포상을 받지 못했으며 교육사령관 표창은 평시작전훈련에서도 훈련이 끝나면 군단장은 대대에 의례적인 표창을 한다”며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같은 조사결과에 따라 유 차관은 일단 국방차관직 등 업무수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군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직과 관련해서는 “위원회에 민간위원을 국방부 위원의 2배수로 하고 위원장은 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호선할 예정”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는 또 “유 차관의 직무수행과 관련해서는 정부측에서 차후 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여러 의문점 여전, 논란 사그러들지 미지수**
그러나 이같은 국방부측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유 차관의 과거 행적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우선 조사요원 7명이 모두 감찰과 헌병 등 군 내부 인사여서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졌냐는 평가에서부터 갈릴 우려가 있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에 대한 조사는 충분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교도소 구금자 가혹행위와 관련해서는 고 감사관은 “언론에 보도됐던 제 단체 회장들에 대한 면담을 다 했으므로 구금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관련 증언을 청취한 결과 교도소 내에는 군 병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해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교도소에 구금돼 있던 생존자들은 군 병력에 의해 진압봉 타격과 원산폭격, 구타 등을 하루에도 수없이 당했던 것으로 진술해 왔다. 군측 설명에 따르면 당시 교도소 내에서는 군 병력에 의한 아무런 가혹행위가 없었던 셈이다.
이밖에도 투입 당일날 62연대는 차량 등을 탈취당하는 과정에서 25명은 억류된 후 탈출하고 이후 생존이 확인됐으나 1명은 실종됐으며 2명이 부상당했는데도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는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고 감사관은 이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으나 병력이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추가조치 여부에 대해서는 “작전 부대가 62연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강변해, 재차 3대대와는 관련 없음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이날 브리핑에서는 외곽경계만 맡고 실질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질작전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였는데도 외곽경계부대에서는 아무런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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